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영혼의 자서전(1)1쪽~82쪽

맑은 바람 2020. 2. 14. 23:42

니코스 카잔차키스/안정효 역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크레타 이라클리온 출생, /1907~ 유럽, 아시아지역 여행/1908 파리에서 니체를 만남./1917 페로폰네소스에서 조르바와 탄광사업/1919 공공복지부 장관 /<미할리스대장><최후의 유혹>이 신성모독죄로 교회의 지탄을 받고 금서가 됨.이는 그가 아홉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을 받지 못한 이유가 됨./중국을 다녀온지 얼마 안 되어 백혈병으로 사망(영화에서는 중국에서 맞은 백신이 문제가 되었다고 함)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2020년 2월 2일) 모두들 칩거 내지는 방콕하는 마당에 영화관 나들이라니!

때로는 무모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상영관에는 나처럼 '무모한 군상들'이 여럿 있었다.

<카잔차키스>는 정신이 고양되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다.

조르바역이 안소니 퀸의 연기와 비교할 때 '맹물과 달콤쌉싸름한 커피맛' 같기는 했지만~)

 

 흡족한 맘으로 돌아와서 <영혼의 자서전>을 펼친다.

글이 군데군데 매끄럽지 않은 이유가 영문학자의 번역이라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나친 선입견일까?

외국문학이 우리나라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초기에는 대부분 일본어로 된 것을 번역해서  그것들을 싸잡아 '개똥번역'이라 했던 때가 떠오른다.  아직도 그리스어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작품이 없다는 게 아쉽다.

***아래는 본문에서 다시 읽고싶은 내용을 필사한 것임

<작가노트>

P.8 내 생애에 항상 나를 괴롭히고 채찍질을 한 단어는 언제나 <오름> 하나뿐이었다. 여기에서 진실과 환상을 섞어가며 나는 산을 오르느라고 남긴 붉은 발자국과 함께 이 오름을 기록하고 싶다.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힘껏 당겨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프롤로그>

<조상들>

P.22 어느 날 밤 나는 친구와 함께 눈덮인 높은 산을 걸었다. 우리들은 길을 잃고 어둠을 만났다. 하늘에는 구름 한 조각 없고 침묵하는 보름달이 머리 위에 걸렸으며 우리들이 길을 가던 산등성이로부터 저 아래 평원에 이르기까지 백설이 새파랗게 반짝였다. 침묵이 불안하게 굳어버려 참을 수가 없었다.영겁에 걸쳐 달빛에 씻긴 밤들은 항상 이러했을 터여서 신도 그런 침묵을 견디다 못해 흙을 집어 인간을 빚었다.

P.25 나는 증조부가 아직도 내 피 속에 생동하여 조상 가운데 내 혈관 속에서 그가 가장 맹렬하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는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는 빡빡 깎아버렸고 뒤로는 길게 땋아 내렸다.그는 알제리아의 해적들과 친했으며 대양을 누볐다. 그들은 크레타 서쪽 끝 그라부사의 무인도에 은신처를 마련했다.(그라부사:가장 악명높은 해적기지--박용수의 블로그)

*육두구:살구모양의 열매

P.27 아버지쪽 조상들은 모두 아랍인의 기질을 지녔다. 자부심이 강하고, 고집스럽고, 모질고, 검약하고, 비사교적이다.

분노와 사랑을 가슴 속에 몇 년 동안이나 간직하면서 전혀 한 마디 말도 없다가 갑자기 악마에게 씌우면 발작적인 감정을 터뜨린다.

그들에게 가장 숭고한 혜택은 삶이 아니라 정열이다.

그들은 선하지도 않고 다루기 쉽지도 않으며 그들이 곁에 있으면 참지 못할 만큼 압박감을 느낀다.

P.29 물이나 불이나 소금이 낭비되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대추야자나무를 보기만 하면 환희를 느꼈으며 사막에 들어서면 떠나고 싶지가 않았지만 ---내 마음은 더 이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P.30 어머니의 그리스인 피와 아버지의 아랍인 피(베두인)가 내 혈관 속에서 나란히 두 줄로 흐른다는 착각의 영향은 긍정적인 보람을 주어서 나에게 힘과 기쁨과 풍요함을 베풀었다.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아버지에 대한 나의 비밀스러운 증오는 그가 죽은 후에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버지>

P.31 아버지는 말이 별로 없었고 웃거나 싸움에 끼어드는 적도 절대 없었다. 아버지는 이를 갈거나 주먹을 불끈 쥐기만 할 따름이었고 마침 껍질이 단단한 아몬드를 쥐고 있었다면 그것은 부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아버지는 엄격했고 괴로워할 줄을 몰랐다.

아버지는 성직자들을 싫어했다.

