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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맑은 바람 2019. 12. 28. 04:17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이승민 옮김 (원문101쪽 분량)

버지니아 울프:(1882~1941) 20세기 대표적 모더니스트. 소설가, 에세이스트, 비평가

'불름즈버리 그룹'의 중심 인물

(작품들)

<제이콥의 방>, <등대로>, <자기만의 방>

**1882년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나던 해는 우리나라엔 전화기가 들어오고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이 책에 실린 6편의 에세이는 1931.12~1932.12까지 잡지에 격월로 연재한 것이다.

 

--혼자 런던을 걷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큰 휴식이다.

 

그녀의 걷기 공간:'런던 풍경'

<런던부두-옥스퍼드거리-위인들의 집-수도원과 대성당-하원의사당-어느 런던 사람의 초상>


(1) 런던부두

-p.12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이끌려 폭풍과 무풍과 침묵과 고독의 바다를 지나온 배들이 저마다 할당된 정박지에 이른다.

P.13 바다가 불어주는 소금기에 코를 벌름대며 템스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들을 지켜보기란 더없이 흥분되는 일이다.

침묵과 고독과 위험을 건너온 배들이 눈앞을 지나 항구로 귀향한다.

P.15 잔디밭과 비탈밭을 밟아 뭉갠 벽지공장, 비누공장 사이로 살아남은 나무와 들판이 마치 다른 문명의 표본처럼 부조화스럽다.

P.16바지선 위에 쌓이는 도시의 폐기물들: 길게 뻗은 폐기물 동산은 지난 오십 년 동안 희뿌연 연기를 뿜으며 무수히 많은 쥐를 번식시키고 잡초를 무성히 키워내며 매캐하고 까끌까끌한 공기를 방출하고 있다.

P.18 : 런던탑--오래된 돌로 육중하게 세워올린 위압적인 원형의 공간안에서 숱하게 7북이 울리고 숱하게 멀가 잘려나가던 곳, 이곳에서 으른넝다는 거친 도시의 노래가 바다에 나간 배들을 불러 제 창고 아래 억류한다.

P.19 화물선의 모습--전세계의 숲과 평온과 초원에서 수집해온 물품들이 이제 배 화물칸에서 나와 저마다 할당된 자리를 찾아긴다.

매주 천 척의 배가 천 개의 화물을 부두에 부려놓는다.

(이때는 빅토리아여왕(1819~1901)시대로 대영제국의 전성기, 찰스 디킨스도 동시대인)

P.23포도주 저장실의 광경:

포도주통의 나지막한 아치에는 솜같은 흰 뭉치가 매달려 자란다. 곰팡이다.보기에 좋으냐 혐오감이 드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곰팡이가 환영받는 건 소중한 액체의 건강을 지키기에 알맞은 습기를 공기가 머금고 있다는 증거라서다.

(낭만적이고 유유자적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영 빗나갔다.

감정이 배제된 런던부두의 세밀화 한 편을 보는 듯~,

그런데 수필을 쓰려면 이렇게 사물을 객관화 시켜 묘사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2)옥스퍼드 거리의 물결

P.29 옥스퍼드거리가 런던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거리가 아니라는 점은 두말할 것 없다.

비평가들은 옥스퍼드 거리에서 물건을 사는 이들을 조롱하며 손가락질하고 멋을 추구한다 하는 이들도 이런 입장에 지지를 보낸다.

패션은 하노버광장 근처나 본드거리 주변의 비밀 장소들로 조용히 물러나 거기서 숭고한 자신만의 의식을 거행하곤 한다.

P.30 해질 무렵 인공조명과 실크더미와 버스불빛 탓에 마치 지지않는 저녁 노을이 마블 아치를 품은 듯 보이는 시각에 느긋한 걸음으로 걷노라면 거대한 리본 다발처럼 펼쳐지는 옥스퍼드 거리의 현란한 번쩍임이 나름대로 매력적이다.

