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벼랑 끝에 섰던 날

맑은 바람 2009. 6. 9. 22:50

 

“저 거리로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스물 아홉에 뇌종양 판정을 받고 명동 성모병원(명동성당 아래 건물로 강남성모병원의 전신) 병실

창가에서 불빛 휘황한 명동거리를 눈물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뇌까리던 말--

그땐 멀쩡한 두 다리로 팔을 휘저으며 명동거리를 활기차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제발 저들처럼 온전히 걸어다닐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느님’

 

병실로 실려갔을 때는 체중이 39Kg까지 내려갔다.

고통이 극에 달하니 자식이고 남편이고 부모고 없었다.

어서 이 잠시도 멎지 않는 두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남들은 수술실로 실려가면서 울고불고 한다는데 나는 잠시 후면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기대로 환하게 웃었다. 그때는 수술 도중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해서 아무도 내생명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10시간을 넘게 사선을 넘나들며 긴 수술을 끝내고 마침내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30년이상 너끈히 삽니다.”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난 지금 옛날보다 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뭐 하러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몸이 건강해지니 슬슬 이 욕심 저 욕심 생기다가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매일매일 감사하고 나를 죽음에서 건져낸 의사선생님, 가족들에 더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며 앞으로의 날들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잘살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200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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