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간 안녕하신지요?
아카시아 향기가 콧구멍이 비좁다며 밀고 들어 오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인데 제자라는 녀석이 웹바다에 덜렁하니,
메일이라는 엽서하나... 통신이라는 세간의 수단을 통해 떠 보냅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단이라도 있고 날짜를 잊지 않을 수 있음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안도합니다.
존경하는 마음 깊이 담아 Dry한 분위기일 말정
선생님께 축하 말씀, 감사 인사 올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뵙고 싶은 마음 충동적으로 밀려 올 때
늘 그 자리에 계셔 주소서.
요즘은, 낮에 하던 신용카드 영업을 작년 11월 휴직한 이 후
밤에 대리 운전하며 최저 생계는 견디고 있습니다.
조금 전 들어 와서 씻고, 전자 편지 올리고
곧 자야겠죠.
앓고 있는 병은 아주 조심하며 큰 어려움 없이 견디고 있습니다.
대리 운전 일을 잡기에 남들은 다들 혈안이 되어 있는데
저는 달을 보며
"참~ 아름답기도 하다~"
하며 멍하기 일쑤입니다.
선생님! 수제비 먹고 싶어요~
조금만 더 참았다가
쫓아가서 조를 게요.
삶의 쉼표 앞에 있는 제가 지금은 여백이 좀 필요해요.
그 땐~ 가을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지도 모르겠네요~
그리움에 존경의 눈길을 혜화동쪽으로 향해 봅니다.
안녕히 계세요. 못난 제자 올림
***답신
그렇지 않아도 어제 김목사(섭이)에게서 전화가 와서 만나자길래 네 얘길 했다.
상황이 나아지면 함께 만나자고.
오늘 아침 식탁에서는 요새 많이 힘들어 하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이 80이 넘으면 모든 게 편안해진다더라. 아무 것도 세상에 거리끼는 게 없어진다더라.
아마 생각할 힘도 움직일 힘도 다 없어지니까 그렇게 되는가 봐. "
아들은 곧 이어
"그러니까 힘든 걸 오히려 고마와해야겠군요."하더구나.
6월이거나 10월이거나 네가 맘좀 편해지거든 만나자.
<삼청동 수제비> 곱배기로 사줄께.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의 글에 이런 귀절이 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더 이 아름다운 저녁놀과 가을을 볼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없는'지옥'에서 속절없이 헤매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를 사랑하는 일이야.
그래야만 건강을 되찾을 수 있어. 알았지?
그리고 네 곁엔 널 염려하고 지켜 보는 선생님과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걸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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