봄 햇살이 서편으로 설핏 기우는 오후 세 시- 공원을 산책하기 딱 알맞은 시간이다.
언제나처럼 두리(우리 집 견공)를 앞세우고 공원길을 오른다.
홍매화 꽃망울이 아침 이슬 방울 크기로 매달려 출발 신호탄을 기다린다. 산중턱엔 산수유가 노오란
면사포를 두른 듯 곱다. 어느새 꽃을 활짝 피운 매화나무 아래 잠시 들어가 서 있으니 은은하고 달콤한
꽃향기에 마음이 환해진다.
두리를 데리고 다니면, 아이들은 소리없이 다가와 개와 눈을 맞추며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런데 어른들은 꼭 호구조사(?)를 하려 든다.
“게, 멫 살이나 됐수?”
“나이가 많아요.”
어떤 땐
“10년이 넘었어요.”
오래 잘 기른 것을 자랑이나 하려는 듯이 대꾸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저도 듣는 귀가 있는데 늙었다는 게 기분 좋을 리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십을 코앞에 두었을 때다.
아이들이 드러내놓고 ‘할머니 선생님’이라 부르기 전에 학교를 떠나야 하지 않을까 하며 진퇴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을 때였다.
출근길에 지하철 승강장을 향해 다급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츄리닝 차림의 젊은이가
“저기요, 아주머니!”하고 불러 세운다.
“급히 나오느라 지갑을 놓고 나왔는데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요.
천 원만 빌려 주셨음 좋겠는데요--”
‘니 지금 나한테 아줌마랬니? 암, 이천 원이라도 주지.’
행색을 보니 별로 신빙성 없어 보이는 말이었으나 기분 좋게 지갑을 열었다.
문득 삼십여 년 전 일이 눈앞을 스친다.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데 가게 점원이
“아줌마, 그만하면 싸게 드리는 거예요.” 한다.
“아니, 아저씨, 시집도 안 갔는데 아줌마라뇨!” 하니까
“아 그럼, 총각한테 왜 아저씨라구 하는 겁니까?”
“---”
그때는 ‘아줌마’가 그리도 거부감이 가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할머니’로의 진입이 서글퍼지면서 ‘아줌마’라는 이름에 조금 더 매달리고픈 그런 때가 됐나
보다. 사람이 그러할진대,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서, 고것들도 기분 좋고 나쁠 때가 있는 동물인데,
굳이 ‘10년 넘은 할아버지개’라고 알려줄 필요가 무엇 있겠는가.
이제 누가 우리 견공의 나이를 물으면 이렇게 대꾸해 주리라.
“예~ 지금 청춘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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