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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대한 침묵>

맑은 바람 2009. 12. 16. 00:24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두 번씩이나 같은 장소를 찾기는 처음이다. 관객이 별로 없을 것으로

예상한 극장 측의 말이, 당일 매표해도 된다고 해서, 동서남북에서 친구들 오라고 불러놓고

매표하러 갔더니 ‘좀전에 매진됐다’고--- 얼마나 황당하고 친구들한테 미안한지-그 자리에서

예매를 하고 일주일 후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이 왠 행운의 메시지? 평화방송에서 영화표

두 장이 당첨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마음고생 한 데 대한 보상을 톡톡히 받았다.

 

 1959년 독일 태생의 필립 그로닝 감독 전직이 심리학을 전공한 의사였으나 영화에 뜻을 두고 공부한 후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해발 1300m 고지에 자리잡은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허락을 얻기까지 19년을 기다린 끝에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 것이다.

 

 시네코드 선재 극장의 238석을 꽉 메운 낯선 이들이 함께 2시간 40분의 침묵 여행을 떠났다.

오로지 한곳만(스크린)을 바라보며. 화면 하나하나가 ‘유럽의 名畵’다. 카드나 달력에서 볼 수

있는-알프스 산속의 잿빛 지붕에 흰벽의 수도원, 흰 수도복의 수도사들--오로지 소리라고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흰빛의 언어들--관객과 영화 속의 인물들이 말문을 닫자 온갖 물건과 자연의 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바람이 눈을 몰고 달려가는 소리,

 빗물이 수면을 때리는 소리,

은은히 울려퍼지는 종소리,

회랑을 걸어가는 수도사의 가벼운 발소리,

마룻장 삐걱거리는 소리,

사각사각 연필 지나가는 소리,

금속성의 가위질 소리,

관객석에선, 휴대폰 진동 소리,

빠스락빠스락 사탕 껍질 벗기는 소리,

코고는 소리-- 

그러나 그들의 삶 속엔 무거운 침묵만이 있는 건 아니다.

둘씩둘씩 짝 지어 산책을 나설 때엔, 두런거리는 말소리, 가끔가끔 들리는 홍소--

폭설이 알프스 산자락을 덮을 때엔 설피를 어깨에 메고 산등성이를 오른다. 비탈을 가볍게 하강하는 사람, 제법 잘 내려오다 중간에 휘청거리는 사람, 초장부터 대굴대굴 구르며 엉망진창 몸이 꼬이는 사람--삶의 다양한 모습이 그대로 전해진다.

 

 <위대한 침묵>은,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얼마나 필요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살아왔는가를

돌아보게 하며, 우리가 떠벌이며 사는 동안 듣지 못했던 온갖 음향들에 귀 기울이는 순간들이

또한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한다.

  “가진 것 모두 버린 자만이 나의 제자가 될 수 있나니-”

“주님께서는 너의 영혼이 행복하길 바라신다.”

"이끄셨으니 제가 이곳에 있나이다.“

자막으로 몇 차례 지나가는 이 말들-영혼 깊숙이 울림을 준다. (2009.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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