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충청도

<보령 석탄박물관>-강남문화원 <역사문화유적탐방>팀과 함께(1)

맑은 바람 2010. 7. 26. 02:01

 

 

知人의 소개로, 처음으로 강남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역사문화유적탐방>팀을 따라 여행을 떠났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는 둥 마는 둥 뒤채다가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가볍게 배낭을 챙긴 후 한 시간 거리의 강남문화원을 향해 집을 출발했다. 이른 시간이건만 43명의 여행객들은 제 시간에 모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이름표를 받고 차에 올랐다. 오전 7시, 차는 충남 보령을 향해 출발했다.  잠시 후 따끈한 떡이 나왔다. 콩과 호박을 넣은 달착지근한 떡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9시 30분, 차는 <보령 석탄박물관>에 닿았다.

탄광 하면 강원도를 연상했고 사북 탄광, 정선 탄광을 다 돌아보았지만 충청도에서 탄을 캤다는 사실은 오늘에야 알았다.

<보령석탄 박물관>은 국내 주요 석탄산지인 충남 탄전과 이 지역 탄광 근로자들의 공로를 기념하고, 석탄이 연탄이 되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여러 가지 장비 등을 후손에게 알리기 위해 1995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석탄 박물관이다.

해설사의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로 박물관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생사가 달려있는 곳이라 금기도 많았다.

 

       폐광의 갱도와  연결되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냉풍터널)

 

        광부를 실어나르던 인차

 

         의자가 사선으로 되어 있다.

 

        석탄을 담아내던 광차

 

         이것이 바로 구공탄

 

 

         가정에서는 주로 22공탄을 썼지

 

        탄 제조틀과 연소기

 

        탄의 재료가 다르므로 빛깔에 따라 화력도 다르다

 

        1995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우리 세대(50~70년대)는 연탄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았다. 김장 김치 한 접(100통) 담가 놓고 연탄 500장 들여 놓으면 겨우살이 준비 다 했다고 한시름 놓았다. 그래서 연탄 값 몇 원만 올라도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석탄은 근대산업화의 원동력이 되어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탄광을 둘러보는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은 그 시대에 연탄이 차지하는 생활의 비중이 어떠했는가를 잘 말해 준다.

만감이 교차하는 <보령 석탄 박물관>을 뒤로하고 청양 <장곡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