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제 일 잘 알아서 하는 자식은 자랑스럽고 대견하지만, 앞가림 제대로 못해 질척거리는
자식은 안쓰럽고 속상하고 마음이 더 가듯이, 학생도 공부 못하고 말썽만 부리던 아이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모양이다.
<어버이 날>이다 <스승의 날>이다 행사도 많은 오월이면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초임지 대방동의 모중학교에서의 일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며칠 안 되었을 때다.
수업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데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온다.
말쑥하게 양복을 빼입은 건장한 남자였다.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더니 학생부장 앞으로 다가가서 꾸벅 큰절을 한다.
교무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리로 쏠렸다.
청년은 양복저고리에서 명함 같은 걸 꺼내더니 학생부장 앞으로 내놓는다.
명함을 받아든 선생님, 화들짝 놀라며
“너 아무개 아니냐?”
예의 주시하던 선생님들도 눈을 크게 뜨고 확인한 순간 폭소를 터트렸다.
그 해에 졸업한 아무개였다.
하도 '명물'이라 모르는 선생님이 없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엔 자거나 떠들어 잔소리 끝에 제껴 둔 아이, 쉬는 시간엔 싸움박질을 일삼고
사시장철 실내화는커녕 양말도 안 신고 도둑눔발(?)로 교실과 복도를 누비던 그런 아이였다.
그러니 걸핏하면 교무실로 불려가 학생부장한테 머리를 쥐어 박히고 혼구녕이 났다.
다행스럽게도 그 아버지가 자식을 잘 알아,
"중학교 졸업장만이라도 따라. 더 이상 학교 다니란 소리 안 할게."
하며 다독였던 것이다.
아이가 졸업을 하자 시장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아버지는, 열여섯 된 아들에게
<**상회 영업부장 아무개>라는 명함을 만들어 줘, 그걸 들고 자랑스럽게 찾아온 것이다.
지금 이 학교에도 그 녀석과 사촌 벌쯤 되게 행동하는 아이가 있어 그 애를 볼 때마다
이제는 사십 중반을 넘어섰을 그 옛날의 제자가 떠오르며 한번 보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아들 딸 낳고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
(2004.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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