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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찬가

맑은 바람 2019. 12. 23. 13:38

**레오나르도 브루니 지음 (1370~1444) *조선 한글창제 무렵

<피렌체찬가>,<피렌체시민사>를 통해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피렌체임을 알림

교회의 분열기에 교황의 비서로 근무했으므로 그 내면의 어두운 실상을 목격했음에 틀림없다.

모시던 교황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비서자리를 잃었지만 <피렌체시민사> 저술의 공로를 인정받아

피렌체 정부의 제1서기장이 된다.

부르니가 추구하는 인간상은 '활동적인 인간'이다. 그 본보기로 키케로와 아리스토텔레스, 단테를 꼽았다.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에서 인용


                                     월계관을 쓰고 눈을 감은 이 사진은 <피렌체 산타크로체성당>

                                     자신의 관 위에 누운 그의 모습이리라.


**레오나르도 부루니

자수성가한 사람/ 교황청에서 일하면서 큰돈을(? ?) 벌었음.

달변이고 성실하나 경계심 많고 교만함./부유한 집안의 젊은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성직을 포기함/글쓰기와 번역에 몰두/시의 대법관 자리에 오름  <피렌체 찬가>를 씀--크리스토퍼 허버트의 <메디치가의 사람들>에서

(브루니는 평생 고위관직에 있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메디치 가문과 알비치가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았으니 피 말리는 순간들도 많았으리라.)

P.110 브루니의 인물사:

브루니가 그리스어에 능통한 최초의 르네상스 휴머니스트가 될 수 있었으며 긍극적으로 당대 최고의 라틴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피렌체의 서기장이었던 살루타티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그는 브루니에게 로마문학의 길로 인도하고

그리스어를 교육 받을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리고 그의 추천으로 로마교황의 비서가 되었다. 후에 피렌체로 돌아온 브루니는 살루타티처럼 피렌체의 서기장이 되었다.(1427년 12월)

(한 생애에 있어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지만 살루타티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다. 나에게 살루타티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에게 살루타티였나?)


**번역 임병철: 라틴어 원본을 가지고 번역하면서 르네상스 당시의 관직명칭이나 개념의 번역이 난해했음을 인정함.

 

P.13 어느 누구도 이 도시보다 더욱 빛나고 영광스러운 곳을,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소망이 받아들여진다면 우아하고 위엄있는 언어로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않습니다.

 

1.피렌체는 어떤 도시인가

--최고의 지정학적 탁월함, 도시의 장엄함, 도시를 수놓은 장식물, 청결함에서 다른 모든 도시를 능가한다.

P.16 피렌체는 산악지대의 해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평원지대의 위험에서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두 곳의 환경적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곳의 기후는 온화하고 상쾌합니다.

이 도시는 산악지대와 평원지대 모두에 걸쳐있으면서, 매우 아름다운 왕관같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피렌체는 너무도 청결하고 정갈한 곳이기에 다른 어떤 도시도 이보다 깨끗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이 도시는 세상 어떤 도시보다 더 화려하며 의심할 바 없이, 그 우아함은, 현존하는 그리고 장차 생겨날 모든 도시들을 능가할 것입니다.

--오직 피렌체만이 도시의 번영에 필수적인 이 모든 자질들(청결, 인구, 기후, 건축물)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무엇이 피렌체의 건축물만큼 화려하고 웅장하겠습니까? 우리의 도시에는 웅대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건축물이 자리잡지 않은 어떤 거리도, 또 어떤 지역도 없습니다.

피렌체의 많은 건축물 가운데 전 도시에 걸쳐 두루 퍼져있는 교회와 예배당들보다 그 규모와 양식면에서 더 뛰어난 것은 없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주택뿐 아니라 죽은 자의 묘지 또한 매우 아름답게 보입니다.

일반 시민들의 집들도 화려함, 웅장함, 아름다움, 그리고 특히 존엄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설계되고 건축되었으며 장식되어 있습니다.

P.23 피렌체의 중심에는 뛰어난 아름다움과 놀랄만한 건축기법으로 축조된 매우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성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매우 장대하게 축조되었으며 마치 탑처럼 우뚝 솟아 있어 주변의 모든 건축물들을 압도합니다.

이 성에는 도시의 통치를 위임 받은 사람이 거주합니다.