길거리에서 겁먹은 사제가 --안녕하세요, 미할리스 대장님 이라고 인사라도 하면 아버지는

--나에게 저주를 내리시오! 라고 대답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성자같은 여인이었다. 50년 동안 곁에서 사자의 강렬한 숨결과 탄식을 느끼면서도 상심해서 괴로워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인가?  어머니는 대지의 다정함과 끈기와 인내를 지녔다. 어머니 쪽의 조상은 모두 땅 위에 엎드리고 흙에 달라붙고 손과 발과 마음이 흙으로 가득한 농민들이었다.

P.36 <외할아버지>

활기차고 정력적인 노인으로 흰 머리카락은 다듬지 않았고 푸른 눈에는 웃음을 머금었으며 커다랗고 묵직한 손에는 굳은살이 박혀 나를 껴안으면 내 피부가 벗겨질 지경이었다.

손에는 항상 똑같은 선물인 솥에다 구워 레몬 잎사귀로 싼 젖먹이 돼지를 들고 왔다.

웃으면서 외할아버지가 꾸러미를 벗기면 온 집안이 향기로 가득했다.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외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살아있는 한 내 몸 속에서 외할아버지가 살아갈 터이기에 나는 기쁘다. 우리들은 함께 죽으리라.내 속의 죽은 자가 죽지 않도록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죽지 않기를 바라게 한 사람은 이 외할아버지였다.

외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내마음은 죽음의 정복이 가능하다는 의식으로 힘을 얻는다. 그토록 등잔불처럼 상냥하고 고요한 광채가 얼굴을 감싼 사람을 나는 평생 본 적이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밭과 암말보다도 더 사랑했다.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존경하기도 했다.

<훌륭한 아내만 곁에 있다면 가난과 헐벗음은 아무것도 아니야> 외할아버지가 가끔 말하곤 했다.

 

(밭에서 돌아온 남편의 발을 씻겨주는 크레타 풍습)과 관련하여~

--여보 오늘부터 내 발을 씻지 말아요.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당신은 내 노예가 아니라 내 아내이고 체통있는 여자이니까.

외할아버지는 세상이 떨어지지 않도록 어깨에 올려놓고 버티는 기둥들 가운데 하나였다.

P.41 내가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신비로 가득했다. 어머니는 창가 의자에, 나는 동글의자에 마주보고 앉았고, 마치 우리들 사이를 가득 채운 젖을 내가 빨기라도 하는 듯 나는 조용한 만족감으로 마음이 넘치는 기분을 느꼈다.

머리 위로는 아카시아가 솟았는데 꽃이 피면 마당에는 향기가 가득했다. 향기롭고 노란 그꽃을 나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어머니는 궤짝과 속옷과 홑이불을 온통 아카시아꽃으로 수놓았다. 내 어린 시절은 온통 아카시아 냄새뿐이었다.

우리들은 자주 조용한 대화를 나누었다. 때때로 어머니는 고향과 외할아버지 얘기를 했고 가끔 나는 상상력을 발휘해가며 책에서 읽었던 성자들의 생애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새장의 카나리아는 우리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목을 길게 내뽑고는 마치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몇 분 전에 성자들과 헤어져 천국으로부터 내려오기라도 한듯 흐뭇함에 취해 지저귀었다.

P.42 나는 어머니가 웃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 어머니는 그저 미소만 지으며 참을성과 인자함이 가득한 깊은 눈으로 모든 사람을 둘러볼 따름이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외할아버지나 어머니의 이와같은 아름다운 추억이 한 줌씩만이라도 있었으면, 그래서 가끔가끔 꺼내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힘든 현재를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아들>

P.50 대지와 바다와 여인과, 별이 가득한 하늘과 내가 가졌던 첫 접촉은 그러했다. 내 삶에서의 가장 심오한 순간인 지금까지도 나는 어릴 적과 똑같은 열정으로 이 네 가지 벅찬 요소를 겪고 있다.

이외에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새해 선물--카나리아와 지구본.

새는 지구본의 꼭대기에 앉아 내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는 동안 몇 시간씩이고 노래를 부르는 버릇이 생겼다.

이 지극히 단순한 사건이 나중에 내가 읽은 모든 책들과 모든 사람들보다 나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P.52 현실은 바꿀 수 없으니 현실을 보는 눈을 바꾸자--어느 비잔티움 신비주의자

P.55 눈을 감으면 나(세 살)는 에미네(육두구 냄새가 나는 네 살쯤 된 아이)의 따스함이 내 발바닥으로 전해지고 다음에는 조금씩 무릎과 배와 가슴으로 올라와 온몸을 가득 채우는 기분을 느꼈다. 평생동안 그토록 엄청난 즐거움을 나에게 주었던 여자는 다시 없었으며 여자의 몸이 지닌 따스함의 신비를 내가 그토록 깊이 느꼈던 적도 없었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눈을 감으면 에미네의 따스함이 발바닥으로부터 올라와 온몸에, 영혼전체에 퍼지는 감촉을 느낀다.

