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걷기 예찬자는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의 한비야,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의 김남희가
아닐까?
걷기에 관한 나의 관심이 고조된 것은 <산티아고 가는 길>에 관한 책들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나와 동갑내기 미국 수녀 조이스 럽의<느긋하게 걸어라>와 독일의 유명한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의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김남희의 <걷기 여행 2>를 읽으며 한동안 800km 대장정에 오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다가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을 읽고 제주도 ‘올레 길’에 나서 두어 군데 자전거로 돌기도 하고 ‘사려니 숲길’을 걷기도 했다. 올여름, 무릎에 이상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20km가 넘는 <야간 도보 성지 순례> 행사에 참가해서 아산만 삽교를 건너 <솔뫼 성지>까지 다녀왔다. 발이 부르트고 살갗이 쓸려서 한 걸음 내딛는 일도 고통이었으나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특정한 줄거리가 없다.
단지 ‘걷기’에 관하여,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데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을 예로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문장들은 ‘걷기’만큼이나 느긋하고 서정적이어서 밑줄치고 음미하고 싶은 데가 많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걸어 다니는 시계' 소리를 들은 칸트, 고독한 산보자 루소, 대화술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걷기 예찬자들이었음을 알겠다. 그리스의 ‘소요학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정원을 산책하며 수업을 한 데서 나왔으니 역시 ‘걷기’는 예찬 받을 만하다.
“나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키에르케고르
“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니체
이들도 알고 보니 모두 걷기 예찬자들이다.
-길에 대하여
“오솔길은 물론이지만 세상의 모든 길은 땅바닥에 새겨진 기억이며 오랜 세월을 두고 그 장소들을 드나들었던 무수한 보행자들이 땅위에 남긴 잎맥 같은 것, 여러 세대의 인간들이 풍경 속에 찍어놓은 어떤 연대감의 자취 같은 것이다.“
“걷는 사람들의 길은 살아있다. 그 길은 언제나 여유를 가지고 우리를 어디엔가로 인도한다.
-순례는 걷기 역사의 시작
아브라함이 그의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오는 먼 여정에 오른 일이 최초의 걷기 역사의 시작이다.
-걷기의 의의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
걷기는 세계를 사물들의 충일함 속에서 생각하도록 인도해 주고 인간에게 그가 처한 조건의 비참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길을 걷는 것은 장소의 정령에게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계의 무한함에 바치는 끝없는 기도의 한 형식이다.”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다.”
“대지는 자동차의 타이어를 위해서보다는 우리의 두 발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우리에게 몸이 있는 한 그것을 써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독하게 수 천리 흰 구름의 길을 가노라”-석가모니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김화영
(200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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