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적나라하고 충격적인 6.25 이야기는 읽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인민군이 댓글을 달아놓았다는 저자의 일기장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기억력이 비상해도 이런 글이 나올 수가 없으리라.
저자와 나의 나이거리 15년-저자가 겪은 일제 말-해방-건국-6.25의 대수난 시기를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보냈다.
생존의 밑바닥을 치고 마침내 생을 움켜쥔 그날의 생존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에게 6.25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미군 철수 직후라 비행기도 전차도 한 대 없는데다, 모내기철이라 병사들은 부모를 도우러 고향으로 휴가를 떠난 일요일,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서 들이닥친 침략자 앞에 무방비상태의 아군은 허둥지둥 밀리고 밟힐 수밖에 없었다.
한강철교는 서둘러 폭파되어 한밤중 멋모르고 한강교를 들어섰던 차량과 피난민이 맥없이 수장되고 다음날 군사들의 이동에 썼던 작은 배들로 도강을 할 때는 본능만 남은 인간들의 모습을, 꽃다운 나이에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당한 저자는, 낱낱이 그 광경을 지켜보게 된다.
최근에 가슴을 졸이고 본 <국제시장>이나 <덩케르크>가 먼 나라 일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1.4후퇴 때 30만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는 대목에선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간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 해에 하늘의 도우심으로 한강이 단단하게 얼어붙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서울을 탈출한 피난민들이 남하하던 중 미군기의 오판으로 폭격을 가해 떼죽음을 당한 일이다.
남쪽의 사망자 중 85%가 민간인이라는데 이런 일이 종종 있었으리라.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하랴~
저자는 6.25 피난살이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 했다.
내게는 느닷없이 흉기로 돌변하는 차들과 막말과 거침없는 행동들이 난무하는 오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것을~~
백척간두의 국가 위기와 개인의 고난이 부산에서 막을 내리고 서울로 입성해서 동숭동 캠퍼스 시절을 구가하는 이야기는 ‘고생 끝에 낙을 누리는’ 자의 뿌듯하고 행복한 모습이라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본 ‘동숭동 시절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이어령 선생님과의 연애사건(?)이다.
5년을 한결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만났다는 건 어쩌면 만인이 부러워할 만한 기적 같은 일 아닐까?
그런 남자를 어찌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자의 선배이자 스승들 중엔 내가 대학에서 가르침을 받은 분들이 많다.
김완진, 김열규, 이재선, 김학동--모두 나의 스승들이시다.
그중 가장 가깝게 느끼고 몇 번 찾아뵙기도 했던 김열규 선생님-그분을 저자는 무뚝뚝하지만 진솔하고 순수한 분이라고 보았다.-은 이미 이 세상분이 아니다. 경남 고성 집으로 찾아뵈었을 때 거실 통창 너머로 가득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선생님이 직접 내려주신 차를 마시던 일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음미하고 싶은 문장들***
-젊음은 위장이 안 되는 햇빛 같은 것이어서 그 빛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105쪽)
-지금 뒤돌아보니 일생에 한 번쯤은 겪어봐도 될 만한 고난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그 무법천지에서 범죄행위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이따금 우리민족의 선량함에 감동을 받는다.(149쪽)
-소한이다.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날이다. 그런 날에 젖은 신을 신고 종일 걷는데 얼어죽지도 않고 동상에 걸리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이 살아남는 것을 보았다. 기적과도같은 자생력이다. 인체의 적응력은 괴력에 가까웠다.(162쪽)
-전쟁은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문화적인 것을 버려도 되는 쓰레기로 여기도록 인간을 퇴화시킨다. 평화란 기호품을 즐길 수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194쪽)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인 것 같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묻고 있다.
답을 생각해 두어야 할 계절이다.(195쪽)
-자유가 그렇게 겁나고 허허로운 것인 줄을 우리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새로 주어진 엄청난 자유 속에서 그들은 자기 목소리를 못 찾아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뒤숭숭하고 지리멸렬한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그 초라한 집단은 아름답고 풍성했다. 젊음과 미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46쪽)
-전란의 시기는 통틀어 광기였고 그러면서 동시에 허탈이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치열한 욕망 소용돌이였다. 그래도 거기 내가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은 것은, 거기 바다가 있었고 우리에게는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음이야 어느 시댄들 소용돌이가 아니었던 적이 있는가?(251쪽 부산 피난민 학교 시절)
-나는 다시 한 남자를 태양을 삼아 종일 그쪽만 보며 사는 해바라기가 되어 있었다. 그가 주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찾다가 못 찾은 모든 것들이었다. 사랑에 대한 확신, 산불 같은 정열, 모든 것을 다 내놓는 완전한 헌신 같은 것-- 그렇게 시작해서 5년 동안 하루도 안 만나는 날이 없는 오랜 사귐이 계속되었다.(292-293쪽)
**시간내서 평창동 <영인문학관>에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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