P.58 나는 어릴 적의 이 생생한 환상이 아직도 내 머리속에 빛깔과 소리를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있음을 신께 감사한다.

내 마음이 황폐하지 않고 시들거나 마르지 않게 지켜주는 것은 이것이다.그것은 내가 죽지 않게 지켜주는 성스러운 불멸의 물 한 방울이다.글을 쓰다가 바다나 여인이나 신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으면 나는 마음 속을 들여다보며 내 속의 아이가 하는 얘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그는 나에게 받아쓰라고 글을 불러주는데 어쩌다가 어휘를 사용해서 바다와, 여인과,신의 위대한 힘을 비슷하게나마 묘사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내 속에 살아있는아이의 덕분이다.나는 티없는 눈으로 세계를 항상 새롭게 보기 위해서 또다시 아이가 된다.

 

<초등학교>p.62~76

--넌 남자가 되기 위해 여기서 글쓰기와 읽기를 배우게 된단다.

아버지가 말했다.

문간에 선생이 나타났다. 기다란 회초리를 손에 든 그는 내 눈에 야만인처럼, 송곳니가 커다란 야만인처럼 보였다.

--제 아들녀석입니다.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고 아버지는 나를 선생에게 넘겨주었다.

--이 애의 뼈는 내 것이지만 살은 선생님의 것입니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매질을 해서 남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P.64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다같이 누구나 이 무수한 매질이 우리들을 남자로 바꿔놓을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이 방법을 야만적이라 규정지었다.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보다 잘 알게 되자 나는 파테로플로스의 회초리를 찬양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버지와 외삼촌과 선생님의 말은 코미디--)

P.66(아버지)장자상속권이란 사냥할 때 입는 옷인가봐

(외삼촌)내 생각엔 총을 두고 한 말 같아요.

다음날 학교에서,

(선생님)장자상속권이 무슨 뜻인가?

(나)사냥옷요

(선생님)한심한 소리! 어떤 무식한 바보가 너한테 그런 소리를 하든?

(나)아버지요.

 

성경공부:성경공부는 내가 좋아하던 과목이었다--우리들은(그 내용을)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린 이해를 못해요, 선생님.

--그런 것들은 다 하느님이 알아서 하시는 일이야. 우린 이해를 못해야 마땅하지. 이해를 한다면 죄악이니까.

(유년시절 교회의 반사들은 지옥의 불구덩을 자주 이야기했다. 성인이 되어서 교회를 떠나게 된 이들의 마음 속엔 그 지옥불이 타오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는 몽땅 그대로 필사하고 싶은 부분이다.

4명의 선생님 이야기를 통해 나의 모습을 조명해 본다.

교직이 내게 맞는 것인가 늘 회의하면서 36년을 버텨내고는 지금 내 남은 삶을 챙겨주는 연금 수혜자로 살고 있으니 한편 부끄러운 자화상이 슬몃 고개를 든다.

웃기기도 하고 표현이 절묘해서 감탄하기도 하고 교탁 앞에서 죽은 선생님, 수업 중인 선생한테 조용히 하라고, 바깥의 새소리가 안 들린다고 한 어린애를 유다를 닮았다고 해서 더 이상 학교를 나올 수 없게 만든 악인선생이 지금도 도처에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머리를 무겁게 한다.)

P.76가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가난뱅이야. 나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아.--어느 이웃 사람

 

<외할아버지의 죽음>

P.79 (유언)

--젊은이들아, 잘있거라.

나는 내 몫의 빵을 다 먹었으니 이제는 가겠다. 나는 마당 가득히 자식과 손자들을 두었고, 항아리 가득히 기름과 꿀을

채웠으며, 술통은 포도주로 가득 채웠으니 아무 불평도 없구나, 잘들 있거라!

귀를 기울여 내 마지막 지시를 들어라.얘들아. 소와, 양과, 당나귀--짐승들을 잘 돌보거라.

짐승들도 인간이고 우리들처럼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가죽을 쓰고 말을 못할뿐이니까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마라.

그들도 옛날에는 인간들이었으니까 배불리 먹이거라. 그리고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잘 돌보아라.

열매를 얻고 싶으면 거름과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하느니라.

나무들도 옛날에는 인간이었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갈 뿐이란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을 하니, 그래서 인간이 아니겠느냐?

얘기는 듣고 있냐?

아니면 내가 귀먹어리와 벙어리들을 모아놓고 얘기를 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