P.26 피렌체가 치른 전쟁:

상대하기 힘든 적(밀라노의 전제군주,롬바르디아 공작(지안갈레아쪼 비스콘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둠


P.27 피렌체를 직접 방문하고 또 자신들의 눈으로 피렌체의 많은 위대한 건축물과 장엄한 건물들, 도시의 화려함과 웅장한 경관, 높이 솟은 탑들, 대리석으로 만든 교회들, 바실리카의 돔들, 화려한 궁전들, 포탑을 갖춘 견고한 성채들, 수많은 빌라들, 이 도시 내부의 매력과 아름다움, 세련된 장식물들을 목격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당장 감동의 물결로 가득 차, 더이상 피렌체가 거둔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업적에 대해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진정 피렌체야말로 전 세계에 대한 영주권과 지배권을 지닌 도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온갖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서 브루니는 피렌체 찬가를 부르고 있다, 메디치가의 주문에 의해서 쓴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기도 하고 초기 집권자들의 홍보용 정치적 멘트같기도하고~ 알고 보니 그 원조는 <아테네찬가>였네)


P.31 모든 토지는 매우 유용하게 경작되고 있습니다.여기에서 재배되는 작물들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전체의 기본 식량으로 제공됩니다. 그리고 피렌체는 단순한 생필품만 아니라 사치품 공급에서도 전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피렌체는 도시성벽의 내외곽을 불문하고 온 누리에서 가장 축복 받은 도시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P.32 피렌체가 해양도시가 아니라서 좋은 이유: 해양도시의 여러 문제점(염분, 이웃나라의 위협, 야만인들의 습격, 오염된 공기, 변덕스러운 날씨, 해안지역의 거친 풍토)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P.38 이 도시를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즉 피렌체인들, 그들의 규모와 덕성, 그리고 시민공동체의 품성에 관한 것입니다.

 

2. 피렌체인들은 어떠한 선조들에게서 유래했는가

P.39 처음 피렌체를 건설한 이들은 이 세상의 영주였고 정복자였던 로마인이었습니다.

--당신이 선조들의 권위 측면에서 하나의 존엄성을 찾고자 한다면, 저는 이 세상에서 로마인보다 더 존귀한 사람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42 피렌체는 언제 건설 되었나?

이 존귀한 로마인의 도시 피렌체는 로마인들의 통치력이 가장 크게 번성하고 다른 강력한 이민족의 왕들과 호전적인 세력들이 모두 로마의 힘과 덕성 아래에 정복되었던 바로 그 시기에 건설되었습니다.

--처음 건설될 당시부터, 피렌체는 로마의 파괴자, 그리고 공화정 로마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황제당파, 전제주의)에게 크나큰 증오를 간직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정신이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피렌체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숨쉬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자는 칼리굴라를 비롯,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네로, 비텔리우스, 도미티아누스, 헬리오가발루스 등을 독재자라 규탄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따라야 하며 뛰어난 덕성과 군사적 위용을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피렌체를 건설했습니다.

또 이 도시가 건설될 당시에는  자유롭고 굴하지 않는 로마인의 힘과 존엄성, 덕성, 천재적인 기질이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직 피렌체만이 아름다움과 건축물,그리고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그 지정학적 탁월함에서 우뚝 솟을 수 있습니다.

 

3.피렌체는 이탈리아 최고 도시가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피렌체의 덕성에 관하여

피렌체는 자신의 힘만으로 영토를 개척했으며, 사기와 기만, 그리고 범죄와 거짓으로 위장하지 않고 오직 현명한 정책과 위험에 맞서는 당당한 의지, 신념과 정직, 성실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자신의 영예를 지켜왔습니다. 피렌체는 단순히 경제적 풍요로움이라는 측면에서만 다른 도시들을 앞서려 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근면함과 위대함을 더욱더 증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피렌체는 한편으로는 조상들에게서 계승된 유전적 우수성과 존귀함으로 칭송되고 있으며 나아가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자신의 덕성과 위업으로 더많이 예찬되고 있습니다.

 

P.51 피렌체가 대내외적으로 어떻게 번성해 왔는가?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제가 진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 연설을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하고 진리와 거짓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P.57 피렌체의 지혜(자비로운 선행, 관대함)에 관한 이야기: 이 관대함이라는 명성 덕분에 자신의 고향에서 추방되었거나 사악한 음모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동료시민의 시기심 때문에 쫒겨난 모든 사람들이 피렌체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피렌체는 마치 하나의 안식처요, 유일한 피난처와 같습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인 모두의 고향이요, 안전한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P.60피렌체가 위험에 처한 도시들을 보호했기 때문에 이 도시들은 자연스럽게 피렌체를 자신들의 후견국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P.61피렌체는 믿음과 신실함을 매우 훌륭한 가치로 생각해 왔습니다. 적들마저도 이 도시의 드높은 신뢰성과 인간성을 믿었습니다.

