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체구, 뿔테 안경 너머로 학생들을 쏘아보는 강렬한 눈빛, 팔짱을 끼고 어딘가 한곳을 응시하며 빠른 속도로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잠시 말을 뚝 끊는다.
학생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그러다가 다시 띄엄띄엄 마침표를 찍어나가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시니컬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몸짓과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삼십 후반의 젊은 교수는 학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다.
아이스크림과 빨간 장미와 직접 만든 원두커피를 좋아하시는 선생님-
스무 살 내 기억 속의 김열규 선생님이시다.
그분이 어제(2013.10.23) 幽明을 달리하셨다.
서울대 영안실 1호-번잡한 걸 싫어하시는 선생님은 3층 조용한 공간, 국화꽃 속에 파묻혀 계셨다.
이런 저런 사정들로 오지 못하는 친구들 몫까지 대신한다는 마음으로 깊숙이 절을 올렸다.
影幀 속의 선생님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내 절을 받으신다.
인사 후 바로 돌아서 나올까 하다가 마음을 바꾼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차려주신 저녁밥을 먹고 싶었다.
그러노라면 아는 얼굴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식사가 다 끝나도록 아무도 나타나주지 않는다.
자리를 뜨려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한다.
2년 후배란다.
반가운 마음에 그들 자리로 가서 옛이야기를 나누며 선생님을 회상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선생님은 훨씬 구체적이고 자상하고 따뜻하다.
내가 몇 년 전 선생님에 대해 새삼 알게 됐던 것처럼--
<에세이플러스>에 실린 내 글을 보고 전화했다며 대학 시절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짐작 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은사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럽던지--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친구들과 몇 해 전에 고성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너른 뜰과 커다란 창문이 바다를 향해 있는 거실에서 식사도 하고 선생님이 손수 만들어 주신 커피를
마시고 함께 山行도 했다.
地上에서 선생님과 함께했던 마지막 시간들이었다.
81세.
길지 않은 삶을 접으시며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날도 책상머리에 앉아 글을 쓰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