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도

팽양공의 여름나들이(2006.8)

맑은 바람 2018. 4. 27. 12:17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
이 두 권이 이번 3박4일 여행의 밑그림이다.

(2006.8.7 첫날)

봉고차에 6인이 탑승, 하하 깔깔 웃는 가운데 6시간 만에 땅 끝에 도착, 짙푸른 바다 앞에 섰다.
땅에서는 지열이 후끈거려도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해거름에 대흥사 경내에 있는 고즈넉한 기와집 유선여관에 당도, 찬물로 목욕하고 초가을같이 서늘한 밤을 보냈다.


떡갈비로 유명한 해남 맛집 <천일식당>

달마산 <미황사>


(이튿날), 통영을 향해 가면서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과 기념관에 들러 ‘오우가’와 ‘산중신곡’ ‘어부사시사’를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들고 한 수씩 읊었다. 기정이네 팽씨, 혜자네 공씨, 선식이네 양씨 모두 시 한두 편씩은 너끈히 외더라.

유선여관의 마스코트 진돌이

                                                                    <유선여관의 툇마루>

<유선여관> 경내


유선여관의 아침식사--  놋그릇이 이채롭다

윤선도 고택 <녹우당>의 연꽃


통영 부두에는 눈도장만 찍고 한려수도의 끝 섬 <욕지도>로 들어갔다. 

타국의 산과 바다를 만만찮게 돌아다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역시 우리 땅 우리 바다가 최고야!
가파른 언덕배기에 자리한 <몽돌개 섬마을> 민박에 짐을 푸니 벌써 일몰의 시각-
부랴부랴 와인과 안주를 챙겨들고 이번 여행의 길잡이 팽씨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방파제에 앉으니 해는 벌써 하늘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바다 속으로 잠수하고 있었다



일몰을 바라보며



3일째-
모기향을 방마다 피웠건만 웬 알 수 없는 벌거지 등쌀에 긁적긁적 사방이 벌겋게 물린 데 투성이-그러나 아침부터 아낙들은 밥 짓고 남정네는 생선 사러 어시장에 가고 식사 후 곧바로 해안으로 내려갔다. 워낙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서인지 피서객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아 민박집 앞바다를 전세 내서 한나절  낚시 드리고 고무보트 타고 파도 타고 --짠물에 온몸구석구석을 절이고 소독했다.
저녁거리는 싸가지고 욕지도에서 가장 전망 좋은 <새천년공원>에 가 펼쳐놓고 덩실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밥 한 술 술 한 잔 시 한 수로 서울에서 아득히 먼 섬 욕지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식후 달밤 체조를 하고 있노라니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옆자리로 모여들었다.



          <새천년공원>의 일몰




4일째-
아쉬움을 안고 욕지도를 떠나기 전 ‘돌아가는 배’의 저자,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김성우의 기념관을 찾았다.
항구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세운 돌아가는 배 기념관- 햇살은 따갑고 철문은 굳게 잠겨 있어, 오기 전까지 설레던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집이 아니라 도시로 나아가 꿈을 이룬  저자가 자기만족에 지은 집일뿐이구나!

                 김성우기념관<돌아가는 배>


                                여인의 恨의 결정체 <열녀비>


                                                      성씨 '金'으로만 남은 열녀비

                                                                                  




통영으로 들어와 역시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유치환문학관>과 生家에 들러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고인을 회상했다.
평생 한 여인을 가슴에 품고 시심에 젖어 살다 간 소년같은 유치환-통영이 낳은 못 말리는 로맨티스트였나보다.




이 사람 저 사람 하고 여행을 많이 해봤지만 이번 여행은 참으로 편안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서로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남 달랐다. 

그러면서도 별 스스럼없고 꼭 세 자매와 그의 남편들이 함께한 여행 같았다.

이번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고 우리를 쾌적하게 만들어준 팽대령님께 우선 감사하고, 

세세한 데까지 신경 써서 식단표를 잘 짜, 우리의 뱃속을 즐겁게 채워준 기정이에게 고맙고, 

몸이 좀 힘들어도 내색 않고 분위기를 잘 이끌어준 우리의 큰오빠 같은 공박사님께 또 감사하고, 

낭랑하고 맑은 웃음소리로 우리들 마음을 밝게 해 준 혜자에게도 고맙고, 

이 일 저 일에 기동력 있게 움직여 주고 찍사 노릇 잘 해준 우리 영감한테도 고맙고--

이런 좋은 벗님들과 십 년 이십 년 서로 의지하며 정을 나누고 틈틈히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행복한지---

                                                               200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