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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 버트란트 러셀

맑은 바람 2017. 9. 4. 21:55


-어제 북한에서 실시한 수소폭탄 실험은 세계인을 경악시켰다.

완전히 벌집 쑤셔 놓은 형상이다.

서울에 수소폭탄이 떨어지면 250만 명이 죽고 병원은 수용불가 지경이 되고 군사시설은 올스톱, 서울은 한동안 재생 불능의 상태에 빠진단다.

 

이 마당에 전쟁에 대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어란 말인가.

내일 세계의 종말이 와도 오늘 심으려던 사과나무를 심을 뿐이다.

 

99세로 생을 마감한 영국의 철학자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한 버트란트 러셀(1872~1970)19273월에 이 글을 발표하였다.

지금도, 친지들 앞에서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돌아올 반응이 감당하기 어려울 듯싶은데, 20세기 초에 세상을 향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하며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으니 그 파장은 어떠했을까 불 보듯 뻔하며, 실제로 러셀은 음으로 양으로 불이익을 당했다.

 

그러나 러셀의 생각은 많은 비기독교인이 기독교를 택하지 않거나, 기독교인이었다가 그 종교에서 벗어난 이유를 대변한다.

공감이 가는 글을 옮겨본다.

 

-종교가 주는 해악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종교에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믿음의 성질에 좌우되는 것이고, 또하나는 믿어지고 있는 특정 신조들에 좌우되는 것이다.

 

-증거에 입각해 확신하는 습관, 증거가 확실하게 보장하는 정도까지만 확신하는 습관이 일반화된다면 현재 세계가 앓고 있는 질환의 대부분이 치유될 것이다.

 

-사람들을 움직여 하느님을 믿도록 만드는 것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그래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안전에 대한 갈망, 즉 나는 돌봐줄 큰형님이 계시는 것같은 느낌에 대한 갈망이다.

 

-나는 누구든 진정으로 깊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원한 형벌따위를 믿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영원한 형벌을 믿었으며 자신의 설교에 귀기울이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 뱀의 무리,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찌 지옥의 저주를 면하겠느냐?’하며 분노를 터트리는 대목이 수차례 발견된다. 이러한 태도는 훌륭한 존재의 품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려움은 모든 것의 기초다. 신비한 것에 대한 두려움, 패배에 대한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두려움은 잔인함의 어버이다.

따라서 잔인함과 종교가 나란히 손잡고 간다고 해서 놀랄 것은 전혀 없다.

인류는 세세손손 그 오랜 세월 비굴한 두려움 속에 살아왔으나 과학은 우리가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가상의 후원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늘에 있는 후원자를 만들어내지 말고 여기 땅에서 우리 자신의 힘에 의지해 이 세상을, 지난날 오랜 세월 교회가 만들어온 그런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 적합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상에서 오는 공포감에 비굴하게 굴복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세상을 정복하자.

 

-과거 멕시코와 페루에 건너간 스페인 사람들은 갓난 인디언 아이들에게 세례해주고 난 즉시 머리를 박살내 버렸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교회는 지식의 획득을 죄악시하진 않지만 위험스러운 것으로 보는 건 여전하다.

지식을 갖게 되면 지성의 교만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기독교 교리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 나이 젊지는 않지만 삶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가 허무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공포로 몸을 떠는 모습에 대해선 경멸한다.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 건 그것에 끝이 있기 때문이며 사고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제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기쁨과 타인의 행복을 비는 마음, 이 두 가지 요소의 불가분한 결합이 최고조의 사랑이다.

남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 수반되지 않은 기쁨은 잔인해지기 쉬우며, 기쁨이 없이 남의 행복을 비는 태도는 쉽게 식어버리거나 우월감으로 변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