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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르트르의 < 말 Les Mots>

맑은 바람 2019. 12. 18. 20:20

읽은기간 2019.12.14~12.18

 

12월 24일부터 청운동 <길담서원>에서 열리는 책읽기 모임에 참가신청을 했다.

어떤 이들과 어떤 분위기에서 읽기가 진행될까 자못 궁금하고 기대된다.

30대에서 50대가 주류인 듯한데 이번에 60대와 70대까지 새 멤버가 합류하게 됐으니 분위기도 달라질 게 분명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책읽기 첫모임이라니 그도 흥미롭다.

 그전에 책을 끝까지 읽어보는 것이 급선무다.

 

**싸르트르: 민음사에서 발행한 <말>의 표지그림에 나오는 싸르트르가 인상적이다.

이마엔 깊게 패인 주름, 파이프를 길게 물고, 흩어진 시선으로 뭔가를 응시하고 있다.

 

 

 장폴 싸르트르(1905~1980):

철학전공/ 1929년 고등학교 교사자격시험 수석합격 /시몬느보봐르와 만남/

1939년 2차대전 발발 후 징병--포로--1941년 석방

'사회주의와 자유'라는 저항단체 조직/ 1943년 카뮈와 만남 /실존주의작가로 명성을 떨침

1964년 <말> 출간. 이 해에 노벨문학상 수상 거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함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

 

***이 글은 Z부인에게 보내는 글이다**Z부인:사르트르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았던 레나 조니나

자서전이라면서 서두에 웬 상관없는 인물들이 등장하나 했더니 외가와 친가의 족보였다.

 

어머니는 슈바이체르 집안(알베르트 슈바이처와 어머니는 사촌간)의 2남2녀의 차녀이자 빼어난 미인인 안 마리이고,

아버지는 싸르트르 집안의 장남으로 해군장교였던 장 바티스트인데 싸르트르 출생 후 이듬해 장염으로 죽는다.

어머니와 함께 외가살이를 하면서 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보며 자란다.

 

(21쪽) -아버지의 죽음은 내 생애의 큰 사건이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사슬로 묶고 내게는 자유를 주었다.

 

(22쪽) 세상에 훌륭한 아버지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일반법칙이다.부자간의 관계란 원래 고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내 위에 벌렁 누워서 나를 짓누르고 말았으리라. 다행히도 그는 일찍 죽었다.

나는 아버지가 없어서 무척 기뻤다. 남들이 나의 처지가 불쌍하다면서 나를 존중하고 떠받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생각의 틀을 깨는 이 '말들'에 가슴이 서늘해 온다)

 

(29쪽) 저녁 때면 우리는 그를 마중하러 한길로 나갔다. 전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는 할아버지(외할아버지, 샤를 슈바이체르, 독일어교사)를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키가 유난히 크고 무용선생과 같은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할아버지의 행복을 꽃과 열매처럼 담뿍 가슴에 안고 달려간다.

 

(30쪽) 아버지가 너무도 일찍 물러간 덕분에 내게는 너무 불안전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밖에는 없었다. 초자아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격적인 성격도 없었다.

 

(31쪽) 착한 아기노릇을 하는 장난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없었다. 한번도 울지 않았고 웃는 일도 거의 없었고 수선을 떨지도 않았다.

(32쪽)나는 악이 발붙이기에는 나쁜 땅이다. 착한 연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얼마 전부터 나의 오른쪽 눈에 삼이 섰다. 그 때문에 결국은 애꾸눈에 사팔뜨기가 되고 말았지만 그 무렵에는 아직 그런 징조가 전혀 없었다.

 

(33쪽) 할아버지는 내 천성이 착하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내게서 예언자적인 소질을 찾아내려고 했다. 진리는

아이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이들이란 아직도 자연과 가까운 존재이며 바람과 바다의 사촌이다.

 

--그의 명상의 대상은 나였다.