이 거리는 일종의 번식지이자 감각의 온상이다.

P.32 인간의 정신은 자국이 고스란히 찍히는 아교판이 되고, 옥스퍼드 거리는 변화무쌍한 볼거리와 소리와 움직임의 리본 다발을 그 판 위에 끝없이 굴린다.

P.33스트랜드 거리:

웨스트민스터와 시티오브 런던을 잇는 화려한 다리같은 거리

칼라일, 디킨스, 에머슨 등이 살았으며 울프가 즐겨 산책하던 거리

P.34 부자들의 기부:

퍼시가문이나 캐번디시 가문이라고 해서 모종의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베풀기만 했으랴.

옛 영주들과 신흥 영주들 공히 인간생활의 장식과 여흥에 보탠 바가 상당하기는 하다.

P.35 옥스퍼드거리의 대저택

단단하기로 말하면 시골 오두막이 더 견고하다.

대저택들이 부실한 것은 우리시대의 경솔과 허식과 조급증과 무책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비평가들은 조롱한다.

그러나 런던의 현대적 매력은 지속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런던은 사라짐을 목표로 세운 도시다.

우리는 후손들을 위해 건물을 짓지 않는다. 후손들이 구름 위에서 살지 땅 속에서 살지 모르는 일이다.

옥스퍼드 거리에서 오래된 것, 견고한 것, 영구한 것은 생각만으로도 혐오스런 존재다.

P.40옥스퍼드 거리에는 천 가지 목소리들(먹고 살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장삿군들)이 항상 아우성친다. 모두 긴장으로 팽팽한 현실의 목소리다.

삶은 투쟁이고 모든 건축물은 소멸하며 모든 과시는 허영임을 이 촌스럽고 천박하고 번잡한 거리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옥스퍼드거리에서 어떤 결론을 지으려는 시도는 헛되다.

 

(3)위인들의 집

(이 책은 분량도 많지 않고 글씨 행간도 넓어 읽기 좋다. 물론 갈수록 글의 맛이 나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P.42 위인들의 집을 국가소유로 매입해 위인들이 앉던 의자, 사용하던 컵, 우산, 서랍장까지 온전히 보존하는 가옥들이 런던을 채워가고 있다니 기쁜 일이다.

작가들에게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거처를 마련하고 탁자와 의자와 커튼과 카펫을 자기 이미지화하는 능력이 있다.

*첼시의 칼라일하우스:

이 집에는 수도가 놓이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유난히 청결을 중시한 칼라일 부부는 한 방울의 물도 예외없이 부엌의 우물에서 손 펌푸질로 길어 올려 써야 했다.

물도 전깃불도 가스난로도 없이 책과 석탄 연기와 사주식 침대와 마호가니 장식장으로 채워진 이 높고 낡은 집에서 당대 가장 까다롭고 신경이 예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이 불운한 하녀 한 사람의 시중을 받으며 여러 해를 살았다.

모든 집에는 목소리가 있으니 이 집의 목소리는 펌프와 솔질소리 그리고 기침과 신음소리라 하겠다.

또한 모든 집에는 제철이 있으니 이 집의 제철은 언제나 2월인 듯싶다.

체인로 5번지는 거주지라기보다 전쟁터, 노동과 수고와 끝나지 않는 싸움의 현장이다.

이 집에서 일한 여위고 고단한 손과 생명이 다해 이 자리에 시신으로 누운 칼라일의 고통에 짓밟힌 얼굴 주조물도 있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 모두 천재성을 지녔고 서로 사랑했지만 벌레와 함석욕조와 지하실의 펌푸 앞에서 천재성과 사랑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발길에 닳은 문지방을 넘으며 다시 곰곰 생각해 보면 집에 온수를 설치한 칼라일은 칼라일이 못 됐을 것이고, 박멸할 벌레가 없는 집의 칼라일 부인은 우리가 아는 여성과 다른 사람이 됐을 것이다.

