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 사제 떠나시던 날
-2008. 8. 31(일) 11:30~ 교중 미사 시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5년 동안 주임신부직을 맡았던 김철호 바오로 신부님의 송별 감사 미사가 있는 날이다.
교적만 걸어 놓고 가끔씩 들락거리다 작년 말부터 제법 마음잡고 다녔으니 주임신부님과는 사
실 대화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처지라 특별한 감정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뵐 때마다 유난히 피부가 까맣
고 왜소해서 어디 편찮으신 게 아닌가, 기운 없어 보이시네 하며 측은지심을 느끼곤 했다.
집을 나서기 전, 성당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갈등을 일으켰었다. 사탄이 윙크를 던진다.
성당 가 앉아 있다고 뭔 뾰족한 수가 나나? 팍팍한 삶이 달라질까? 하느님이 널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 주리
라 믿느냐? 그러나 주임신부님 송별미사가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선뜻 일어섰다.
신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임을 의식하신 신부님은 짐짓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털어 버리려는 심사인지 가
벼운 유머를 던지신다.
“먹물이 혜화동을 떠난다니까 혜화고가가 철거되고 로터리가 훤해지면서 아남아파트 집값이 오르고 동
네 땅값도 오르고-- 이제 교무금도 많이 걷히게 생겼는데--”
한바탕 웃음의 물결이 인다.
강론에서 ‘난 주임신부로서 제대로 살았나?’ 하는 자문을 던졌다.
이는 신부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질문-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내 삶을 잠시 반추했다.
신부님의 말씀의 요지는 이랬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곧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산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건 인간의 가치 척도로 살아가지 않고 하느님의 눈으로 삶을 보는 것이다.
그래야 고난을 참고 견디며 넘어설 수 있게 된다."
'그래, 한 치 앞도 모르고 살면서 걱정은 해서 무엇해? 하느님의 큰 밑그림 위에 예정대로 펼쳐질 삶인
걸.'
신부님의 강론이 끝나고 성체성가가 이어졌다.
“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 암흑에 헤매는 한 마리 양을 태양과 같으신 사랑의 빛으로 오소서, 오 주여,
찾아오소서. 내 피요 살이요-“
2절을 부르는데 옆자리에서 쿨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중년의 자매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감사의 눈
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암흑에 헤매는 한 마리양의 눈물’임에 틀림없다.
‘태양과 같으신 사랑의 빛으로’서만이 치유될 수 있는--
미사가 끝나고 간단한 송별행사가 이어진 후 신부님은 성당 마당에서 신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송별인사를 하신다. 나는 그냥 조용히 빠져나오는데 안면이 있는 수녀님이,
"마지막인데 인사드리고 가시지요?“
'전 속으로만 할게요. 신부님 부디 건강하시고 하느님이 특별히 귀히 여기는 사제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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