 

그는 정원의 간이의자에 앉아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맥주잔을 놓고서는 내가 뛰어노는 것을 바라보있다.--나를 두고 이 세상의 기막힌 작품이라고 찬탄한 것은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다 좋고 우리의 초라한 죽음까지도 좋다고 애써 믿고자 했기 때문이다.-나는 알맞게 죽어준 아버지 때문에 자유를 얻었고 줄곧 죽기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때문에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36쪽) 나는 임금처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잘 먹으면 칭찬을 받는다. 할머니조차도 이렇게 외쳤다.

"배가 고프다니, 착하기도 하지!"

 

(37쪽) 성직자의 손자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성직자였다.(성직자:여기서는 학자,지식인,교직자를 일컬음)

 

나는 추기경과 같은 경건한 마음을, 사제와 같은 쾌활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38쪽) 할아버지도 나도 '진보'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험하고 기나긴 진보의 길을, 내게까지 와 닿은 그 긴 길을 믿고 있었다.

 

--그곳은 천국이었다(유년기의 외갓집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기쁨에 겨웠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서, 가장 단란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기막힌 행운을 찬양했다.--나는 누구보다도 할머니에 대해서 가장 큰 불안을 느꼈다.내게 충분한 칭찬을 해주지 않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루이즈할머니는 내 속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어릿광대, 꼭두각시, 사기꾼으로 지목하고 그따위 가면극을 걷어치우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제외하고는 할머니가 좋았던 것은 물론이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역시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42쪽) 1911년 우리는 파리로 가서 르고프가 1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퇴직한 할아버지는 잠시 체류하는 독일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높은 수강료를 받아 생활을 이어갔다.

 

(44쪽)독일사람들은 열등한 민족이지만 우리와 이웃하고 사니 재수 좋은 놈들이다.우리의 교화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나르시스였을까? 아니, 나르시스조차 아니었다.남의 환심을 사는 데만 너무도 골몰한 나머지 자기자신을 잃어버렸으니 말이다.(한 아이를 둘러싼 이 일련의 자잘한 사건들과 어른들의 반응을 보며, 나의 손녀와 우리가족들의 반응이 어찌 이리 닮았는지 감탄할 지경이다. 서너 살 어린애를 둔 가정의 어른들은 이 글의 하나하나에 전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45쪽) 나는 일종의 문화재였던 것이다. 문화가 내 골수까지 스며들어있고 나는 집안식구에게 그것을 복사해준 것이다.

마치 황혼녘의 연못이 대낮의 열기를 되뿜어 주듯이.

 

 

 

나는 책에 둘러싸여서 인생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죽을 때도 필경 그렇게 죽게 되리라.(천복이지!)

 

나는 아직 글을 읽을 줄 몰랐는데도 이 선돌들을 존경했다.--나는 이 책들이 우리집의 번영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할아버지는 <독일어 독본>을 내고 계셨다.

 

(49쪽) 그런데 출판사들은 왜 흡혈귀처럼 불쌍한 할아버지의 피를 빨아먹고 해치려는 것일까? 헌신적으로 노력해도 마땅한 보수를 못 받는 이 성자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더욱 커졌다.

 

나는 이때부터 교직을 성직으로 생각하고 문학을 수난으로 여기는 소지를 기르게 되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얻은 콩트집-모리스 부쇼르-을 어머니한테 읽어달라고 한 후 글자도 모르면서 혼자서 반은 외고 반은 모르는 글자를 아무렇게나 읽어나갔다. 이 광경을 본 가족들은 단박에 아이에게 글을 가르쳤고 아이는 곧 글을 깨칠 수 있게 되었다.(예주야, 네 하는 양도 이 아이와 흡사하니 불원간 너도 글을 깨치겠구나)

 

(53쪽)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식물표본처럼 그 조그만 상자(책) 속에 들어 있는 말린 목소리, 할아버지가 들여다보면 다시 살아나는 목소리, 할아버지 귀에는 들리지만 내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내것이 되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의 서재를 마음대로 배회할 수 있게 된 나는 인류의 지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의 오늘날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내 속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갖는 짙은 추억도 즐거운 탈선도 없다.

 

(54쪽) 오직 책들만이 나의 새들이며 둥지며 가축이며 외양간이며 시골이었다. 할아버지의 서재는 거울 속에 사로잡힌 세계였다.