--피렌체는 명예가 뒤따르지 않는 그 어떤 실리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P.67피렌체가 적들과 싸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전투기술, 드높은 기백, 관대한 정신


**피렌체의 강력한 적:롬바르디아 공작(밀라노의 공작인 지안갈레아쪼 비스콘티)

전 이탈리아에 불화를 일으키면서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힘이 지치고 약해졌을 때 마침내 엄청난 군사력으로 그 도시들을 침략해 차례차례 그들을 정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교활한 전략은 어디에서나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따라서 많은 도시의 정부는 이 엄청난 힘에 경악했으며 이 때문에 단지 미봉책으로 눈앞의 위험을 모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피렌체는 그와 맞서 승리를 쟁취했다.

P.72이같은 위업의 결과로 피렌체는 날마다 모든이에게 찬사와 예찬, 감사의 표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렌체인들은 이 모든 업적을 전지전능한 신의 의지가 보여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전쟁 중에는 용맹함을 보여 줬고 정복한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했습니다.

피렌체는 성공의 순간에는 절제를, 역경의 순간에는 끈기를, 그리고 모든 행동에서는 정의와 분별력을 보여줬습니다.

 

4. 왜 피렌체의 내부 조직과 제도가 존경받는가

P.74 무엇보다도 이 도시는 '정의'를 신성하게 유지하기 위해 모든 문제들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의 없이는 하나의 도시라고 불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없이는 이 위대한 사람들도 결코 삶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의와 자유라는 이 두 원리는 거의 하나의 상징이나 목적으로서 피렌체가 지향하는 모든 제도와 법률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P.74 정의실현을 위한 견제책:

최고위원과 의장--4구역에서 선출된 8명과 의장의 임기는 2개월, 시청에서 거주하며 위엄을 지키기 위해 경호원을 대동한다. 그밖에 경우에 따라 '12인 위원회'와 '정의의 기수단(무장한 채 시민의 자유보호,임기 4개월)'이 활동한다.

그들이 결정하고 나면 '시민위원회'와 '코뮌위원회'의 의사가 반영된다.

P.77 피렌체의 사법관은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온 외국인들로 충원하고(피렌체 시민들 사이의 적개심과 반목을 억제하기 위해)아울러 그들을 통제하는 법률을 미리 제정해 이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법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밖에 공공선과 시민의 경건성을 고양하기 위해 징세담당관리, 공공기금 담당관리,고아와 그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관리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것 가운데 그 어떤 것보다 '최적의 당파대표'보다 더 저명하고 영광에 찬 기원과 목적을 지니는 것은 없습니다.

**아르비아전투:

시칠리아의 왕 만프레드와 대결한 앙주의 샤를 장군의 승리--거기엔 피렌체인들의 용기있는 싸움이 뒤따랐고 그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건 교황당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협의회였다.

P.81 세상 어디에도 피렌체보다 모든 사람에게 더 동등하게 정의를 구현하는 곳은 없습니다. 즉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보다 더 자유가 생기있게 자랄 수 없으며 그 어느 곳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이보다 더 동등하게 대우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형평의 개념에 따라 다루어져, 피런체에서는 상층계급은 자신의 부를 통해 보호받고 하층계급은 구카에의해 보호를 받으며 이 두계급은 모두법적 처벌의 두려움으로 일탈을 피하게 됩니다.

--피렌체인들은 끈기있게 일하고, 위험에 기꺼이 맞서며, 열정적으로 영광을 구하고, 적절하게 조언하며, 근면하고 관대하며, 위대하고 유쾌하고 상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시민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P.84 사실이 이러하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고, 또 우리에게 무엇이 더 남아있습니까?

신의 자비에 경배하며 그에게 기도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무릎 끓고 당신들께 경배하오니 당신들 모두 부디 이 아름답고 뛰어난 도시를 모든 역경과 모든 악에서 보호하소서!

 

**번역자의 해제:(대학원 논문같어~)

이 책은 밀라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저술되었으며 이에 따라 <피렌체 찬가>는 그 자체로 지안갈레아쪼와의 투쟁을 거치면서 생겨난 피렌체 지식인의 새로운 정치, 역사의식의 가장 열정적이고 완전한 표현이다.

--단순히 자신의 정치경력을 위해 씌어진 하나의 수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시이겔)도 있다.

--'자유'는 브루니의 정치사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관념이었다. 브루니는 '자유'를 인간의 자기계발의 원천이자 공화주의적 덕의 시원으로 인식했다.

**<피렌체 찬가>에서 브루니가 예찬했던 피렌체의 위대함은 결국 자유의 결실이며 피렌체인들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피렌체찬가>는 서유럽공화주의의 역사에서 그 씨앗을 잉태한 최초의 저작이다

**<피렌체 찬가>의 원조격은 그리스의 웅변가 아리스티데스의 <아테네찬가>다. 내용면에서 매우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