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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서전 (2)p.83~185

맑은 바람 2020. 2. 15. 23:55

**영혼의 자서전 (1)에 이어 필사한 본문

<크레타와 터키>

P.84 연약한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은 열망과 증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터키와 싸워 크레타에 자유를 가져오는 것)

이것이 씨앗이었다. 이 씨앗으로부터 내 삶의 나무가 싹트고, 움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내 영혼을 처음으로 뒤흔든 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나는 거칠고 쉴 곳 없는 자유의 오름길에 올랐다.

우선 터키인들로부터 찾아야 하는 자유, 그것이 첫단계였고, 그 다음에는 내면의 터키인인 교만과 악의와 시기로부터,

공포와 게으름으로부터, 눈을 멀게 하는 헛된 사상으로부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사랑과 흠모를 받는 대상들까지도

포함한 모든 우상들로부터 자유를 찾으려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되었다.

 

<성인의 전설>

P.92 내 말은 거짓도 진실도 아니었으니 논리와 윤리의 한계를 넘어 경쾌하고 자유로운 뜻을 지닌 말이었다.

혹시 거짓말이라고 누가 따졌더라면 나는 창피해서 울었으리라.

내손에 든 깃털은 수탉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천사가 준 깃털이 되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주 훨씬 뒤에,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한 다음에 나는 이런 비밀스런 조작이 <창작>이라고 일컬어짐을 깨달았다.

 

<도피하려는 열망>

P.98 따스한 산들바람이 불었고, 내 마음에는 풀잎이 싹텄으며, 뱃속은 아네모네로 가득 찼다.

봄은 하얀 말을 탄 약혼자 성 게오르기우스와 함께 왔다가 떠나갔고, 여름이 왔으며, 그토록 훌륭한 아들을 낳은 다음 성모는 열매가 풍성한 땅에 누워 쉬었다. 장마가 한창일 때 성 디미트리오스는 담쟁이와 시든 포도 잎사귀의 관을 쓴 가을을 이끌고는 구렁말을 타고 왔다. 겨울이 엄습했다.  *구렁말:털빛깔이 밤색인 말

(아버지가 없을 때면)집에서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나는 화롯불에 둘러앉아 밤이나 병아리콩을 깜부기불에 구워 먹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이 되면 외할아버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깜부기불:타고남은 숯따위에 겨우 붙어서 불꽃이 없이 거의 꺼져가는 불

우리들은 겨울이 검은 장화를 신고 검은 콧수염에 손에는 구운 새끼돼지를 든 외할아버지라고 상상했다.

P.99 성자들의 전설은 너무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성자들이 너무 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된 인간이란 아무리 곤경에 처했어도 신의 앞에서까지도 저항하고, 투쟁하고,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정을

내렸다.

P.108 내어 말리던 건포도가 폭우에 모두 휩쓸려 가던 날의 아버지의 말:

--아버지,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시끄럽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나는 그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나는 그 순간이 내가 인간으로서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위대한 교훈 노릇을 했다고 믿는다.나는 욕이나 애원도 하지 않고 울지도 않으면서, 문간에 꼼짝않고 침착하게 서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항상 기억했다. 꼼짝 않고 서서 재난을 지켜보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혼자만이 인간의 위엄을 그대로 지켰다.

 

<대학살> 터키인 고관이 살해당하자 기독교인 그리스사람들이 학살 당한 사건

(아버지) 만일 터키인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어떡하겠니? 그들이 안으로 들어와 널 죽이면 어떡하지?

(나) 그들이 죽인다고 해도 전 겁을 내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손잡이가 까만 기다란 칼을 숫돌에다 갈았다.

--터키인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그들의 손에 당하기 전에 내 손으로 식구들을 죽일 생각이야.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말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면 그 시간에 나는 내 영혼이 성숙하는 과정을 틀림없이 보았으리라.

나는 몇 시간 사이에 갑자기 아이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P.113 글을 쓰는 사람은 억압되고 불행한 숙명을 산다.

그것은 그가 맡은 일의 본질이 어휘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내적인 격렬한 흐름을 정체시켜야 함을 뜻한다. 모든 어휘는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려면 인간은 내면에서 폭탄처럼 그것이 터지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안에 갇힌 영혼이 해방된다.

P.114 한편의 시나 <학살>이라는 어휘나,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온 편지나 또는 살아가며 많은 투쟁을 했어도 이룩한 바가 너무나 없는 이 사람이 쓴 글을 살아서 읽는 축복받은 사람들이여!

(영화에서도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장면-죽은 자의 시신을 만지게 하며 아버지가 한 말)

--똑바로 봐! 목이 매달린 이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네 머릿속에서 절대로 사라지면 안 된다, 알겠지!

--누가 그들을 죽였나요?

--자유가 죽였어!