--나는 라페루즈가 되고 마젤란이 되고 또 바스코다가마가 되었다. 나는 야릇한 원주민들을 발견했다.

 

(56쪽) 나는 그 큰 책(라루스 대백과사전) 속에서 진짜 새집을 털고 진짜 꽃 위에 앉은 진짜 나비를 잡았다. 사람과 짐승이 모두 '진짜로' 거기 있었다.

 

정신 상태로 보아 플라톤주의자가 된 나는 지식에서 출발해서 사물로 향했다. 나로서는 사물보다 관념이 한결 현실적이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관념이 먼저 주어졌고 더구나 사물로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를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나의 관념론은 바로 여기에 유래한 것이며 나는 그것을 청산하는데 30년이 걸렸다.

 

(66쪽) 나는 이미 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로서는 서재가 곧 신전이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제게 자연스러운 자리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 자리의 높이를 결정해주는 것은 유년시절이다. 나의 자리는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파리의 건물 7층에 있다.

 

(67쪽) 나는 다시 나의 상징적인 7층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또 다시 문학이라는 희박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세계는 내 발밑에 층층이 겹쳐있었고 모든 사물이 제각기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사물에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은 곧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환상이 없었던들 나는 결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75쪽) 나는 샤를 슈바이체르처럼 문화의 보초가 될 운명이었다.

 

게다가 나는 살아있고 원기 왕성해서 죽은 자들을 토막낼 줄은 아직 몰랐지만 그대신 그들을 내멋대로 다루었다.

 

--나는 쿠르틀린에 열중하고 있던 참이라 식모의 뒤를 쫓아 부엌까지 가서 <성냥을 찾는 테오도르>를 커다란 소리로 읽어 주었다.--어느날 할아버지는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쿠르틀린은 필경 친절한 녀석일 게다.그 작자가 그렇게 좋다면 그에게 편지라도 써서 보내보렴."

 

나는 정말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의 미래의 친구로부터"라는 말로 끝을 맺었는데 당시에는 이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여겨졌다.

 

볼테르와 코르네유까지도 친구로 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쿠르틀린은 거부했고 또 그러기를 잘했다.

 

손자에게 답장을 씀으로써 필경은 할아버지에게 걸려들었을 테니까.

 

그때에는 우리는 그의 침묵을 호되게 비판했다.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할일이 많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어린애의 편지에는 답장을 해야 하는 법이야"

 

(76쪽) 칼할아버지 풍의 휴머니즘, 그 성직자의 휴머니즘을 내가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누구나 인간의 대표자라는 것을 깨달은 그날부터였다.

 

병에서 회복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것인가! 이제 언어는 마력을 잃었다.그리고 내 옛 동류인 문필의 영웅들도 그들의 특권을 잃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왔다. 나는 그들의 상을 두 번 치른 셈이다.

 

(77쪽) 어른들 틈에 홀로 끼어있던 나는 어른의 축소판이었고 어른들의 책을 읽었다.

 

--아무튼 나의 탐험과 나의 사냥은 '집안의 연극'의 일부였고 모두들 그 연극을 좋아했다.

 

--그래서 날마다 신동이 된 나는 할아버지가 이미 읽지 않게 된 마법의 책들을 다시 깨어나게 했다.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내 나이에 넘치는 생활을 했다. 과시하기 위하여 극성을 떨고 제 몸을 지치게 하고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서재 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무기력한 노인의 배 속에 들어앉는 꼴이었다.

 

큼직한 책상, 깔판, 장밋빛 압지에 밴 붉고 검은 잉크자국, 퀴퀴한 담배냄새, 그리고 벌겋게 타는 난로--그 모든 것은 사물로 변신한 할아버지 자신이었다.(싸르트르의 글은 웬지 철학냄새가 나고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토록 말맛이 나고 재미있을 줄이야~)

 

-서재에서 종일 책친구와 더불어 놀다보면 다 저녁에 가족이 모이면 질문공세가 터진다

 

(78쪽) "뭘 읽었니? 뭘 알았니?"