P.49 집마다 제 목소리가 있고 장소마다 제 철이 있다면 체인로가 항상 2월이듯 햄스테드는 항상 봄철이다.


P.51 햄스테드의 존 키츠의 집:

키츠(1795런던~1821로마) <엔디미온>, <잔인한 미녀>가 있다.

방들은 크지 않아도 맵시가 있고 뜰로 통하는 아래층 유리창은 벽 절반이 빛으로 채워져 보일만큼 큼직하다.

이 집의 목소리는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목소리. 뜰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목소리다. 이곳에 거주하는 존재는 단 하나, 키츠 자신이다. 비록 벽마다 그를 담은 그림이 걸려 있지만 키츠 역시 육신이나 발소리를 달지 않고 넉넉한 빛발에 실려 소리없이 이곳에 찾아든다. 여기서 그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잠잠히 눈길을 주며 그토록 짧은 생임에도 서두르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P.54 햄스테드언덕

발밑으로 런던의 전경이 펼쳐진다.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 어느 때 보아도 번번이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다.

우뚝 솟은 돔지붕, 도시를 수호하는 대성당, 굴뚝과 첨탑, 기중기와 가스탱크, 봄이든 가을이든 흩어질 새 없이 쉬지 않고 피어오르는 연기 등으로 촘촘히 짜인 혼잡한 도시 런던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득한 옛날부터 런던은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대지를 점점 깊이 할퀴고 불안과 동요와 응어리를 키워 대지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도시의 뾰족탑에 번번이 꼬리가 걸린 연기 다발들이 중중첩첩 누운 도시를 물결치며 뒤덮고 있다. (*18C말 영국의 산업혁명)

팔러먼트 언덕에 서면 저 너머의 전원 또한 시야에 잡힌다. 더멀리 건너편에는 숲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담비나 토끼가 앞발을 들고 멈춰서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나뭇잎 바스락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언덕들이 있다.

키츠 외에 아마 콜리지와 세익스피어도 이 자리에서 런던을 조망하려고 걸음을 했을 것이다.

 

(4)수도원과 대성당

P.56 세인트폴 대성당 런던을 호령한다.

세인트폴은 멀리서 보면 봉긋한 큰 회색 거품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를 위협하며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새 더 차갑고 고요하고 짙어진 잿빛으로 나타나 우람한 산처럼 또 우리를 내려다본다.

세상 어느 건축물도 세인트폴의 위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P.58 세인트메리르보 성당: 죽은 자의 공간

P.60 세인트 폴 경내에 들어서면 몸과 마음이 넓어지고 이 거대한 지붕아래 햇빛도 램프 불빛도 아닌 둘 사이의 모호한 빛을 받노라면 몸과 마음이 확장되는 듯하다. 한 창으로 판판한 초록 빛살이 부서져 내리고 다른 창은 제 밑의 판석을 서늘한 연보랏빛으로 물들인다.  대성당은 지극히 장엄하지만 신비로운 구석은 없다.

기둥들 사이에 웅장한 침대처럼 묘들이 쌓여 있다.

그들의 묘는 깨끗하고 단정하다. 감히 녹이나 얼룩이 오점을 남기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시민의 미덕과 시민의 위대함이 안전하게 안치된 장소다.

물론 부조로 장식된 육중한 문 위에는 죽음의 문을 통과해 부활의 기쁨으로 나아긴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어쩐지 이 웅장한 출입구가 풍기는 느낌은 천상의 합창과 하프가 울려 퍼지고 영원히 시들지 않는 풀과 꽃이 만발한 들판으로 열릴 것 같지 않고, 우렁찬 트럼펫 소리와 깃발이 내걸린 엄숙한 대회의실과 화려한 홀로 통하는 대리석 계단이 펼쳐질 것 같다. 이 장엄한 건축물에는 수고와 고통과 희열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P.62 웨스트민스터사원:

웨스트민스터는 드넓은 평온함과 거리가 멀다. 좁고 뾰족하고 낡았으며 쉼없이 활기차게 들썩거린다.

