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에 경도되다
점선뎐/김점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감동적이고 아름답다.-김점선(1946~2009. 3.22)
글로써 세상의 한 귀퉁이나마 ‘맑고 향기롭게’ 하려고 힘써온 분이 유언장에 절판 선언을 하는 바람에
책과는 담 쌓고 살던 문외한들도 ‘그분 책 한 권 사놓아야 하는 거 아냐’ 한다. 이 와중에 나는 <점선뎐>을
읽었다.
그분의 명성과는 비교되지 못할지언정 이 알짜배기 인간의 따뜻한 가슴에 나는 경도되었다.
신수정, 장영희, 이해인, 양희은, 박완서, 앙드레 김 등이 그녀와 친했다. 내 친구 정숙이도 그녀를 잘 안다.
그녀는 ‘구수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김점선-그는 누구인가?
1) 웃는 말과 오리를 그리는 화가
오리는 그녀의 현세이고 내세다. 그 누가 오리탕을 사준다고 했을 때 우웩 하고 구토를 했다.
2) 일곱 살의 기억을 그리는 화가
빨강, 노랑, 초록, 파랑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녀의 그림은 동화적이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며 행복해 온다.
일곱 살 때엔 물질적 정신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했던 시기다.
3) 맑고 빛나는 영혼의 소유자
마지막 나뭇잎 하나까지도 모두 벌레가 먹어치우는 걸 바라보면서도 약을 쓰지 않고 자생력에 기대어
물만 주다가 마침내 스스로 살아나 연두빛 싹을 내는 무궁화나무를 보고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사람-
4) 상식의 파괴자
그녀는 ‘까치집 머리’가 제일 좋단다. 그래서 교복을 벗은 뒤부터는 자기 머리카락을 한번도 남에게
내어준 일이 없다. 내가 볼 땐 ‘쥐 뜯어 먹은 머리’다.
5)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동등한 인격을 부여하는 사람
거위더러 꽃을 뜯어 먹지 말라고 백번쯤 타일렀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고 궁둥이를 두들겨 팼다.
6) 그녀의 글은 ‘참수필’일 때도 있고 ‘詩 그 자체’일 때도 있다.
명아주
나는 무한히 펼쳐진
명아주 밭 가운데 서 있었다
명아주 천지의 산마루에서
북쪽을 향하고 선 채
나는 울었다
소리없이 울다가
큰소리로 울다가
온갖 종류의 울음을
명아주 밭에 서서 다 울었다
7) 가난과 맞서기 위해 결혼한 사람
진정한 예술가는 가난 속에서 자란다는 선배의 가르침에 따라 그녀는 돈 못 버는 남자를 택하고 자신의 그림으로 먹여 살렸다. 그러면서 자기 남편을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라고 했다. 그는 상대가 힘들어할 때 자신의 행복감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고 들어가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했다. 그는 아들과 그녀를 깨우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와 먼지 속에 고요히 서서 모자를 깨우치다가 홀연 어느 가을날 하늘로 되돌아간 사람이라고-
8) 통큰 여자
실물은 본 적이 없지만 사진으로 미루어 巨軀 중의 巨軀다. 그만치 먹성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딸기고 감이고 들통이나 소쿠리로 하나 가득 담아놓고 먹는 점선 씨가, 요새 우리들이 요 과일 조 과일 색색으로 조금씩 사서 한번에 먹을 만큼만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담아놓은걸 보면, “우하하하, 단작스러운 것들!”하며 웃겠지?
9)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 자신이 선택한 사람, 자기가 낳은 아이-누구나 아프고 쓰린 기억이 있을 텐데 어찌
그리도 고마운 일들만 기억해 내고 감사할까?-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능력이야말로 매우 탁월한 능력이다.
그는 선언한다.
“나는 한없는 사랑으로 내 영혼을 주시하는 어른들의 시선 속에서 자라났어.”
“아버지로부터의 끊임없는 칭찬의 말은 어른이 된 후 세상 속에서 어지간한 일에 끄떡도 하지 않게 하는
기초가 되어 주었다.”
“보살피지 않으면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10) 존경하는 인물은 외할머니
대학시절에도 변함없이 존경하는 인물은 외할머니다. 그분은 기품 있고 창조적인 힘으로 가득 찬,
매력적인 영혼의 소유자다.
11) 최고의 스승은 어머니
정식교육도 받지 않고 유쾌하게 놀기만 하고 자란 어머니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 자식을 가르쳤다.
자식이 잘못했을 때 차근차근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뉘우치게하는--
전쟁 속에서도 궁핍한 유년기를 보내는 딸을 위해 인형을 직접 만들어 주신 분-
“사람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최초의 일도, 최고의 일도, 최후의 일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임을 실천하신 분
12) 너무 좋은 경치를 보고는 우는 사람
그 아버지도 그랬다니 父傳子傳-나는 그런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진정 부럽다.
13) 지적인 영웅주의자
그는 독서광이었다. 그는 여행 대신 독서를 택했다.
시험 치를 일이 없는데도 밤새워 책을 읽고 줄쳐가며 몰두했다.
“머릿속이 편안하면 아무리 좁은 공간에 박혀서 지내도 우주를 다 가진 듯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는 “독서는 인간이 발명한 행동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활방식”이라 생각한다.
14) 최고로 훌륭한 엄마
그녀는 스승이 제자를 대하듯, 아주 훌륭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독점해서 관리하듯 아들을 대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엄마가 혹시라도 나쁜 영향을 줄까봐 평생을 긴장하며 살았다 한다.
비웃거나 빈정거리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가장 나를 뜨끔하게 하는 말.
내 부모가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준 게 별로 없다고 툴툴거려 왔으면서 나는 내 자식들에게 얼마나 멋진
추억을 안겨 줬나? 얼마나 자식을 존중하면서 소중히 대했나?
(2010.3.28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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