 

나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해산 준비를 했고 이제 어린애다운 낱말 하나를 분만할 판이었다.

 

어른들을 피해서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이 어른들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어른의 책에만 빠져있는 줄로 안 어머니는 계책을 내놓았다.

 

(81쪽) 어머니는 다시 나를 어린이답게 만들어줄 만한 책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삽화가 곁들인 월간동화집이라든가 모험이야기 등을 침실이나 식탁 밑에서 열중하며 읽었다

 

(84쪽) 그러나 마침내 나는 할아버지에게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두 여인은 모든 책임을 나에게 뒤집어씌웠다.

만약 사를 슈바이체르가 아버지였다면 그 책들을 몽땅 불살라버렸으리라. 그러나 그는 할아버지였기에 상심하면서도 관용을 택했다.

 

 

 

**할아버지와 리세 몽테뉴 교장의 판단 사이의 간극:神童 손자인 줄 알았던 싸르트르를, 교장은 제 이름도 못 쓰는 아이라고 하급반에 넣으려 한다.

 

자존심 상한 할아버지는 자퇴시켜 가정교사를 두었는데 그도 얼마 안 있어 사라졌다.

 

싸르트르는 다시 공립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담임으로부터 '서민의 자식들'과 섞이지 않게 특혜를 받는다.

 

(88쪽) 내게는 이 선생(공립초 담임)을 존경할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그가 나를 위해 주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의 입에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어른들이란 추하고 주름이 잡히고 어딘가 불쾌한 데가 있게 마련이다. 어른들이 나를 품안에 껴안을 때는 가벼운 불쾌감이 일었는데 그것을 견디는 것이 나로서는 언짢은 일은 아니었다.그런 일이 갖추기 어려운 덕을 갖추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선생에 대해 "바로 영감은 콩(머저리, 밥통)이다"라는 낙서로 장난을 친 것이다.

 

**영감:늙은 가난뱅이의 의미가 있음

 

(92쪽) 할아버지와 엄마는 학교와 가정교사를 계속 갈아대었으나 결국 10살까지 한 늙은이와 두 여인 사이에서 홀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92쪽) 말도 없고 형체도 없고 밀도도 없이 그 천진한 투명성 속에 녹아들어있는 투명한 확신 하나가 만사를 잡쳐놓았다.그것은 내가 사기꾼이라는 확신이었다.

 

(94쪽) 가장 나쁜 일은 내가 어른들 역시 연극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내게 건네는 말들은 사탕 같았지만 그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말투가 전혀 달랐다.

 

--나는 좌익의 한 노인이 그의 행실을 통하여 내게 가르쳐준 우익의 모든 격언을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져 있었다.

 

그 격언이란 진실과 허구는 똑같다는 것, 어떤 정념을 느끼려면 우선 그것을 연출해 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란 의례적 존재라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내 역할은 어른들의 상대역에 불과했다.

 

 

 

(96쪽) 나는 그들에게 집안의 단결과 오랜 상극을 비추어 보이는 역할을 했고 그들은 현재의 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내 신성한 유년시절을 이용한 것이다.

 

나는 불안 속에서 살았다.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가장 큰 것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저마다 이 세상에서 뚜렷한 제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그들의 의식적 태도를 통해서 내게 납득시키려고 했는데 정작 나 자신의 존재이유는 오리무중이었다. 나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임을 별안간 깨닫고는 이 질서 정연한 세계에 끼어든 나의 괴이한 모습이 부끄러워지는것이었다.

 

 

 

(97쪽) 우리는 일찌기 우리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고프가에서도 그랬고 그 후 어머니가 재혼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여전히 추상적인 존재였다.이 세상의 재물은 그 소유자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반대로 내게는 그것이 내가 어떤 사람이 아닌가를 가리켜 보였다.

 

나의 존재는 단단하지도 한결같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나는 혼이 없는 존재였다.