--너 저 사람들을 만져보겠니?

--아뇨!

--만져봐!---어서!

--나는 손가락 끝에서 싸늘하고 꺼끌꺼끌한 발의 감촉을 느꼈다.

--입을 맞춰! 경배를 해야지!

내가 몸을 빼려 하자 아버지는 내 입을 강제로 뻣뻣한 발에다 댔다.

P.117 아버지는 어느 문간에서 허리를 굽혀 온통 핏자국 투성이인 돌멩이를 하나 집었다.

--이걸 간직해라.

나는 아버지가 왜 그토록 냉혹하게 했는지를 나중에 가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항상 나를 지켜준 인내와 집념을 나는 아버지의 냉혹한 가르침에서 얻었다. 삶이 끝나가는 지금 나를 다스리고, 신이나 악마에게서 위안을 받아들이는 몰락을 범하지 않도록 해주는 모든 불굴의 사상도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얻었다.

p.118(터키인들을 피해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오를 때 아버지는 여덟 살도 안 된 아들에게 선택지를 말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피레에프스나 아테네를 빼고.)

그래서 결정한 곳이 낙소스다.

단순히 모양과 이름이 좋아서~

 

<낙소스>

이 섬은 벅찬 감미로움과 고요함이 넘친다. 잔잔한 바다의 한가운데, 어디에나 참외와 복숭아와 무화과의 더미가 쌓였다.

나는 주민들을 둘러보았다.그들의 얼굴은 다정했고 터키인이나 지진에 대한 두려움을 알지 못했으며 , 이글거리지도 않았다. 이곳에서는 자유가 존재하므로, 자유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존재하지 않았다.

P.120 나는 책들을 가져다가 날마다 올리브나무 밑에 앉아 뒤적였다. 내 마음이 넓어졌고 그에 따라 세상도 넓어졌다.

빛이 바랜 어느 책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읽었다.

 

--가장 많은 바다와 가장 많은 대륙을 본 사람은 행복할지어다.

--집에서 기르는 소처럼 1년을 살기보다는 하루동안이나마 들소가 되리라.

 

낙소스에서의 이별:

(아버지) 크레타의 혁명은 오랫동안 계속될 거야. 내가 과수원에서 산책을 하는 동안 동료기독교인들이 죽어가도록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니까 난 그곳으로 가겠어.난 밤마다 할아버지를 꿈속에서 보는데 줄곧 나한테 꾸중을 하시지.

난 가야 해.하지만 그동안 넌 조금도 시간을 낭비해선 안돼.난 네가 참된 남자가 되기를 바란다.

크레타가 자유를 얻는데 도움이 되도록 교육을 받아라. 그걸 네 목표로 삼아야 해.그렇지 않으면 교육은 때려치워!

 

P.125 나는 시라는 방법을 통해 고통과 노력이 꿈으로 변형되기도 하며, 아무리 덧없는 고뇌라고 해도 시가 영원한 노래로 바꿔놓기도 한다는 커다란 비밀을 이제야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읽고 쓰기를, 머나먼 곳을 보기를, 고통과 기쁨을 직접 경험하기를 원했다.

(크레타인의 자부심으로 나는 프랑스학교에서 일등을 한다. 프랑스어 사전을 그리스어 사전으로 번역해서 교장 교감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교장신부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반응에 반해 교감신부는 정반대였다.)

P.126

--(교감신부) 망할 녀석! 넌 소년이냐, 아니면 늙은이냐? 왜 이런 노인의 일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지? 웃고 놀고 지나다니는 계집아이들을 창문으로 내다보는 대신, 망령든 영감처럼 앉아서 사전을 번역하다니! 이러다간 넌 절대로---영원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말거다! 넌 어깨가 축 늘어지고 안경을 쓴 초라한 선생이 되겠지.

나는 완전히 얼떨떨해졌다. 누구의 말이 옳고,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문제가 여러해 동안 나를 괴롭혔고 어느 길이 옳은지를 마침내 알게 되었을 때 내 머리는 백발이었다.

 

P.127 (아버지의 편지)

넌 크레타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지마. 네 머리는 네가 아니라 크레타의 소유야. 언젠가는 크레타를 해방시키기 위해 써야 하니까 잘 가꾸도록 해라. 무기로 돕지는 못하더라도 넌 머리로 도울 능력은 갖추었겠지? 머리도 역시 총이야.

(학교를 방문한 대주교는 나에게 로마로 가서 좋은 교육을 받으라고 권했다.

대주교는 크레타인을 들짐승이라 했고 그리스를 시골이라며 심지어는 부모에게 알리지 말고 로마로 가자고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학교를 불사르겠다며 한밤중에 학교로 왔다.-크레타인의 자존심을 짓밟은 대주교의 만행에 맞선 크레타인)

P.134(크레타의 해방소식에 아버지는 무성했던 수염을 깎고 비로소 웃음을 찾았다.-왜 웃음이 없고 무성한 수염을 길렀는지 아들은 그때에 깨달았다.)

