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사라지는 단골가게

맑은 바람 2016. 7. 19. 01:12


몇 년 전 우리 집 골목입구에 <**마트>가 있었다.

예닐곱 평이나 될까 말까 한 가게 안은 두 세 사람이 들어서면 비좁아서 몸을 피해야 하는 재래식 구멍가게였다.

주인 남자는 근육질의 건장한 사내였고 여주인은 인물이 아주 예뻐 속으로 이런 데 있기 아깝다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바로 길 건너 건물이 공사에 들어가 여러 날을 뚝딱거리더니 <홈플러스> 체인점이 들어섰다.

마트가 단골집이라 당연히 가던 가게로 들어가야 하는데 자꾸 길 건너 홈플러스로 눈이 갔다.

한번은 이쪽 한번은 길 건너로 불편한 걸음을 했다. 아무도 뭐라는 사람도 없건만--

마트엔 날로 손님이 빠져나가는 게 보여 잘도 버틴다했더니 어느 날 가게 문은 닫히고 그 자리에 옷가게가 들어섰다.

 

아들 하나마저 짝을 채우고 마침내 42년 만에 잠정적인 자유(?)’를 얻어, 이참에 어디 좀 떨어진 곳으로 여행이라도 갈까하고 여행기 세 권을 주문해 놓고 오늘 종로 6가에 있는 단골서점으로 찾으러 갔다.

가게 문에 임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어디로 이사 가세요?”

바로 옆이에요. 직원한테 인계하고 저는 그만둘라구요.”

?”

워낙 장사가 안 돼서요.”

주인은 고개를 맥없이 늘어뜨리고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인터넷 구매 인구가 늘어서 그런가 보죠?”

요새 어디 책 읽는 사람 별루 있나요?

좋은 신간들이 저렇게 쏟아져 나오는데 찾는 이가 없어요.”

괜히 민망해진다.

 

이 골목의 서점들이 한때는 전국서점에 70~80%의 서적들을 도매로 넘기며 성황을 이루던 곳이었다.

몇 년 전부터 하나둘씩 업종이 바뀌더니 이제 책방이 몇 집 안 남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래도 종이책을 사주어야 출판사가 살아남지하는 사회적 의무(?) 같은 것이 있어서

그래도 매달 서너 권씩 책을 사러 나왔는데-- 정든 곳이 또 하나 사라진다.

 

건강하시고 오래 사세요.”

가게 문을 밀고 나오는데 콧등이 시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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