 

(101쪽) 나로 말하자면 지상의 어느 한정된 곳에서 시시각각으로 어떤 사람들 틈에 끼어 있고 거기서 자기의 존재가 군더더기임을 느끼는 것이 내 운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마치 물처럼, 빵처럼, 공기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모든 곳에서 아쉬운 존재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103쪽) 믿음도 율법도 없고 이유도 목적도 없는 어리둥절한 벌레와 같은 나는 집안의 연극 속으로 도피해서 빙글빙글 돌고 달리고 속임수에서 속임수로 옮아다녔다.

 

(108쪽) 어머니는 루터파의 남자와 결혼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모두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체면상의 믿음이었다.

 

우리 주위에서, 우리 집안에서 신앙이란 달콤한 프랑스식 자유를 장식하기 위한 명칭에 불과했다.

 

어른들은 나에게도 영세를 받게 했는데 그것은 내 독립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정식으로 가톨릭교도가 됨으로써 나는 자유롭고 정상적인 인간이 된 것이다.

 

샤를 슈바이체르는 기회만 있으면 가톨릭을 조롱했다.

 

할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할때면 할머니는 화를 내는 척하고 무신론자니 이단자니 하면서 남편의 손가락을 톡톡 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에 할머니의 너그러운 미소를 보고 나는 완전히 알게 되었다.할머니는 아무것도 믿는 게 없었던 것이다. 다만 회의주의 때문에 무신론자까지는 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내가 아는 어떤 할머니랑 똑같네)

 

나는 가톨릭인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였고 복종하는 정신과 비판하는 정신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나는 교리상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조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무신앙으로 끌려갔다.

 

(121쪽) (갈수록 너무 쓸게 많아,이러다 책 한 권 다 베끼겠어)

 

내 나이 일곱 살에 기댈 곳이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아직 존재하지도 그것은 바야흐로 시작된 세기가 제 시름을 비추고 있는 황량한 거울의 궁전이었다. 나는 나자신을 마련하겠다는 커다란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태어났다.

 

(123쪽) 나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다. 아무의 아들도 아니었으니 나는 나 자신의 원인이었고 오만투성이였고 비참투성이였다.  나는 당초에 나를 선으로 이끌어가는 힘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124쪽) 여섯 살부터 아홉 살까지의 내 삶을 돌이켜볼 때 나는 한결같이 정신적 유희만을 일삼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26쪽) 나는 어둠 속에서 나이를 먹어갔다.아비도 어미도 거처도 없고 이름조차 없다시피한 고독한 성인이 되었다.

 

(129쪽) 나는 철저한 유물론자이면서도 서사적인 관념론의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이 겪지 않은 모욕과 내가 당하지 않은 수치와 이미 오래 전에 수복된 두 지방의 상실을 죽을 때까지 벌충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의 영화관:상류층 사람들은 출입을 안 하고 서민층의 오락 공간이었나 보다

 

그곳엔 군인들, 동네의 하녀들,여직공들,뼈가 앙상한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133쪽) 동네의 영화관들이 아무나 마구 입장시켜서 불편하긴 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이 새로운 예술이 모든 사람의 것이자 동시에 내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정신 연령이 같았다. 나는 일곱 살이지만 읽을 줄을 알았고 영화는 열두 살이지만 아직 말할 줄을 몰랐다.(무성영화시대?)

 

(134쪽) 나는 영화라는 수상쩍은 가상을 변태적으로 사랑하여 그 속에서 있지도 않은 것을 찾아보려고 했다. 영화의 주인공들의 말은 들을 수 없지만 관객과 주인공들은 음악으로 의사소통을 했고 그것은 바로 그들의 내면의 소리였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읽었지만 그들의 희망과 실망의 소리는 귀로 들려왔고 그들이 입밖에 내지 않는 의연한 괴로움을 내 귀로 포착할 수 있었다.

 

(136쪽) 영화를 보며 나는 한없이 흐뭇했다. 내가 살고 싶은 세계를 발견했고 절대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나는 말을 버리고 음악의 세계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매일 저녁 다섯 시경에 나는 그런 기회를 가졌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치고 나는 할아버지 서재에서 내 상상 속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무언극을 펼친다.