서민들의 북세통, 왁자지껄 평범한 거리에서 빠져나와 가장 고명한 남녀 인사들로 엄선된 단체의 근사한 집회에 발을 들인 기분이다. 안에서는 엄중한 비밀회의가 한창인 듯하다.

P.64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죽음과 휴식의 장소가 아니다.

덕망가들이 덕행의 대가를 받으러 안치된 안식의 방이 아니다. 과연 이 망자들이 정녕 그들의 덕행 때문에 이 자리에 눕게 됐을까? 그들은 곧잘 폭력적이었고 잔인했다.(찰스 디킨스나 버지니아 울프는 자국민이라 해서 영국인을 옹호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냉소적으로 때로는 신랄하게 위선적인 인간들을 비판했을 뿐이다. 그점에서 독자는 어느 정도 신뢰를 하고~ )

오직 고귀한 태생 하나로 승격된 이들도 있다. 왕과 여왕, 공작, 왕자 들이 수두룩하다. 황금왕관 위로 내리비친 빛줄기가 포개진 예복 주름 사이에 오래도록 금빛으로 머문다.

물론 이곳에는 왕족보다 더 막강하고 위엄있는 인물도 아주 많다. 존재의 의미를 여전히 숙고하고 여전히 사색하며 여전히 질문하는 작고한 시인들이 이곳에 있다.

P.65 "인생은 농담이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가리킨다.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은 그것을 알고 있다."--게이(1685~1732)풍자와 유머 시인, 극작가

---이 근사한 집회의 일원들은 모두 지성과 자기 의지가 확고한 인물들이다. 하여 웨스트민스터 경내는 쉴새없이 고성들이 오간다. 단호한 몸짓과 인물들 특유의 자세가 경내의 평화를 깨뜨린다.

---그렇다면 런던에서 어디를 가야 망자들이 안식에 들었다는 확신과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런던은 무덤의 도시다. 하지만 인간생활이 절정과 급류로 치닫는 도시라는 점도 분명하다.

 

p.67 세인트클레먼트데인즈: 스트랜드 거리 한복판에 있는 교회. 교회는 바다와의 사이에 좁디좁은 보도 갓돌만 덜렁 놓인 섬처럼 서 있다. 세인트는 산 자들을 위해 복무한다.

p.69 정원묘지: 도시 전체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장소는 아마 정원과 놀이터가 된 옛 묘지들일 것이다.

묘지 곳곳에 정교하게 조각된무덤이 정원의 장식이 돼준다.

꽃들이 잔디를 환히 밝히고 나무밑 벤치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굴렁쇠를 굴리거나 사방치기 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과 보모들에게 앉을 자리를 제공한다. 여기라면 젊음의 동요나 노년의 서글픔을 절절해하지 않고 그저 앉아 이른 봄날이나 늦은 가을날을 꾸벅꾸벅 졸며 보낼 만하다. 여기는 망자들이 아무것도 증명하거나 증언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평온히 잠든 곳이니 말이다. 그들은 고유한 이름이나 덕망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다. 그래도 불평할 이유가 없다.

정원사가 구근을 심고 잔디씨를 뿌리면 다시 꽃이 피어나고 탄력있는 초록 잔디밭이 땅에 펼쳐진다.

여기서 엄마들 보모들이 수다를 늘어놓고 아이들이 뛰놀며 거지노인은 종이봉투에 담긴 음식으로 저녁을 먹은 뒤 부스러기를 참새들에게 뿌려준다. 이 정원 묘지들이야말로 런던의 안식처들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망자들이 가장 고요히 누운 곳이다.

 

(5)하원의사당

P.72하원의사당은 숭엄하고 예스럽거나 음률과 격식을 갖추는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걸걸한 목소리가 "의장입장!" 하고 외치면 뒤이어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와 함께 소박하고 평범한 행렬이 등장한다.

