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중부유럽

(4) 이탈리아의 베네치아-피렌체-로마

맑은 바람 2009. 7. 3. 01:52

 

1997년 8월 10일 일요일 快晴.

--이탈리아의 <Hotel La Meridiana>에서는 대화가 안 통해 호텔 메모지를 끝내 얻지 못함

(가는 곳마다 호텔 메모지에다 일기를 쓴다)

8시 인스브르크 출발.

12시 넘어 안드레이의 땅 이탈리아에 도착.

이탈리아 국경을 넘으니 높은 산들은 사라지고 넘치는 과수원 밭.

과일 값이 무척 쌀 테니 실컷들 먹고 살겠다.

이태리 농가의 인상이 스위스, 오스트리아만큼 깨끗하고 깔끔하지는 않다.

낡고 오래된 지붕도 많이 보인다.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안드레이는 목에 힘을 준다.

휴게소에 딸린 슈퍼마켓 안에 있는 화장실의 입장료도 계산해 주고 귀에 익은 이태리 음악만

나오는 방송에 채널을 고정시켜 주기도 하고.(알고 보니 테이프였음)

  '누구나 지 살던 물이 최고지, 똥개도 지 집 앞에선 반 접고 들어간다.' --황사장의 말.

 

드디어 <베니스>(베네치아)=여의도 크기

여기선 버스라 불리는 배를 타려다 택시(그것도 작은 배)를 타고 베네치아 중심가로.

<두칼레궁>, <한숨의 다리>, <산마르코 성당>(마가 성인 유해가 안치된 곳)을 둘러보고

종탑(99m높이로 등대 구실을 했다 함)에서 울리는 종소리도 듣고 쇼핑도 하고 무라노 유리공장에서

금과 크리스탈로 된 목걸이, 귀걸이, 팔찌세트를 샀다. 무려 190달러. 큰 돈 썼다.

 <산마르코 광장>엔 두 개의 화강암 기둥이 있었다.

하나는 개선문, 하나는 교수대.

광장의 노천 카페에 앉아 잘 생긴 웨이터의 써빙을 받으며 차 한 잔을 놓고

음악을 들으며 비둘기 떼에 둘러싸여 한가로이 오가는 여행객들을 바라보노라니

마냥 여유롭고 짜릿한 행복감마저 밀려온다.

 한숨의 다리

 

 북적거리는 여행객

 

 베네치아 광장의 두 기둥(개선문과 교수대)

 

곤돌라 이야기: 이곳까지 와서 <베네치아 곤돌라>를 안 탈 수 있냐는 현지 가이드의 말에 

 50달러씩 내고 그 유명한 베니스 곤돌라에 올랐다.

햇살이 따가운 속을 썬그래스의 젊은 이태리 사공이 배를 젓고 악사와 가수가 노래하고

연주하며 흥을 돋우었다. 귀에 익은 '오 솔레미오','산타루치아','돌아오라 소렌토로'--

제 흥에 겨워 감탄을 연발하며 두리번거리다 보니, 악사까지 모시고 곤돌라를 타는

여행객이 우리밖에 없었다. 버스배를 타고 가는 이들, 다리 위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이들.

뭍에서 셔터를 누르는 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었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大國의 몰락한 후예들이 '감자에 구멍 뚫린 것 같이 생긴' 동양인의

시중을 들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갑자기 자괴감, 모멸감이 밀려왔다. 내 돈 내고 이 무슨 못할 짓인가?

 

1997년 8월 11일 월요일 淸明 그러나 不快

 닷새가 지나니 이젠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고, 어제 어디 다녔는지 오늘 어디 다니는지

아리까리--

아침부터 불쾌한 일의 연속. 조양의 불찰로 미국식으로 해야 할 식사를 거친 유럽식으로 하다가

중간에 잘못된 사실을 알았다.

3시간쯤 달려 <피렌체>(프로렌스)에 도착.

구씨 성을 가진 가이드가 나와 문자 그대로 '얼렁뚱땅 껍데기관광'을 시켜 준다.

 

 <성모마리아꽃의 성당> 천장화라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바사리의 <천지창조>가 있단다.

했더니 펄쩍 뛰며 천장화가 어디 있느냐 한다.

기본도 없이 어찌 현지 가이드를 하는지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괘씸하다.

성모마리아꽃의 성당은 입구에 사람이 너무 많아 껍데기만 보고, <산 조반니 세례당>의 門인

<天國의 門 >도 멀찌감치서 감상하고 메디치 가문의 복수가 행해졌다는 <시뇨리아 광장>에서

<메디치 가문의 城>을 보고 왼쪽의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산타크로체 성당>에 들어가

단테의 묘, 갈릴레이의 묘, 롯시니,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의 묘 앞에 서 보았다.

비록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있지만 이 얼마나 감격스런 만남인가!

 

 피렌체 <성모마리아 꽃의 성당>

 

 산조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

 

 시뇨리아 광장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말해주는 분수

 

 메디치 1세의 동상

 

 <산타크로체 성당>

 

 점심은 중국식.

일곱 사람 앞으로 나온 게 한 4인분 정도.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5가지 요리를 겨우 한 숟가락씩 맛보았는데 밥이고 뭐고 남은 게 없다.

미스터 구, 조양에게 불평의 화살이 날아갔다. 쌓인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최고 비싼 상품으로 왔는데 호텔은 겨우 별 넷(관광호텔은 별 넷부터란다).

그것도 하나같이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 저녁식사 후 나들이조차 못하게 하고 에스코터가 경험이

없어 시행 착오의 연속--여행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가이드들은 하나같이 빤질빤질, 지 실속만

차리고-- 한동안 불만의 열기가 식지 않았다.

 

 한바탕의 소란이 끝나고 3시간을 북동에서 남동으로 달려 마침내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로마>

닿았다. 저녁은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미스터 구가 된통 혼쭐나더니 억지 춘향으로 신경을 쓴 듯 보였다.

야경을 보러 나가자!

우리의 선동에 노친네들은 꿈쩍도 안 하고 결국 조#남 선생만 합세, 3만 리라를 주고 Call Taxi를

불러 <베네치아 광장>으로 갔다.

<임마뉴엘 기념관> 앞에서 일단 기 죽고, 옆에 있는 <신들의 집>에 가니 또 어마어마한 신의

동상들이 즐비하다.

구로마를 따라 주욱 걸으며 2000년 전의 榮華를 더듬어 보다.

조명이 그윽한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고 에스파냐인의 찻집에서 쉬며 다시 콜로세움을 바라보았다. 

 

 밤의 <콜로세움>

 

 에스파니아인 찻집

 

이들이 경기장을 만들고 예술을 즐길 때, 우린 땅 속에 움집 짓고 돌도끼로 살았으니 지금

저들은 조상 덕보고 잘만 사는데, 우린 헐떡거리며 외국 문물 쫓아가기 바쁘지 않은가?

로마의 밤--오래도록 가슴에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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