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안정효
362쪽~736쪽
읽은 때: 20200418~0426
*사막---시나이
(362)우리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넜다.
목은 갈증으로 타올랐고 마음은 어지러웠으며 뱀처럼 구불거리는 미끄러운 골짜기를 고생하며 따라가려니 머릿속은 소용돌이를 쳤다.
이렇듯 끓어오르는 가마 속에서 40년 동안 구워낸 한 민족이 어찌 멸망하겠는가? 나는 히브리 사람들의 갖가지 미덕을 탄생시킨 무서운 바위들에 환희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과 같은 불꽃과 육체로 이루어진 신에게 <우리들한테 식량을 내려주소서!우리들의 적을 죽이소서! 우리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소서!>라고 외친 히브리사람들의 인내와 의지력과 집념과 참을성을 보고 기뻐했다.
사막에 힘입어 유대인들은 계속 생존했고 그들이 지닌 미덕과 악덕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다.
우리들이 겪어가는 불안한 분노, 보복, 폭력의 시대인 오늘날 유대인들은 필연성에 의해 또다시 속박의 땅으로부터 탈출하도록 무서운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 되었다.
(364)나는 이들 사막의 자손(베두인족)에게서 진심으로 감동을 느꼈다. 대추야자 몇개와 옥수수 한 줌과 커피 한 잔만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라! 그들의 몸은 유연하고 종아리는 암염소처럼 가냘프며 눈은 매처럼 날카롭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가장 온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비록 굶주려도 그들은 한껏 먹지 않고 나그네에게 줄 커피와 설탕과 대추야자를 조금 남겨둔다.
(367)시나이산 카테리나수도원
수도원장에 대한 묘사:신의 벼락으로 갈라지고 시커멓게 타버린 고목같은 대수도원장이 나를 쳐다보았지만 분명히 그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았다.그는 시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이제 보이는 세계를 선명하게 보지 못했고 보이지 않는 세계만 보았다. 그는 나를 보았지만 사실은 내 뒤에 존재하는 대도시들을, 죄악과 허영과 교만과 죽음에 허덕이는 세상을 보았다.
수도원장과의 대화:
--당신은 하느님을 찾고 싶으신가요?
--나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나는 어느 길을 따르라고 신이 얘기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곳 사막에서만 영혼이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까요.
--사막에서는 모든 목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서로 분간이 가지 않는 신과 악마의 목소리가 특히 잘 들리죠. 조심해야합니다.
속세에서 헛되이 추구하던 바를 사막에서 찾도록 하느님이 은총을 베풀기를 바라오.
시나이산 정상(모세가 불의 하느님을 만났던 곳):
나-파초미오스 신부님,신이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하시죠?
파초신부-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같겠죠?
나-그게 무슨 말이예요?
시나이산 꼭대기에서 신에 대해 어떻게 감히 그런 소리를 하나요? 성서를 읽지 못했어요?
하느님은 '태워버리는 불'이예요!
아가피오스신부-신의 본질에 대해서는 궁리 그만하고 내 말이나 들어요.
화상을 입지 않게 불에 손을 대지 말아요.눈이 멀지 않으려면 신을 볼 생각을 말고요.
(이내 한숨을 지으며)
내 손과 발, 그리고 마음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는데, 마침내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가 왔는데---손과, 발과, 얼굴은 이꼴이죠. 손은 피투성이고 발은 흙투성이예요. 누가 나를 위해 이 손발을 깨끗이 씻어 주겠어요?
(386)나에게는 성서가 갈기갈기 찢어진 누더기를 걸치고 아우성치며 선지자들이 밧줄에 묶여 내려오는, 산봉우리가 많은 산맥처럼 여겨졌다.
--나는 마음을 달래려고 종이를 기져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슬픔을 쫓아버리기 위해서 벌써부터 도피하던 비겁한 방법이 바로 이렇듯 글을 쓰는 것이었다.
(396)나는 쇠초롱의 부드러운 불빛 속에서 그리스도의 힘차고 금욕적인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혼돈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세계를 힘차게 잡은 가느다란 두 손을 보고 나는, 이곳 땅 위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평생 닻을 내리기 위한 항구가 아니라, 앞바다로 나가서 거칠고도 광포한 파도를 만나 신의 품안에서 닻을 내리기 위해 평생 투쟁하려고 그곳을 떠나야 하는 항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를 좋아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를 따르리라.
(397)내 마음을 매혹시키고 나에게 무엇보다도 더 많은 용기를 주었던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인간이 어떻게 벅찬 투쟁과 만용과 미친 듯한 희망을 품고 신에 도달해서 신과 한 덩어리 한 몸이 되려고 노력했느냐 하는 사실이었다.
신비하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 향수는 내 마음 속에서 큰 상처들을, 또한 넘치는 샘들을 터놓았다.
(397) 나의 내면에는 인간이나 인간 존재 이전의 <악한 자>가 지닌 어두운 태곳적 힘이 존재했었고, 또한 인간이나 인간존재 이전의 신이 지닌 밝은 힘도 존재했었는데, 내영혼은 이들 두 군대가 만나 싸우는 격전장이었다. 나는 맞서 싸우고 세계를 창조하는 두 힘을 화해시켜 그들은 적이 아니라 동지들이므로 조화에서 기쁨을 얻고 따라서 나도 그들과 함께 기쁨을 누리게 해달라고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은 누구나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어서 정신과 육체를 모두 다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는 단순히 특정한 교의를 위한 신비가 아니라 보편적인 개념이다.
(401) 세상이란 나무 한 그루--거대한 포플러이며 나 자신은 가느다란 줄기에 매달린 하나의 초록빛 잎사귀라고 나는 생각했다. 신의 바람이 불면 나는 나무 전체와 더불어 뛰고 춤추었다.
(415-416)요하임 신부와의 대화:
신부--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어요. 우리들뿐이니까 아무도 듣지 못해요.
나--하느님이 듣죠
신부--난 신이 아니라 인간을 두려워해요. 신은 이해하고 용서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고---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는 이곳 사막에서 발견한 평온을 잃고 싶지 않아요.
천사는 고상해진 악마에 지나지 않아요. 인간이 그런 사실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텐데.
그러면 그리스도의 종교는 이 땅에서 또다시 도약하게 되죠.그리스도의 종교는 지금처럼 반쪽인 영혼만 받아들이지 않고 , 인간 전체를 받아들일 테니까요. 그리스도의 자비심이 더 넓어지죠. 그리스도의 종교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받아들여 신성화하고 육체와 영혼은 적이 아니라 동지임을 깨닫게끔 그렇게 가르칠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악마는 우리들에게 영혼을 거부하라고 설득하며 신은 육체를 거부하라고 합니다.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긍휼히 여기고 그리스도의 마음이 두 야수를 화해시킬만큼 언제 넓어질까요?
나--당신은 평생 가꿔온 불길을 나한테 내주시는군요.내가 그것을 더 키워 빛으로 바꿀 능력이 있을까요?
신부--성공 여부는 묻지 말아요. 그것을 더 키우겠다는 당신의 투쟁의지가 훨씬 중요해요.
신은 우리들에게서 투쟁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우리들이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건 신이 따질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니예요.
(음식으로 말하면 내 식성에 딱 맞는 음식, 카잔차키스의 글은 그와 같다. 읽으면서 감동과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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