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일이 며칠 남지 않아 오늘 산소엘 다녀오기로 했다.
추위가 많이 풀리고 바람도 별로 없이 비교적 푸근한 날씨다.
골목길을 빠져나가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손녀인 듯싶은 처녀와 손을 잡고 한 손엔 지팡이를 콩콩 찍으며 걸어오신다. 지팡이에 의지하긴 했으나 할머니 걸음이 빠르고 씩씩해서 손녀가 끌려가는 인상이다.
어머니는 말년에 무릎이 많이 아파 거의 외출을 못하셨는데 내가 지팡이 얘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앓느니 죽지, 그런 걸 남새스럽게 어떻게 들고 다녀!” 하고 잘라 말했다.
어머니는 끝내 지팡이 신세는 지지 않았다.
용인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신논현역>에서 내렸다.
시간이 좀 남아 천천히 걷고 있는데 길바닥에 엎드려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띈다.
사지가 없는 몸뚱이를 이끌고 이른 아침부터 구걸하러 거리로 나왔나 보다.
잠시 쉬더니 배추벌레처럼 천천히 앞으로 나간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에서 뭔가 치밀어오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는다.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잊을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돌아가실 무렵에도 노상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었다.
그날도 내가 현관문을 따고 들어서는데,
“왜 이제 와? 아침부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는데--”
화장실 앞에 언제부터 쪼그리고 앉아 계셨던 걸까?
몸이 말을 안 들어 일어설 수는 없고, 화장실은 가야겠는데 기다리는 자식은 오지 않고--
참고 또 참는 동안 얼마나 가슴이 녹아 내렸을까? 괘씸하고 야속했을까?
어머니 가신 지 어느덧 6년, 새록새록 잘못한 일들이 떠올라 순간순간 눈시울을 적신다.
그러면서도 이 미욱한 딸이 슬프고 괴로울 때면 어머니가 가까이에서 어루만져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위로가 된다.
무덤 앞에서 큰절 올리며 생각한다.
‘어머니는 무덤에 계시기도 하지만 내 가슴 속에 아직도 살아 계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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