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포 전 知人들과 차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상대방은 좀 머뭇거리다가 나 아무개라고 한다.
나는 반가워하며 그동안 많이 궁금했었다고 하니 불원간 한번 만나자고 한다.
그는 1966년 일 년 동안 한 캠퍼스에서 공부하다가 온다 간다 말없이 학교에서 사라졌다.
군대를 갔는지 자퇴를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동 학년 같은 과이면서 고등학교 일 년 선배인 그는 시험이 임박하면 가끔 노트를 빌려가기도 했다.
나중 알고 보니 노트를 빌려준 나보다 그가 성적이 더 잘 나왔다.
가방 끈 길다고 아는 게 많은 건 아니듯이, 필기 잘한다고 성적도 좋으란 법은 없는 게 입증된 셈이다.
그 선배도 학교를 떠난 후 내 소식이 궁금해서 종종 수소문을 했단다.
졸업 무렵의 근황과 중학교 선생 노릇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최근 캐나다에 거주하는 18회 동문을 통해 내 연락처를 알게 되어 전화했다고 한다.
가끔 궁금증이 도져,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그 선배의 신상 정보를 알게 됐다.
그는 70년대에 캐나다로 건너가 토론토에서 모신문사에 근무하면서 북한도 여러 차례 왕래하고 모스크바 특파원까지
지낸 후 명성황후 초상화 원본 발굴, 관동군 한인 징집 명단 발굴의 공로로 기자들의 영예인 <관훈클럽상>을 수상하고,
러시아 탈북자의 남한 행을 도와 <대한민국 인권상>도 수상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기자로 살았던 것이다.
지난 목요일 낮 1시 30분
프레스센터 지하 <전통찻집>에서 반세기만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50년 風霜이 머리칼과 얼굴에 자연스레 내려앉았어도 얘기가 오고가는 사이 어느덧 縱橫無盡, 세월을 넘나든다.
고교동창들끼리 만나면 기분은 늘 열일곱으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두 시간 남짓 지난 세월을 反芻했다.
그를 좋아했던 여학생, 그가 좋아했던 여학생 얘기도 했다.
이도 저도 아닌 내가 그를 이렇게 한번쯤 꼭 만나고 싶어 했던 것도 나의 오지랖과 호기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서는데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하다.
아,
그때 대학노트 갈피에 꽂혀 있었던 함형수의 <해바라기의 碑銘>이 그의 필체인지 물어볼걸~~
<해바라기의 碑銘>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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