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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전쟁사2(215쪽~끝)

맑은 바람 2020. 8. 30. 23:31

(215쪽)
페르시아 사람들은 다리우스를 장사꾼, 캄비세스를 폭군, 키루스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226쪽)반란을 일으킨 바빌론을 격파한 조피로스:다리우스에게 이런 신하가 없었다면 바빌론은 함락되었을까?
(229쪽)다리우스가 한 말:"바빌론성을 20개 준대도 나는 조피로스의 몸이 온전한 쪽을 택할 것이다."(조피로스는 바빌론왕을 속이기 위해  자해를 해서  귀와 코가 없다, 그 왕에 그 신하!)
(238쪽)알타이산맥 근처의 이세돈족:부친이 사망하면 인척이 시체의 살점을 잘게 썬 후 양고기와 섞어 먹고 머리는 가죽을 벗겨 도금한 후 보관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240쪽)스키타이인: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유목민족/유라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았다/ 이란계 민족/유목민족 중에 가장 크고 강성했던 민족/ BC 7세기에 소아시아의 아르메니아, 메디아, 아시리아제국을 침략했고 70년 동안 서아시아 지역을 위협했다/이들은 특히 기마술에 능해 여러 지역을 다니며  약탈을 일삼았으나 훗날 여러 부락으로 분열되면서 점차 쇠퇴했다/ 다리우스 왕 때 주요 거주지는 흑해 북쪽/ 호전적이며 전쟁의 신 아레스를 섬기고 전쟁터에서 살해한 적들의 머리가죽을 벗겨 전리품으로 가지고 다녔다/

국왕이 죽으면 후궁과 요리사를 비롯, 많은 신하들을 순장한다/ 그들은 평생 물로 목욕을 하지 않고 대마열매의 수증기를 이용해 목욕을 대신한다/다리우스의 페르시아 군대 70만을 격퇴시킴/기마부대의 강한 전투력이 무기가 됨/
수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대군은 결국 식량난에 허덕이고 스키타이인은 적은 수라 기동력이 있었다/
스키타이 왕족의 묘는 모두 보리스테네스 강변에 있다


(244쪽)오늘날 '유럽'의 어원:
원래 '에우로페'로  페니키아공주의 이름이다.
(259쪽)페르시아의 리비아 원정:
살해된 리비아왕의 모친의 부탁으로 리비아원정에 나서 복수극은 끝냈으나 왕의 모친 페레티메는 온몸이 썪어들어가고 구더기가 들끓는 병에 걸려 죽었다.(善因善果, 惡因惡果?)
(263쪽)리비아왕국:

유목민 베르베르인의 땅. 후에 그리스인이 이주해옴.
BC 7세기 카르타고의 침입--BC 201년 카르타고인을 물리치고 통일왕국 세움--BC 146 로마의 침입--7세기 아랍의 종교와 문화 침투--16세기~19세기에 오스만투르크  지배
암몬인이 살고 있다.
말린 메뚜기를 우유와 함께 갈아마시는 것을 좋아한다/일부다처제/지역에 따라 파종한 양의  최고 300배까지  수확이 가능한 곳도 있다.
(이곳 리비아지역은 헤로도토스가 직접 여행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표현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해변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이 사막에서 다시 열흘 정도 걸으면, --테베에서 열흘을 걸어갔을 때, --다시 열흘을 걸으면)

 

(274쪽)트라키아:

인도에 이어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민족/단결이 잘 안 됨./싸움을 잘해 용병으로 인기가 좋았음/다리우스왕의 부하 메가바조스가 트라키아를 다스릴 때 마케도니아를 굴복시키려 했으나 알렉산더왕자의 도전을 받고 포기함/
트라키아인들은 아내를 돈으로 사온다/문신이 있는 자를 고귀하게 생각한다/노동하지 않는 인간을  가장 훌륭하게 여김/전쟁과 약탈을 가장 훌륭하고 명예로운 행동이라 생각/트라키아 왕은 헤르메스신만을 숭배하며 자신이 헤르메스의  후예라고 주장/지금은 터키, 불가리아, 그리스에 걸쳐있는 땅

 

트라우소이족의 풍습: 자식이 태어나면 가족이 아이 주위에 모여 탄식하고 슬퍼한다.
반면에 가족 중 누군가가 죽으면 고통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며 기뻐한다.

