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이 어수선한 나라 안팎 사정과 닮아 마음마저 잦아들게 한다.
어느 착한 손의 선물이었나 생각하며, 나이로비산 커피를 한 잔 내리며 향내에 빠져든다.
지금이야 <카페>니 <원두커피 전문점>이니 하는 세련된(?) 간판이 더 많고 인기도 좋지만,
70년대 만해도 젊은이들은 만남의 장으로 <다방>을 선호했다.
학교 앞이라 제일 많이 드나들었던 신촌로터리의 <왕자다방>을 비롯해서 연대 입구의 <복지다방>,
광화문의 <여왕봉다방>, 종로의 클래식 음악감상실<르네상스>, 명동의 <전원>, 을지로 입구의 <훈목다방>,
프라자 호텔 뒤의 <가화다방>, 중국대사관 뜰이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현재도 옛날 단골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가무다방>--
문화의 불모지였던 당시, 20대의 방황과 주체할 수 없는 시간들을 고스란히 수용해 주던 공간들이었다.
“여자들은 모이면 뭘 하고 노느냐?”
고 어떤 남자가 묻더란다.
여자왈,
“얘기하고 놀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오직 입만 갖고 노는 걸 남자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70년대 포항 시절-
퇴근 후 짬짬한 시간에 생각나는 공간이 또한 <흑장미 다방>이었다.
포항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흑장미 다방엔 당시에 착공한 <포항제철> 때문에 몰려오게 된 사람들과
나처럼 근무지 따라 타지에서 잠시 흘러 들어온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게다가 포항엔 또 해병대 사령부가 있어 젊은 장교들도 많이 드나들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풋풋한 시골학교 여선생에게 그곳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심심할 때면 꽤나 열심히도 출근(?)을 했건만, 나의 '백마 탄 왕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블랙커피만 홀짝거리다가 일년 만에 흑장미 다방 시절을 접고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그러나 아련한 추억으로 젖게 하는 공간이다.
이제는 그곳도 고층빌딩이 들어섰거나 <흑장미 다방> 간판 대신 <카페 블랙로즈>를 내걸고
여전히 젊은이들을 불러들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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