 

<해방>

(양치기였던 어느 크레타의 대장이 표창장을 전해 받던 날)

--이 종이가 뭐지? 우리 양이 또 누구네 밀밭으로 들어갔나? 나더러 손해배상을 하라는 소리야?

전령은 유쾌하게 표창장을 펴더니 큰소리로 읽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니 쉬운 얘기로 해.

(전령) 당신이 영웅이라는 뜻입니다. 액자에 넣어 자식들에게 보여주라고 이 표창장을 국가에서 보냈어요.

--이리 줘

양피지를 낚아챈 그는 갈기갈기 찢어서 양젖을 끓이던 가마솥 밑 분에다 처넣었다.

--가서 난 종이 한 장을 받으려고 싸우지는 않았다고 전해.난 역사를 만들려고 싸웠어!

난 보상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난 원했기 때문에 싸웠어.

 

P.138 요즈음에도 바다나, 별이 총총한 하늘이나, 꽃이 만발한 아몬드나무를 보거나, 사랑의 첫경험을 회상할 때처럼 가장 즐거운 순간을 맞으면, 크레타와 약혼한 그리스의 공작이 크레타땅을 디딘 날인 1898년 12월 9일이 항상 내 머리속을 스치고, 내 마음은 그날의 크레타나 마찬가지로 은매화와 월계수로 장식이 된다.

 

<사춘기의 어려운 문제들>

P.149 물리학선생이 우리에게 알려준 무서운 두 가지 비밀:

하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

둘, 인간은 신이 아끼는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P158 자따(스스로 따돌림당한 존재)를 자처한 '나'에 대한 시선들:

--너무 높으신 분이라 별에 이마를 부딪혀 머리가 부서지고 말겠군.

P.159 이튿날 카스트로는 온통 콧대가 높은 지혜로운 솔로몬이, 성자가, 맙소사! 슬프도다! 카바레에서 진탕 놀아대며

작부의 신발로 술을 마셨다는 굉장한 소문으로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P.165 부자들에 대한 어느 인쇄업자의 생각:

자네들은 돈 많은 사람들의 사상도 바꿔보겠다 이거지? 깜둥이가 세수를 해봤자 비누만 손해야. 부자는 생활이 안정되어서 신이나,국가나,풍요한 삶이 달라지기를 원하지 않아. 귀머거리가 사는 집의 문을 아무리 두드려봐라. 이 풋내기들아.

 

<에이레 아가씨>

영어과외교사, 동년배

짧은 만남 후 이별

 

<아테네>

P.175 젊음이란,

눈멀고 사리를 분별치 못하는 야수이다.

젊음은 먹이를 탐하지만 먹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며, 발길에 채는 행복을 마음만 먹고 주우면 되는데도 줍지 않고, 샘터로 가서 시간이라는 물을 쓸데없이 흘러 말라버리게 그냥 내버려 둔다.

스스로 야수인 줄을 모르는 야수---그것이 젊음이다.

젊음은 지극히 가혹하며, 교만하고, 이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젊음은 사라진다.

P.178 아티카(그리스어로 아티케)의 풍경은 정말로 형언할 길이 없을 정도로, 가슴을 찡하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이곳 아티카에서는 만물이 소박하고, 분명하며, 균형잡힌 맥박에 종속된다는 느낌을 받는다.검소하고 메마른 흙과 히메투스와 펜텔리쿠스의 우아한 곡선과 은빛 잎사귀가 달린 올리브나무와 야윈 수도자같은 삼나무와 햇빛을 받으며 짓궂게 노려보는 바위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물에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는 장난스럽고 투명하고 완전히 영적인 빛--이곳에서는 모두가 귀족적인 우아함과 여유를 지녔다.

아티카의 풍경은 이상적인 인간의 특성을 규정지어서 건강하고도 보기 좋은 몸매에 과묵하고 피상적인 부유함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억누를 능력도 갖추고, 상상력을 제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아티카의 풍경은 뽐내지 않고, 미사여구에 탐닉하지 않으며, 신파조로 기절하는 발작으로 타락하지 않고 차분하고 힘찬 설득력을 지니며 해야할 얘기만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그것은 본질을 형성한다.

P.180 아티카를 돌아다니다 보면, 겸손함과 고상함과 힘의 가장 훌륭한 교훈을 대지로부터 얻게 되리라는 예감을 느끼는 순간들을 맞는다.

 *아티카:그리스 중부에 있는 반도, 고대에는 아테네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BC 8C에 아테네와 통합됨.  아테네와 그 인근지역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