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 10 편

7.<자화상> 서정주

맑은 바람 2010. 12. 11. 23:43

 

자화상(自畵像)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 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937년 가을 작) 

 

***남현동 그 집은 잘 복원되고 있는 걸까?

그가 한창 친일행적자로 부각되는 와중에 남현동집이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었다.

지금이라도 복원에 들어갔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들은 그의 친일행각은 입에 거품을 물며 떠들면서

맏아들인 그가 광주학생 사건 때 주동자로 체포되어 옥살이를 한 후

중앙고등 보통학교를 퇴학 당해서

그 아버지의 희망을 꺾어버린 이야기는 왜 묻어 두는가?

 

누가 뭐래도 미당선생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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