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누려봐, 오늘이 그날이야~~

맑은 바람 2019. 3. 3. 10:50


1. 내 방이 생겼잖아~

결혼 직전 방이 네 개인 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도 내겐 방이 없었다.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이 방 하나씩 쓰고, 나는 곧 시집 갈 거니까, 안방을 부모님과 함께 쓰기로 했다.

스물 일곱이 되도록 내 방은 커녕 여섯 식구가 방 하나, 고작해야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산다는 건 여러 모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었다.

그래서 내가 피신처로 삼은 것이 독서실, 도서관이었다.

학교도서실, 동네독서실, 명동 한복판에 있던 국립중앙도서관, 남산도서관, 4.19도서관--

도서관을 잘 활용했더라면 더욱 지적 성취를 해서 평생 원이 되었던 '최고의 대학'에도 갈 수 있었으련만--

 

방 한 칸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었으나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24평에서 32평 다시 48평 넓은 집에서 살다가 귀향하듯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종일 햇빛이 찰랑대는 뜰이 있어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런 집이건만 성미 급한 작은 아들은 결혼도 하기 코딱지만한 방을 얻어 집을 나가더니 맘에 드는 여자 골라 결혼하고 부지런히 돈을 모아 집도 샀다.

큰아들은 사십 넘도록 '고시'공부한다며 '방콕'하고 살더니 어느날 마침내 (?)을 접고 작은 사업을 벌이면서 색시감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집을 떠났다.


이제는 영감은 건넛방, 나비(고양이)는 작은방, 나는 안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살게 되었다.

마침내 원하던 '나만의 방' 생긴 것이다.

밤늦도록 불을 켜놓아도자다가 화장실을 들락거려도, 새벽에 잠이 깨어 뒤채고 부스럭거려도 옆에서 뭐라하는 사람 없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2.널널한 시간이 있잖아~

16년간 학교 다닐 땐 공부에, 엄마 잔소리에 쫓겨 늘 시간이 모자랐다.

시험은 으레 당일치기로 하고 살았으니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한 나날이었던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엘 다닐 때도 자주 꾸는 꿈이 있었다.

시험 보는데 시간이 모자라 쩔쩔맨다든가, 시험 성적이 형편없어 성적표 받고는 두 다리 뻗고 통곡을 한다던가~~

그런 꿈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까지는 십수 년이 걸렸다.


직장 생활 38년은 또 어떻구~?

맏며느리, 아내, 엄마, 직장인의 14역이 녹록지 않았다는 건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부식비를 아껴야 돈이 모인다며 퇴근 후 먼 경동시장까지 가서 장을 봐 오곤 했던 일

-그땐 젊어서 힘들어도 참을 만했던가?

 

이젠 컴퓨터 앞에 앉아 온갖 것을 <쿠팡>으로, <위메프>, 또는 <옥션>으로 주문한다.

싸고 신뢰가 가고 무료 배송하는 것을 검색해서 주문하면 이틀 안팎으로 택배기사가 현관 안까지 들여놓고 간다.

한 달에 두서너 권씩 꼭 사는 책도 <알라딘> <교보> <반디 앤 루니스>로 주문한다.

하루 만에 득달같이 배달해주기도 한다.

40여 년 만에 몸으로 살던 세상이 손으로 사는 세상으로 천지가 개벽한 거다.

 

결혼한 큰아들과 3년 가까이 살 때는 어른 시중들랴, 아이 치닥거리하랴 늘 바쁘고 힘들어서 어깨 허리 다리 안 아픈 곳이 없어 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다.

이제는 분가한 아들이 손주 잘 데리고 오지 않는다고 할비가 성화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좋고 안 오면 서운하니이 변덕을 누가 맞출까?

 

여보,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날이 여기 왔자녀~~

손주 목 빠지게 기두리지 말고, 뭐 좋은 영화 있나 찾아보고 같이 보러 나가자구여~~“


<사랑초>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던 꽃

엄마를 보듯 이 꽃을 봅니다.

꽃말: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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