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오가는 정

청운 시절 이군의 편지

맑은 바람 2009. 5. 16. 10:25

***이군의 편지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연락 자주 못하는 제자를 용서하시고, 스승의 날 맞아서 또 한번 편지를 쓰게 됩니다.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복고등학교 교문을 들어설 때, 중학교를 처음 들어갈 때 느끼던 그런

떨림들, 긴장감들은 느껴지지 않더군요. 고등학생이 된다는 당연한 순리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중학교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다른 학생들과 수업방식 등을 보면서, 너무 빨리 적응해 버린것

같기도 하고..

 

 요즘에는 혼자 있어 보이려는 생각들을 한다고 느끼는것 같지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의 행동들과

언행들을 보면 나이에 비해 좀 그들의 행동들이 나이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혼자

돌아다니는 게 편해지기도 하네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작년에 겪었던 친구들 간에 불화가 있기도 하지만, 저에게도 항상

장점만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데, 새학년, 새학기에 처음 만난 친구와 자꾸 사이가 나빠지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일들을 보는 관점을 너무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노력을 나름대로 하고 있는데, 이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정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사람이 살면서 꼭 그럴수는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는게 모순된 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최대한 가능한 만큼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네요.  편지를 보낼 때마다 점차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독서를

점점 안해서 그런지 글쓰는 능력이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하네요..

다음번에 연락할 때는 더 성숙한 모습 보여드릴수 있게 노력할게요.

 

 아, 그리고 중학교 때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로 여는 국어수업' 있잖아요,

그게 정말 기억이 오래 남더라구요, 지금도 그 시들 적어놓은 공책 가지고 있거든요 ^^

특히 정지용의 '향수'를 볼 때마다 선생님 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내시면서 가끔씩 연락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답신

 우야, 네 글을 보니 잘 컸다는 걸 알겠다.

넌 참 조용하면서도 꽤 날카로운 안목도 지니고 심성이 고운 아이로 기억되는구나.

우리, 수업 시간에 시 참 많이 욌지?

힘들고 괴로울 때 욌던 시들 한 편씩 꺼내 암송해 보면 

마음의 안식을 취할 수 있으리라 믿어.

 

 늦었지만 고등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제부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될 텐데

보기보다 강한 너니까 잘 헤쳐 나가리라  믿는다(믿씁네다!!)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던 날 교무실까지 찾아와 눈물 글썽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퇴직하고 크게 바쁜 일이 없어 심심풀이로 블러그를 만들었단다.

 가끔 놀러 와서 애송시 감상도 하고 독서록도 들춰 보렴.

 

너랑 함께하던 친구들도 어떻게들 지내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

앞으로는 우유 좀 많이 먹고 근육도 키우고 에너지를 비축하렴.

건강해야 무슨일이든 할 수 있이닝께~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 선생님이 

2009. 5. 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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