역사적 과정은 분명하지 않지만 어떻든 우리 평민들이 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해 보유해 온 지 수 세기다.

저 지휘봉이 우리의 지휘봉이고 저 의장이 우리의 의장이다.우리 자신의 하원 의사당에 우리의 대표를 입장시키는데 트럼펫이나 주홍금색 예복(귀족들의)은 필요치 않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앉았다 움직였다 하는 하원의원들의 모습에서 쟁기로 갈아놓은 긴 땅에 내려앉는 한떼의 새들이 연상된다.  새들은 이삼 분 넘도록 앉아 있는 법이 없다. 항상 일부는 날아가 버리고 일부는 다시 내려와 앉는다.

모여 있는 새떼에게서 지절지절 깍깍 소리가 올라온다.

즐겁게 옥신각신하다가 간혹 씨앗이나 벌레, 낟알이라도 발견하면 활기를 더한다.

속으로 이렇게 엄중히 되뇔 필요가 있다.

'여기는 하원의사당이다. 여기서 세계의 운명이 바뀐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통치한다.우리는 매일 그들의 지시를 따른다. 우리의 지갑이 그들 손에 맡겨져 있다. 하이드파크에서 우리가 차량을 운전할 때 속도를 결정하는 것도 그들이고 우리가 전쟁을 할지 평화를 지킬지 결정하는 것도 그들이다.'

--덕망과 지력과 용기를 갖추었어도 다른 무엇,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자질이 결여돼 있으면 이곳에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P.83 사실을 주무르고 다듬고 온갖 기교와 수사를 동원해 자신이 결정한 대로 대중의 눈에 비치게끔, 그리하여 대중에게 자신의 의지가 관철되게끔 만들던 때가 있었다.

--맹렬한 비난과 장황한 연설이 난무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속이고 우롱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인격의 복잡함과 고상함은 업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제일 필요한 건 신속한 일 처리다.

P.87아무래도 우리의 정신은 비범하고 특별하고 뛰어난 인간을 사랑하는 듯하다.

그러니 민주주의가 오기를 소망하되 앞으로 백년 뒤 우리가 땅속에 누워 있을 즈음에나 오기를, 아니면 어느 놀라운 천재의 솜씨로 거대한 홀과 작고 특별하고 개별적인 인간, 이 둘이 결합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자.(영국사에 대한 식견의 부족으로, 작가가 은유적으로 말하는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해 아쉽다.)

 

(6) 어느 런던 사람의 초상

크로부인의 응접실:

P.88 런던의 개인 주택들은 대개 대동소이하다. 문을 열면 컴컴한 현관이 나타나고 컴컴한 현관에서부터 좁은 층계가 시작된다. 층계참 맞은편으로 두 칸 크기 응접실이 펼쳐지고 이 두 칸 응접실에는 불 피운 난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소파 둘, 안락의자 여섯 그리고 거리를 면한 긴 창문 셋이 자리한다. 다른 집의 뜰이 내다보이는 응접실 뒤편 반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종종 추측이 무성하다.

크로부인이 늘 앉던 자리가 앞쪽 응접실 난로 옆 안락의자였으므로, 그곳이 부인이 실재하는 자리였고 부인이 차를 따르던 자리였다.

--그 자리, 겨울에는 난로 옆 여름에는 창문 옆 한 자리에 부인은 예순 해를 앉아 있었다.

그러나 혼자는 아니었다. 언제나 찾아오는 이가 있어 맞은 편 안락의자에 앉았다.

--크로부인이 원한 것은 친밀함이 아니었다.부인은 대화를 원했다. 대화는 보편적이면서 세상만사를 두루 다뤄야 했다.

똑똑한 인물들도 자주 드나들었지만 누구든 너무 훌륭한 말을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치부해 음식을 먹다 발작하듯 재채기가 터지는 참사처럼 못 본 척 넘어가는 사건이었다.

