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례식엔 모두가 화사한 복장으로 꽃을 들고, 생전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참석했으면 좋겠다.”
그분 희망대로 장례식장엔 국화 대신 알록달록한 꽃으로 덮였다 한다.
소풍 잘 끝내고 돌아간다는 천상병 시인처럼, 남천 송수남 화백도 죽음을 축제분위기로 만드신 분이다,
인연이란 묘한 거다.
그분 살아생전에 전시회 한번 가본 적이 없었으나 신문 한 귀퉁이에 訃音과 함께 실린 그분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아쉬움과 함께 책이라도 사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권을 주문했으나 한 권만 먼저 왔다.
2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을 강냉이 한 그릇 먹는 동안 다 보았다.
너와 내 생각이 다르기에
이 세상이 재미있고
너의 생과 내 생이 다르기에
이 세상이 풍요롭지 않더냐
같음을 뽐내지 말고 다름을 미워하지 말 일이다.
-살며 살아가며 3
비오면
산은 더욱 푸르고
바람 불면
대숲 또한 맑아지지 않더냐
-살며 살아가며 15
삶은
가파르고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숨이 가쁘다
-살며 살아가며 21
오늘은 무엇을 그리랴
난을 칠까
매화를 그리랴
난이면 어떻고
매화면 또 어떠랴
언제나 할일이 있음은
살아있음의 축복이다
-수묵의 뜨락에서 22
꽃밭이 아름다운 건
노란꽃 빨간꽃
함께 있기 때문이다
벌나비가 꽃을 가리더냐
모두 더불어 한평생이다
-살며 살아가며 26
꽃은 절로
피지 않는다
꽃만 보지 말고
꽃 속에 담긴
해도 보고 달도 보고
바람도 느낄 일이다
-님 보듯이 꽃 보듯이 10
팍팍한 삶이라도
여유를 가져라
아무것도 없는 황토밭에
고구마가 탐스럽지 않더냐
-살며 살아가며 30
그저 삶이란
복잡하고 괴로운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항시 조용한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그래서 그만치 힘든 것이다
-살며 살아가며 40
나는 밤처럼
고요히 한 세상을
홀로 살았네
누구와도 더불어
넉넉히 나누지도 못하고
헛헛한 찬 들판에서
덧없이 시간을 보냈네
혼자 드는 술잔에
달빛만 외롭구나
-술과 시와 노래 12
이 척박한 세상에
마음이 편해지는
따뜻하게 사는 이야기
누구나 듣고픈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수묵의 뜨락에서 10
세상에 그냥 와서
묵화만 치다
소리없이 조용히 가네
색없는 수묵처럼
그렇게 살다 가네
-수묵의 뜨락에서 40
시도 그림도 복잡하지 않았다. 직설적이고 화사했다.
화려한 경력과 受賞한 이력을 보면 외로울 시간도, 아플 시간도 없었겠건만 예술가의 원초적 고독인가, 詩畵 도처에 외로움이 배어 있다.
하루하루 열심히 잘 살다가 떠날 때에 하얀 국화꽃 대신 빨간 장미, 노란 튤립 속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작별하면 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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