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6일 맑음**
아침 뉴스--괌에서 KAL기 추락, 199명 사망, 50여명 생존.
이크! 이 웬 날벼락.
얼른 뉴스 끄고 쉬쉬하며 공항 행.
아침부터 애태우며 안절부절못하는 두리 떼어놓고 오는 마음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
오후 2시 넘어 이륙.
시속 800km, 1000m 넘는 상공, 機體 바깥 온도 -50도,
상공을 더러 기우뚱거리며 10여 시간 만에 <후랑크후루트 공항>에 착륙.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철제를 많이 사용해서 차가운 독일인 이미지를 전해주는 공항.
어제 김포공항에서 만난 독일인의 모습이 크로즈 업 된다.
짧게 깎은 머리, 약간 노리끼리한 피부, 눈매와 콧날이 유독 매서운, 그래서
'You look like 게쉬타포' 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젊은이 말이다.
얼핏 고현정의 이미지를 주는 가이드와 우리 일행 7인이, 착하게 생긴 독일 할아버지의
안내로 <ASTRON 호텔>에 도착.
귀하고 비싸다는 물부터 사다 놓고 짐을 풀다.
11泊 12日 동안 苦樂을 같이할 七人의 同行者:
남자 3, 여자 4. (세 쌍의 부부와 40대 여자 하나)
남자 셋은 성격들이 만만찮아 보인다.
깐깐하기로 말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다.
다행히 아내들이 무던해 보여 큰 트러블은 없겠다.
집이 궁금해 전화 좀 해야겠건만 이런 데만 오면 뭘 몰라 마음대로 전화를 쓸 수 없다.
'다행히도' 집이 멀어지고 날짜가 지나면 지날수록 집에 대한 염려도 엷어진다.
--그게 진짜 다행일까?
**1997년 8월 7일**
9시 넘어 후랑크후르트의 호텔을 떠나 <괴테네 집>으로.
전쟁으로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자리에 어찌도 이리 그럴 듯하게 복원을 해 놓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지---
후랑크후르트는 괴테 때문에, 하이델베르그는 古城 때문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던데,
괴테, 프리드리히 대왕의 功이 크시다.
<괴테 생가>를 돌아보며 가이드가 한 말 중에 인상깊게 받아들여진 것은 괴테의 효심(특히
어머니에 대한)과 아버지의 괴테 사랑이다.
좋은 가문에, 어버이의 사랑, 부모 공경이 더해졌으니 걸작을 남기는 위인이 된 건 너무도 지당한 일(?)
<하이델베르그 고성>의 술통(2만 리터로 수백의 군사를 먹였다는)의 크기에 놀란 건 당연한 일이지만
에구! 징~한 한국인들--
이곳이 어디라고 천장에, 벽에, 대단치도 않은 이름 석자를 남기려고 저리도 한글로 낙서를 해댄 걸까?
후세에 길이길이 수치스러울진저!
하이델베르그 대학 주변도 어슬렁거리게 해 줄 줄 알았건만 고성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그쳐 끝내
서운했다. 얌체 가이드 라고들 말하더니 맞는 말 같다.
<프랑크프루트 시청사>
칼과 저울을 들고 공무원의 자세를 암시한다
건너편이 <괴테하우스>
<하이델베르그성>
세계각국 여행자의 낙서들~
어마어마한 술통
성에서 내려다본 <네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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