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푸줏간 총각

맑은 바람 2013. 12. 29. 18:48

 

우리동네 골목길엔 푸줏간이 두 군데 있다.

한 집은 농협직거래집인데 주인이 말수가 적고 점잖다. 일부러 말을 걸어야 대꾸를 하고 자기할 일만 한다.

그러나 어쩌다 자기코드에 맞는 얘기가 나오면 장황하게 썰을 풀기도 한다.

또 한 군데는 <양지담>인데 얼마 전 주인이 바뀌었다.

싹싹하고 시원시원한 젊은 주인이다.

자연 발길이 그쪽으로 가게 된다. 고기 살 계획이 없었는데도 가끔 들어가서 고기를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 하나둘 불이 켜지는 시각인데 푸줏간 <양지담>불이 꺼져 있다.

 

‘벌써 문 닫을 시간도 아닌데, 무슨 일이지?’

가까이 가서 유리문을 보니 하얀 종이에 뭔가 적혀있다.

‘입원 중이라 당분간 문을 열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이-- 암에 걸렸을 리는 없고-- 갑자기 무슨 일이지? 교통사고가 났나?’

전화번호도 적혀 있지 않아 알 도리가 없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때면 저절로 시선이 불 꺼진 가게로 간다.

꽤 여러 날이 흘렀다.

‘중병에 걸리거나 크게 다쳤나? 이러다 가게 문 닫는 거 아냐? 연말과 연초에 매상이 가장 많이 오른다던데-- ’

자식 생각하듯 나도 모르게 걱정이 는다.

 

마침내 어느 날 <양지담>에 환하게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고기를 꼭 사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문을 밀고 들어섰다.

내 또래 부인들이 웅기중기 모여서서 한 마디씩 한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그럼요~”

“어떻게 알아?”

“많이들 전화주시고 문자도 주셨어요.”

총각은 밝게 웃으며 손을 부지런히 놀린다.

 

한 분은

“나 자네 덕분에 돈 굳었어, 다른 데는 가기 싫고, 고기를 안 사먹게 되더라구~”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얘기들을 들으니 사태가 파악이 됐다.

처음에 몰랐는데 장갑을 벗으니 왼손 엄지손가락을 붕대로 감고 있었다.

고기를 썰다가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나갈 뻔 했단다. 인대까지 손상을 입어 큰 수술을 하느라 여러 날 걸렸단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끔찍한 사고였다.

 

푸줏간 총각(이번 사고 때문에 부인들이 얘기해서 총각인 줄 알았다.)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가 있다.

언제나 활기차고 긍정적이다.

안 된다, 못 한다, 죽겠다고 징징거리는, 평생 도움이 안 되는 걸림돌 같은 위인들이 넘쳐나는 때에 그렇게 밝고 서글서글한 사람을 대하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나날이 손님이 늘어가고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웃이 많은 것도 평소 그의 친절 덕분이 아닌가?

이 겨울 다친 상처를 딛고 푸줏간 총각 더욱 신나게 매상이 팍팍 올랐음 좋겠다.

 

밝고 긍정적이고 활기찬 성품이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몸에 밴 습관일 수도 있다.

돌아오는 갑오년엔 다리 무릎 허리 아프지 말고 우리도 말처럼 경쾌하게 새날들을 향해 가볍게 사뿐사뿐 내디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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