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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집으로

맑은 바람 2009. 6. 8. 02:23

(영화) 집으로

-세상의 모든 외할머니께 이 작품을 바칩니다 -로 끝나는 영화

 

봄바람에 실려온 먼지와 시름을 날려버리고, 순수로 돌아가 울고 웃고 싶은 친구들은 꼭 보시라.

마음과 눈이 맑아지는 느낌을 맛볼 수 있으리라.

 

**나이 열 아홉에 집을 나간 딸이, 어느 여름 날 심심 산골에 홀로 사는 어머니께 일곱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불쑥 나타나 한두 달 안에 데리러 오마고 아이를 놓고 가 버린다.

전자오락기와 롤러 브레이드와 장난감 로버트가 전부인 외손주 녀석을 벙어리 꼬부랑 할머니가

감당하기 어려울 건 뻔한 스토리-

"벙어리, 벼엉신-"

대놓고 멸시하며 눈 한번 곱게 뜨지 않고 할머니를 미워하나, 답답하고 외로운 녀석은 할머니가 밤을

 세워 꿰매 놓은 까막 고무신을 아궁이에 처넣고 요강을 내동댕이쳐 박살을 낸다.

무어 먹고싶은 게 없느냐는 할머니의 손짓을 간신히 알아듣고 피자, 햄버거, 후라이드 치킨을 외쳐대며

 "돈도 없으면서?" 한다.

간신히 닭이 먹고 싶다는 걸 알아낸 할머니는 말린 산나물을 싸 들고 장에 나가 닭 한 마리를 사다 백숙

을 해준다.

후라이드 치킨을 꿈꾸며 잠들었던 손자는 외할머니가 깨우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서 닭을 보고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누가 닭을 물에 빠트리랬어!"

밧데리를 사고 싶어 할머니 은비녀를 몰래 빼 가도 놋숟갈로 비녀 대신을 하며 나무라지 않고, 저

때문에 차를 놓치고 장에서부터 걸어와 병이 난 할머니를 대하면서 심경의 변화가 온다.

동네 미친 소한테 쫓겨 된통 혼나더니 할머니를 보자 소리내어 운다.

 

들판에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단풍이 나무 끝에서부터 번질 무렵 엄마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온다. 

밤늦도록 할머니를 위해 바늘마다 실을 길게길게 꿰 놓고

"할머니는 말을 못하니까, 전화도 못 하잖아. 그러니까 아프면 편지 해."

하면서 '아프다, 보고 십다.'는 말을 써서 연습을 시킨다.

저도 맞춤법이 서투른 주제에 잘 못쓰는 할머니를 또 구박해 가며-

 

제 엄마를 따라 떠나는 날, 정류장에서 손주 녀석은 로보트가 그려진 엽서 두 장을 내민다.

  뒷면엔 제 집 주소와 '할머니가 상우에게' 라는 글씨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과 함께 한 장엔

'아프다' 또 한 장엔 '보고 십다'는 커다란 글씨가 또박또박 씌어 있었다.

(2002.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