(140쪽) 금이야 옥이야 받고 억지로 배가 터지게 먹어 아무 욕망도 없었던 나는 가상의 궁핍 속으로 뛰어들었다. 8년간의 축복된 생활은 결국 나에게 수난에 대한 애착만을 길러주었던 것이다.

 

(145쪽) 뤽상브르공원의 테라스에서 애들이 놀고 있었다. 내가 그들 곁으로 다가가도 그들은 나를 스쳐가기만 할 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거지와 같은 눈초리로 그들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그들은 얼마나 억세고 날쌨던가! 그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나는 진짜 내 재판관들, 내 동년배들, 내 동류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의 무관심한 태도는 나에 대한 단죄를 의미했다. 나는 그들의 눈을 통해서 드러난 내 정체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나는 신동도 해파리도 아니고 아무의 관심도 끌지 않는 일개 꼬마에 불과했던 것이다.

--유난히 작은 키는 또래들과 어울릴 수 없는 또하나의 걸림돌이었다.

 

(147쪽) 이때 할아버지가 나를 구해 주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내 인생을 바꿔놓은 새로운 속임수로 나를 끌어넣었던 것이다.

 

 

 

2부 쓰기

 

--언어구사에 뛰어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싸르트르는 시를 쓴다. 그리고 자연스레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153쪽) 나는 운문에서 산문으로 옮아갔다. <귀뚜라미>에서 읽은 신나는 모험담을 다시 꾸며 썼는데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마침내 때가 온 것이다. 공상이란 덧없는 것임을 마침내 알게 된 때가 온 것이다. 공상에 공상을 거듭하면서도 내가 꼭 잡아보려고 한 것은 현실이었다.

 

(154쪽)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기쁨이 넘쳐 흘러서 금방 펜을 놓았다. 속임수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말이 사물의 진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내가 써놓은 꼬불꼬불한 작은 글자가 도깨비불과 같은 빛을 잃고 차츰차츰 탁하고 단단한 물질처럼 굳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나를 흥분시켰다.그것은 허상의 실상화였다.--나는 펜촉으로 긁적댐으로써 내 꿈을 이 세상에 단단히 붙잡아 매놓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책과 보랏빛 잉크 한 병을 얻어 가지고 공책 겉장에 '소설 노트'라고 적어넣었다. 최초로 완결한 소설에 나는 '나비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붙여놓았다.---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듯이 영감을 받은 작가라는 것이 , 제 속에 깊이 깃들여 있으면서도 자기와는 다른 그 어떤 존재를 뜻한다면, 나는 일곱 살과 여덟 살 사이에 영감을 알았던 것이다.

 

(157쪽) 그러나 결국 이런 새로운 수작도 또 하나의 원숭이 짓이 되고 말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격려하기에 바빴고 손님들을 식당에 끌여들여 어린 창작가가 아동용 책상에서 일하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나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나의 찬미자들이 들어온 것도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꼬마작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놀이였으므로.

 

(165쪽) 나는 자신을 알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었고 기껏해야 내용없는 활력에 끌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는 어릿광대 짓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요리조리 꾸며 보면서 마침내 자기의 참모습을 알게 된 셈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어른들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나는 오직 글쓰기를 위해서만 존재했으며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할 따름이었다.나는 기쁨을 알았다. 공중의 노리개와 같던 어린애가 이제 자기 자신과 사적인 데이트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9쪽) 문학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다. 유명한 작가들이 결국은 굶어 죽었다는 것을 너는 아느냐? 또 그중에는 밥을 얻어 먹으려고 제 지조를 팔아버린 사람들도 있단다. 구태여 네 뜻대로 살고 싶다면 다른 직업을 하나 갖는 것이 좋겠다. 교수생활을 하면 틈이 생긴다. 교수노릇과 문인의 일은 서로 겹치는 것이다.(지구 저끝과 이곳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은 어찌 이리 닮았을까!)

 

(175쪽) 결국 나를 문학에서 멀리하려던 그의 노력이 도리어 나를 문학의 길로 밀어넣었던 것이다.

