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위한 시간 (유럽 수도원 기행)
-패트릭 리 퍼머(Patrick Leigh Fermor 1915~2011)/신해경 옮김
1957년 초판, 1982년 再版한 책을 2017년 11월에 읽는다.
책은 힘이 있다. 영원성이 있다.
저자 패트릭은 18세에 학교교육을 등지고 네델란드에서 이스탄불까지 유럽종단을 하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호화로움의 극치를 이루는 사교계를 거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첩보활동으로 일약 영국의 전쟁영웅이 되었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 남다른 강력한 무기는 ‘親和力’이었던 것 같다.
그는 심지어 자기가 납치한 독일군 장성과도 호송 도중 친해지는 사이가 되었다지 않은가!
그는 말년에 아내와 그리스 마니에 살면서 여행 작가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생 방드리유 드 퐁트넬 대수도원> <솔렘 대수도원> <라 그랑 트라프 대수도원> <카파도키아 바위 수도원>-
그가 찾은 아주 오래된 초기의 수도원들이다.
<생 방드리유 드 퐁트넬 대수도원 베네딕토회>
-‘생 방드리유’는 창설자 이름(649년), 퐁트넬‘은 수도원이 위치한 작은 강 이름-
수도자들이 학문 연구에 몰두할 수 있으며 인간구원을 위한 기도에 힘쓴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베네딕토회 수도원’이라고 패디의 知人이 말했으니 그가 어찌 안 가보고 싶겠는가?
수도원 피정에 들자 처음에 그는 술과 세속적인 욕구에 시달리며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신체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끝없는 잠속에 빠져들어 몇날며칠이 지나니 더 이상 일상을 좀먹는 사소한 일들에 빼앗겼던 에너지를 잃지 않게 되었다.
-시간을 새로 배분하게 된 덕분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이 하루에 19시간으로 늘어났다.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도원은 무덤의 정반대가 되었다.
<생 피에르 드 솔렘 대수도원>
11세기 창설,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 1830년 프로스페르 게랑제 신부에 의해 재건된다.
패디는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라 그랑 트라프 대수도원: 시토수도회, 트라피스트회>‘트라프’는 마을 이름.
창립자는 십자군 전사인 페르쉬백작 로트루 3세(배가 난파해서 사망한 아내와 잉글랜드 왕의 딸 마틸다 공주를 기리기 위해)
1630년 아르망-장 르 부티예 드 랑세의 소유가 되어 후에 수사로 들어온 랑세가 수도원장이 된다.
트라프 수도원은 가혹한 수련생활로 유명.(새벽 1시~2시 기상, 무릎 꿇거나 선 채로 7시간씩 명상, 남은 시간엔 들일 혹은 기도나 독서. 고기, 달걀, 생선은 금지, 1년에 6개월은 단식, 1년 내내 무거운 옷 한 벌. 판자바닥에 짚을 채운 요를 깔고 공동침실 사용. 난방시설 무, 일주일에 한번 채찍으로 자신의 어깨를 치며 참회하는 의식, 자아비판 후 고행 감내--)
그들은 고행하는 삶을 통해 영적 위안을 얻는다.
트라프 수도원의 사제가 갖추어야 할 덕목:
-사제는 곤궁한 자, 죽음에 가까울수록
-삶은 위대해진다. 사제는 희생하는 자
-좋은 빵이 되어야 한다. 사제는 먹히는 자
-트라프 대수도원은 수도원이라기보다는 병원이나 보호시설, 또는 소년원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토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까이서 보니 내 머릿속에 피상적으로 들어있던 ‘무덤처럼 슬픈 존재’라는 트라피스트회 수사들에 대한 선입견과 그들의 실제모습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카파도키아 바위 수도원>
터키 초기 수도원이 있는 위르귑 마을에서 응회암을 파서 만든 수도원들을 만난다.
-15m에서 120m에 이르는 수많은 암석기둥들-10~12세기에 만들어졌으리라 짐작되는 성당이 수십여 곳, 수도처는 스무 곳을 헤아린다. 聖畵에 제일 많이 보이는 인물은 영국의 수호성인 성 제오르지오(성 조지)였다. 그는 카파도키아 출신이었기 때문.
서머셋 모옴으로부터 ‘상류층여성들을 상대하는 제비’라는 혹평까지 들은 패트릭이 굳이 자신의 삶의 패턴과 상반되는 수도원을 찾아다닌 이유가 속세에의 쾌락에 한계를 느꼈음인가 아니면 패트릭의 내면에 침묵과 고행에 대한 갈망이 내재해 있었음인가?
수도원의 목적이 신을 欽崇하는 가운데 환희와 치유를 얻는데 목적이 있다면 그곳을 찾는 이들(避靜者) 또한 같은 목적이리라.
‘십자가가 불편한’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들여다본(?) 수도원의 풍경-그러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시각으로 그는 수도원이야기를 들려준다, 세밀화를 그리듯 섬세하게~
패디의 학문의 깊이는 또 얼마만한지?
그는 ‘무엇엔가 꽂히면’ 그 분야에 관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따라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학문의 깊이를 더해 갔으리라.
그가 수도원이야기를 하는 중에 자주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번역자는 156쪽밖에 안 되는 책에서 무려 32쪽에 달하는 註釋을 달았다.
이 수도원 기행시절은 ‘그토록 소중했던 삶의 한 시기(30대 중반)’였다.-저자의 말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매력적인 인물’이었다-옮긴이의 말
뜬금없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 패트릭은 여간첩 ‘마타 하리’와 짝을 이루는 인물같은 생각이 든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산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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