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가?
작년에도 신청을 해놓고는 목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감기가 심하게 걸린 데다 비가 억수
로 퍼부어 야간 행군할 자신이 없어 그만 아쉬움을 남긴 채 포기했었는데--
15일 오후 8시 성당에 집합, 한 시간 가량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10시에 버스에 올랐다.
4대의 차량에 180여명이 탑승, 출발하면서 묵주 기도를 바치고 나서 쪽잠을 청했다.
잠깐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차는 2시간 30분 만에 아산군 인주면의 <공세리 성당>에
도착, 성지 순례 시작 전례를 행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1922년에
지었다는, 아름다운 성당은 어둠 속에서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순례 행렬은 삽교호를 옆에 끼고 아산만 방조제를 건넜다.
검은 빛 바다 위로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들, 호숫가에는 인가의 다정한 불빛, 우리들 손목엔 야광
팔찌, 길 안내 봉사자들은 붉은 막대등으로 이리저리 뛰며 소리없이 우리들의 밤길을 열어주었다.
인적이 없는 논 사잇길을 지날 때는 들리는 거라고는, 자다가 인기척에 놀란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
나지막한 풀벌레 소리- 순례자들은 묵묵히 묵주를 돌리거나 깊은 침묵에 빠져 든채 발을 옮겼다.
삽교 유원지를 떠나 신평 성당을 향했을 땐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소리
없는 행렬 속에서 낯선 땅을 밟고 지나는 기분이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몸은 나른해지고 발바닥이 점점 심하게 아파 오는 데도 불구하고- 무릎 통증은 참을 만했음에도 신평
성당에 도착한 후 더 이상의 도보순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2km의 거리를 걷는 일을 가볍게 생각했던 게 불찰이다.
여름용 얇은 양말 때문에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물집이 생겨 걸을 수가 없었다. 십자가를
생각하고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피멍든 맨발들도 함께 떠올려 보았으나 내게는 더 이상의 고행이 불가능했다. 환자 수송용(?) 차로 미리 <솔뫼 성지>에 도착 , 도보로 새벽까지 걸어오는 순례행렬들을
기다렸다. 성당에 묵묵히 앉아 있으려니 혼미한 상태에 자꾸 빠져들며 잠이 밀려왔다.
6시 30분이 지나니 순례자들이 하나둘 성지로 들어섰다. 도보 순례를 끝까지 해낸 그들이 부러웠다.
오전 7시, 함께 순례길에 올랐던 본당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했다. 신부님은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고
기분이 무척 좋으신 듯 보였다. 고난을 극복한 이들이 누리는 희열을 그분 얼굴에서 보았다.
어둠 속의 공세리성당
순례 시작 전례
반가운 이정표
드디어 솔뫼성지
조배실 옆의 미카엘천사
성체조배실
성모와 성자
왼쪽이 성당, 오른쪽이 기념관
예수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우뚝 선 소나무
그 옛날의 솔숲을 복원
한복에 비녀가 아름다운 성모님
생가 복원 기념비
생가 앞의 김대건 신부(1821~1846)
솔숲의 정기를 받고~
4대 순교자가 태어나고 살았던 곳
기도문
대청마루에 모셔놓은 영정
마카오에서 신부수업을 하고 배로 귀국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고난을 견디는 소나무, 그 옆의 솔뫼성지 신부님
식사 후 ‘십자가의 길’과 <김대건신부 생가> 이곳저곳을 두루 둘러보았다.
조용한 기회에 한번 더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귀로에 올랐다. (2009.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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