 

(176쪽) 사실 내게는 글재주가 없다. 여러 사람이 그런 사실을 말해주었고 나를 다만 공부벌레 취급했다. 사실 그렇다. 내 책에서는 땀내가 나고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나는 나자신을 적으로 삼아서, 그러니까 만인을 적으로 삼아서 책을 쓴 일이 많다. 작가로서의 나의 계율은 상처처럼 몸속에 꿰매져 있다. 하루라도 글을 안 쓰면 그 상처자국이 근질근질하다.

입으로 이야기할 때 나오는 제나라말도 글로 쓸 때는 외국어가 되는 것이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들은 모두가 그렇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모두가 낙인 찍힌 도형수들이다.

 

 

 

(180쪽) 위대한 작가는 편력기사와 닮은 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남들로부터 뜨거운 감사의 표현을 자아내는 사람들이다.

 

(181쪽) 몸집이 형편없고 겉멋을 떨고 겉으로는 남자다운 데가 없어 보이지만 나의 동업자인 작가들도 일종의 군인이다.그들은 신비로운 싸움에서 저격병 노릇을 하며 생명을 내건다. 사람들은 그들의 재능에 대해서보다도 군인 못지않은 그 용기에 대해서 더욱 우렁찬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면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태어난 나는? 그렇다. 사람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사람들은 내 작품을 기다렸다. 하지만 첫 책은 나의 열성에도 불구하고 1935년 전에는 나오지 않으리라.1930년경이 되면 그들은 안타까워하기 시작하고 서로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그 사람은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군. 25년 동안이나 먹여살려 왔는데"

 

(1938년 <구토>가 나와 그는 일약 유명작가로 떠올랐다.)

 

(191쪽) 작가를 실직자로 만들어버린 갈등없는 이 세상에서 다시 한 번 갑갑증을 느껴야 했다.

 

(194쪽)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詩神의 목걸이에 진주 한 알을 더 엮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모범적인 일생의 추억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며 민중을 그들 자신 속에 깃든 악과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장엄한 미사곡으로 인간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내리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웃을 위해서 쓰거나 신을 위해서 쓴다.나는 내 이웃을 살린다는 목적으로 신을 위해서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바란 것은 내 글을 읽어줄 독자가 아니라 나를 은인으로 받들어줄 사람이었다.

 

(196쪽) 아홉 살이었을 때:  글을 쓴다는 나의 이 구슬픈 작업은 그 무엇과도 관련이 없어서 결국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나는 오직 쓰기 위해서 썼을 따름이다.그러나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만일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나는 남에게 영합하려고 애쓰고 다시 멋을 부리려고 했으리라.그러나 다행히도 남모르는 세상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진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언어를 통하여 세상을 발견한 까닭에 오랫동안 언어를 세상 그 자체로 알아왔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한한 '언어의 일람표 '중 어느 한 곳에 공인된 명칭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일람표에 새로운 존재를 새겨놓는 것이었다.

 

(207쪽) 나는 죽음에 현혹되었다.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8 209 모두 필사할 만한 내용)

 

(210쪽)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앞으로 몇 년 밖에 활동할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1964년, 59세)

 

별로 즐거운 기분이 아니지만 나는 다가오는 노년을, 미래의 쇠약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쇠약과 죽음을 또렷하게 그려본다. 그러나 나의 죽음 그 자체만은 결코 그려보는 일이 없다.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들보다도 더 오래 살게 될까봐 큰 걱정이라는 말을 하는 일이 있다.

 

---친구들은 내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내가 매순간 죽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었다.

 

(214쪽) 아홉 살과 열 살 사이에 나는 완전히 사후의 인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220쪽) 나의 작품과 나의 죽음이라는 두 개의 열쇠, 나의 비밀을 풀어줄 두 열쇠를 갖게 될 2013년의 사람들은 이 갑작스러운 불안과 의혹을, 이러한 목과 눈의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222쪽) 지금까지 쓴 것을 읽어 본 한 친구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자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심하게 돌았었군."

 

돌았다고? 나로서는 그런 것 같지가 않다.나의 망상은 의식적으로 꾸며낸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의 문제다.  아홉 살 때 나는 성실성에 미흡했고 그 후에는 그것을 넘어섰다.

