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첫 손녀 태어나다

맑은 바람 2016. 10. 13. 21:45



 

450분쯤 됐나? 아들 메느리가 진통이 잦아지고 있다고 병원 갈 채비를 하고 내려왔다.
나도 서둘러 얼굴에 물만 묻히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따라 나섰다.  
5시를 알리는 시그널과 함께 차 안의 라디오에서는 애국가가  4절까지  흘러나왔다.
잠들을 설치고 부석한 얼굴로 말없이 애국가를 듣는다. 출근 전 시간이라 뻥 뚫린 내부순환로로 30분만에

가락동 병원에 도착, 분만실로 들어갔다.
7시에 원장님이 오셔서 입원 여부를 결정 짓는다고-- 
원장님은 진료를 마치고 문을 나오면서
오늘 나옵니다."
명쾌하게 말하고 돌아선다.

아유, 다행!
입원시간이 길어지면 산모가 힘들어질 테니 말이다.
분만실 여기저기에서 산통으로 비명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건만, 릴리는 산통이 올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심호흡과 복식호흡으로 잘 견디고 있다.
四圍 고요해지면 기계를 통해  전해오는  아기의 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근방  찜질방에 가서  샤워하고 잠시 눈 좀 붙였다가 올랬더니  어무이가 여기 계시면  불편하단다.
그래, 별 이야기도 없이 졸고 앉았는 시에미 보기가 불편하겠다 싶어 집으로 가는  지하철로 발길을 돌린다.

이른 아침부터 길가에 야채바구니를  놓고 계신 할머니가 눈에 띈다.
그냥 지나치려다  돌아가서 아사기 고추와  청양고추, 피망을 세 바구니에 5000원을 내고 샀다.
할머니의 기분 좋은 하루를 열어드리고 싶었다.
순산을 열망하는 내 마음을 실어~~

가락시장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마침 3호선이 있어  귀가가 수월했다.
집에 와 있으려니, 926분에 무통분만 마취에 들어갔으니 곧 나올 거란 아들의 메시지가 떴다.
12시가 다 되도록 소식이 없어  간호원실로 전화했더니 개인 정보라 자세히 말해줄 수 없단다.
목이 타고 안절부절 못하겠다.
30분 후 아들에게 전화했다.
무통효과가 두 시간인데  시간이 지나서 유도분만 주사를 맞았다고~~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무통주사와 유도분만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무통주사는 출산 시간을 늦추고, 유도분만은 실패할 경우 그 다음 수순이 제왕절개라고~~
마음이 잠시 착잡해진다.
내가  거기  그냥 있을걸.
결정의 순간에 좀더 신중하도록 독려할걸~~
이제는 하느님과 의사의 손에 맡기는 수밖에~~
어머니, 메느리가 큰 고통없이 아이를 낳게 도와주세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갈 거냐고?
지금쯤 얘들이 기다리느라 지쳐 스트레스  받고 있을 텐데  기냥 집으로 오시라고 문자 보내 놓고  앉아있자니 
문득 이 아가가 할메를  기다리느라 안 나오나  생각하니  잠시도 지체할 수 없어  다시 가락동으로 향한다.
입원실 앞에 앉아 있던 아들이
"엄마지금  나오고 있어." 한다.
안에서 간호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 힘주세요하나 둘 셋~~"
222  힘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 생명이 엄마라는 여인의 몸을 빌어 먼 별에서 마침내 우리  가족에게로 왔다.
환영한다, 별아!
고맙다, 수고했다, 우리 큰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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