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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등단-다혜 최부자

맑은 바람 2013. 10. 3. 18:41

 

계간지 <수필춘추>를 받았다.

늘 오는 잡지가 아니라 이번 호(2013년 가을호)에는 혹시 내가 알 만한 사람의 글이 실렸나 하고 목차를 자세히 보니, 반가운 이름 석 자가 눈에 들어온다.

추천작에 최부자의 글이 실렸다부자가 마침내 수필가로 등단한 것이다.

 

                                                                                    맨 오른쪽이  최부자

 

(등단 글)

추모사 1, 2

다혜 최부자

 

1.아버님의 노래

저문 들녘에 서걱대는 수수깡처럼 아버지의 여윈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농촌에서 사시면서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겪어오셨으나 슬하에 10남매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어오셨습니다.

젊은 시절, 교회에 다니시며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역사회발전과 학교를 세우고 교육사업에도 앞장서서 활기찬 인생을 살아오셨으나 노년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오랜 병고를 치르고 계십니다.

겨우내 자리보전하고 누워 지내시더니 올봄엔 양지바른 뜨락에도 거동하기 힘드십니다.

교회일로 학교일로 늘 분주하시던 아버님은 구십 고개를 훨씬 넘어 이제 육신의 장막을 벗을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오늘도 종일 자리에 누워 긴 하루해를 아버지의 노래를 부르시며 보냅니다.

 

조국영봉 백두산

삼천고지 유천지

정기남진 성태백하고

북접대륙 삼면하라

 

단군창업 차근력

천주보우 오천년

홍익인간 위국시하니

배달민족 만대영이라

 

지난해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아버지의 노래는 항상 귓전에 쟁쟁합니다.

일할 때나 길을 걸을 때도, “조국영봉 백두산 삼천고지 유천지--”

 

2.어머님 우리 어머님

다사다난하신 아버님을 내조하느라 어머님께서는 한평생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18세 어린 나이에 여자라고는 없는 집안으로 시집오셔서 열 살 난 시동생, 시아버님, 할아버님까지 모시고 어려운 살림을 시작하면서 맏딸을 낳아 살림 밑천으로 삼고, 아버님과 함께 <신영농법>을 연구하시면서 농사를 지어 살림을 일구어 놓으시고 10남매를 모두 교육시켜 사회의 일원으로 제몫을 담당하게 하신 어머님.

노년에는 대문 앞에 모란장처럼 각종 야채를 구색 맞추어 진열해 놓고 파시면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야채와 함께 사랑도 듬뿍 쏟으시던 어머님.

농사일뿐 아니라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은쟁반의 옥구슬같이 아름다웠고 잘 박힌 못같이 기품이 있어 이웃 간에서도 친척들 사이에도 존경을 받았던 어머님.

아버님이 편찮으신 후로 상심이 크셔서 일손을 놓고 자주 회심에 잠기곤 하셨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가끔 찾아뵙는데도 늘 막내아들을 기다리시는 어머님 가슴에는 바람소리가 쿵쿵, 커다란 구멍이 납니다.

있는 옷만 해도 평생 입겠다던 어머님이 요즘 들어 부쩍 새옷 사오라고 당부하시는 모습이 몸과 마음이 다 약해진 것 같습니다.

한평생 흙살 부둥켜안고 씨름하시던 처절한 몸부림도 이제 한줌 티끌에 날려 보내고 시리고 텅 빈 가슴 겹겹이 싸매고 저 멀리 보이는 본향 집 찾아 아주 먼 길 떠나시는가요.

밤이나 낮이나 아버님을 찾으시더니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아버님을 만나셨겠지요.

 

일찍 친정어머니를 여읜 철없던 새악시 엄마 같은 시어머니와 정다운 세월을 보냈건만, 오늘은 밭이랑 혼자 세며 지는 노을 속에 곱게 물들어 갑니다.

 

오래 전 두 분 시부모님 살아계실 때 부자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허리가 휘도록 일에 묻혀 사는 부자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했었다.

험난한 세월의 강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낸 그녀가 이제는 두 분 시부모님을 가슴에 묻고 추모의 념을 토해내는 모습이 참으로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부자야, 이제는 네가 그토록 소망하는 글쓰기에 매달려 밤을 지새워도 좋겠다.

거듭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