크로부인이 좋아하고 북돋운 이야기는 항간의 풍문을 미화한 수다였다.

--지난 오십 년 가까이 이렇게 관찰해오다 보니 부인은 타인의 삶에 대해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비축하기에 이르렀다.

이런즉 크로부인의 자택에 출입하려면 이 사교 모임의 일원이 돼 연간회비로 상당수의 풍문거리를 납부해야 했다.(어찌 요런 표현을!)

그러나 바깥사회로 나가면 부인은 속내를 알 수 없고 파편적이고 불완전해 보였다.

마치 자기 곳간을 채우는데 필요한 부스러기 소식을 주워 담으려고 남의 결혼식이나 파티나 장례식을 기웃대는 사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바깥세상으로의 이런 짧은 진출은 사실상 중단됐다. 부인의 둥지가 이미 빈틈없이 촘촘히 완성돼 바깥세상의 깃털이나 잔가지를 보태야 할 필요가 없었다

.(아~, 이 깨알 재미! 이런 게 筆寫의 재미인가 보다. '독서'가 산정상에 오르는 일에 비유된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쓰으윽 오르면서 빠른 속도로 전체를 보는 속독과 찬찬히 쉬엄쉬엄 가다쉬다 큰나무 아래서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하고 개울가에 앉아 돌을 차고 흐르는 물소리에 젖어들기도 하는 일을 정독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때 筆寫를 곁들이면 독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짤막하고 명징한 에세이의 경우에는 더욱 더~)

P.97 그렇게 세월이 흐를수록 부인의 지식은 본래 심오함을 추구하지 않았으니 더 심오해지지 않는 대신 더 포괄적이고 더 완전해졌다.  딱히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었어도 부인의 입을 거치면 마치 지난 오십 년간 런던 생활사의 장면들이 재미난 볼거리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크로부인은 결코 과거에 안주하지 않았다. 부인은 어떤 경우에도 과거를 현재보다 우위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마지막 장면, 현재의 순간이었다.

런던이 즐거운 한 가지 이유는 늘 새로운 볼거리와 신선한 얘깃거리를 안겨 준다는 점이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과거에 할애해도 안 되고 모든 관심을 현재에만 쏟아서도 안 되는 법이다.

P.99 런던을 단순히 멋진 구경거리로, 시장과 궁과 산업의 중심지로 알지 않고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 결혼과 죽음, 글과 그림과 공연, 통치와 입법이 이뤄지는 장소로 이해하려면 꼭 크로부인을 알고 지내야 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런던이라고 해도 크로부인을 영원히 살게 할 힘은 없었다.

크로 부인은 세상을 떠났고 런던은, 아니 비록 런던이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다시는 예전과 같은 도시가 아닐 것이다.

 

작가해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울프는 글쓰기만큼 규칙적으로 독서하고 산책하기를 거르지 않았다.

독서와 산책에서 건져올린 관찰은 차곡차곡 글로 수집됐다.

--부유한 학자 집안이었지만 빅토리아 시대 가부장주의는 울프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학교 대신 아버지의 방대한 서고가 울프의 스승이 되었다.(사르트르가 할아버지 서재에서 글을 깨쳤듯이~)

--이 책의 익숙함과 가벼움은 양면적인 데가 있다. 익숙한 길을 걷되 마주치는 얼굴 발견하는 모퉁이가 다르며, 가버운 걸음으로 서성이되 찰나의 표면에서 심층을 뚫어보는 시선은 내밀하다.

--걷다 서고 보다 생각하는 부단한 교차가 울프의 산책이다.

--익숙한 경로지만 수만 가지 우연에 몸을 맡기면 어느 하루도 똑같지 않다.

--글쓰기는 고독하다. 오롯이 혼자 접신하듯 힘겹게 다른 세계를 드나드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