(232쪽) 나는 전쟁과 나의 사명을 동시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나보고 "너는 커서 뭘하겠니?"하고 물으면 나는 얌전하고 겸손하게 글을 쓰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미 영광의 꿈과 정신적 수련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 덕분에 아마도 1914년 전후(열살안팎)는 내 어린 시절 중 가장 행복한 때였을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정신연령이 같은 또래였고, 우리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자기의 시종 기사니 귀여운 사람이니 하고 불렀고, 나는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235쪽) 1915년 10월, 앙리 4세고등학교 초등부에 입학, 첫번째 작문시험에 꼴찌, 내가 꿈꾸어 왔던 나의 우월성은 간곳없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항상 누군가 나보다 더 잘 대답하고 더 빨리 대답하는 놈이 있었다.

 

 

(237쪽) 학교공부 때문에 글을 쓸 겨를이 없었다. 새로운 교우관계가 생겨서 글 쓰고싶은 욕망조차 사라졌다. 나도 드디어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238쪽)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나는 가족과의 광대놀이를 깨끗이 씻어버렸다.--나는 오직 한 가지 열성 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그들과 완전히 합류하는 것이었다.

 

(243쪽) 우등생 천재소년 베나르의 죽음:--바느질 품을 팔았던 그 과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나는 이러한 생각에 정말 숨막힐 듯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악의 존재며 신의 부재며 살 수 없는 세계를 엿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필경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야, 거부되고 망각되고 상실된 내 어린 시절 중에서 어째서 베나르의 모습만큼은 이렇게 괴롭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겠는가?

 

(256쪽) 나이가 지긋한 작가들은 누가 그들의 처녀작을 극구 칭찬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칭찬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나라고 확신한다. 나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이지만 나는 은근히 그것을 곧 싫어할 채비를 한다.

 

(260쪽) 나로 말하면, 나는 이미 늙은 꼬마로 뭉쳐버린 시작이며 중간이며 결말이었다.나는 궤도의 출발점에 있는 한 미립자이며 또한 방파제에 부딪쳐 역류하는 물결이었다.

 

나는 뭉치고 압축된 존재, 한손으로는 무덤을 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요람을 만지고 있는 그런 존재였다. 나는 어둠이 삼켜버린 번갯불인 양 내 존재도 짤막하고 찬란하리라고 생각했다.

 

(266쪽) 프로테스탄트이자 가톨릭이라는 내 종파상의 이중성은 나로 하여금 성자니 성모니 또 종국에는 신조차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아도 좋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한 거대한 집단적 힘이 이미 내 속으로 뚫고 들어와 있었다.그것은 '타자에 대한 신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30년 동안이나 눈뜬 소경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로서는 오랫동안 죽음에게, 가면을 쓴 종교에게 내 인생을 우연에서 구출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었다. 나는 '교회'의 인간이었다.투사로서의 나는 작품을 통해 자신을 구출하기를 바랐고, 신비주의자로서의 나는 투덜거리며 수근대는 말들을 통해 존재의 침묵을 드러내 보이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사물들과 그 명칭들을 혼동했다. 그것이 곧 믿음이다.

 

(270쪽) 나는 천직을 포기했다. 그러나 환속한 것은 아니다.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달리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한 줄이라도 쓰지 않는 날은 없도다"

 

이것이 내 습성이요 또 내 본업이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왔다.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272쪽) 일찌기 나는 재능의 행복한 소유자라고 자처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유일한 관심은, 적수공권 무일푼으로, 노력과 믿음만으로 나 자신을 구하려는 것뿐이었다.

 

나는 장비도 연장도 없이 나 자신을 완전히 구하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한 진정한 인간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모든 사람들만큼의 가치가 있고 또 어느 누구보다도 잘나지 않은 한 진정한 인간이다.

 

 

 

---작품해설--

 

20세기 가장 중요한 자서전의 하나/곳곳에 향기로 번지는 문학적 문체

 

1964년 번역---2008년 다시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