(281쪽)페르시아로 이르는 길:
2000km가 넘는 영토/사르디스에서  수사까지 왕의 길 건설, 수많은 역 설치(2564km, 총 111개역, 걸어서 90일), 역마다  정보전달자와 말을 주둔시킴

(302쪽)독재자 히스티아이오스:밀레토스의 참주/한때 다리우스에 협조하여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후에 이오니아인들의 반란을 부추김/다리우스를 속여  수사를 빠져나왔으나 페르시아의 총독  아르타프레네스의 의심을 받고 붙잡혀 십자가형을 받음.
(302쪽)페르시아군의 밀레토스 함락:이오니아연합함대 353척과 페르시아 함대 600척의 대결/사전 협상으로 6년의 항쟁이 막을 내림/밀레토스의 모든 남자를 죽임

(314쪽)마라톤 전투: 페르시아군은 '흙과 물'을 바치기를 거부한 그리스 공략/낙소스 점령/카리스토스를 굴복시킴/에레트리아 점령/아테네 마라톤에 진지 구축/아테네측은 열 명의 사령관과 지원군 플라타이아인의 도움으로 전투 준비
/페르시아군 6400명 전사, 아테네군 192명 전사로 아테네가 대승리를 거둠/ 애국심과 지혜, 용기를 가진 자유민족이 거대한 제국을 무찌른 기념비적인 사건/이 전쟁을 계기로 아테네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331쪽)BC 481 다리우스의 뒤를 이어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왕위에 올라 아테네 침공을 계획한다.
4년의 준비 기간에, 무려 100만 군사로/그리스국가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두려운 나머지 항복했다.
(332쪽)다리우스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는 국가를 체계적으로 다스릴 줄 알고 신중하며 사리에 밝은 인물들이었다.

용기있는 적장을 예우하고 정복한 민족에게는 때에 따라 관용을 베풀 줄도 알았다.

그러므로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간주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335쪽)그리스 침공을 앞둔 크세르크세스의 말:

"그리스 침공은  페르시아 국민에게는 부를, 나에게는 영광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오."
--또한 그리스 정복에 성공한다면  해가 떠오르는 곳에서 지는 곳까지  전부 우리 페르시아의 영토가 된다는 말이오.

강요는 하지 않겠소. 나를 따르고 싶은 사람만 이번 원정에 참여해도 좋소.
(338쪽)크세르크세스의 견해에 반박하는 숙부 아르타바노스의 말:
--지금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를 공격해야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때의 모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큽니다.--무릇 일을 꾸미는 데는 충분히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심사숙고 끝에 일을 도모하면, 운이 따르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고 해도 불운을 탓할 뿐 후회는 남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신께서는 자신 외에 누구도 지나치게 위대해지고 교만해지는 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339쪽)아테네 정벌을 부추기는 마르도니우스에게 숙부가 한 말:
다시는 아테네를 모함하지 말게.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남을 헐뜯는 것처럼  나쁜 짓도 없네. 비방을 받는 사람은 한쪽으로는 중상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악인으로 간주되니 양쪽에서 상처를 받는 셈이지.

그러나 운명은 이미 정해졌는지, 꿈속에서 자꾸  위협적으로 전쟁을 독려하는 남자가 있어 숙부와 크세르크세스는 전쟁을 결심한다.
(346쪽)BC 480년 봄, 페르시아군대는 헬레스폰토스의 해협을 잇는 다리를 놓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을 보며 현지 주민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제우스님, 당신은 모든 신의 아버지십니다. 그리스를 벌하고 싶으시면 번개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 많은 군사를 이끌고 오실 필요가 있으셨나요?"
(357쪽)크세르크세스의  병력:
육군-170만명, 기병 8만, 아라비아의  낙타부대와  리비아의 전차병  2만명, 만인대 1만명(불사대, 페르시아 정예 핵심부대),
해군-삼단노선 1207척--24만 1400명+36,210명, 운송선3천 척×80명=24만명  총51만7,610명
그밖에 인원 포함  총  528만3220명(오늘날  학계의 고증에 따르면 대략 10만에서 30만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

(363쪽)크세르크세스는 이미 원정에 앞서 자신의 목표는 아테네이니 다른 그리스 국가는 흙과 물만 바치면 절대 공격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그의 말을 따랐지만 스파르타를 비롯한 약 30개국은 아테네와 연합해서 페르시아군대에 대항하기로 결의했다.

(368쪽)테르모필레요새를 지키는 스파르타국왕  레오니다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페르시아군의 화살을 보고,
"페르시아의 화살이 태양을 가려 시원한 곳에서 전투할 수 있게 해주는구나."
**테르모필레:그리스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길목

(375쪽)페르시아 패전의 결정타: 그리스함대는 오랫동안 훈련을 통해 조직적인 지휘체계를  갖추고 있었는데, 페르시아는 각 식민지에서 징용한 군사들이라 말이 통하지 않아 명령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침내 아테네를 함락하고 아크로폴리스를 불태웠다. 겨울이 오기 전에  그리스를 모두 함락하고 결판내기  위해 살라미스로 이동한다.
(386)살라미스 해전을 앞두고:테미스토클레스가 총사령관 에우리비아데스에게  한 말
"이제 우리 그리스의 운명은 그대의 손에 달렸소. 우리는 이곳 살라미스를 절대 떠나서는 안 되오.
신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에게만 행운을 주신다는 점을 부디 기억해 주기 바라오."
살라미스해전에서 파괴된 페르시아 함선은 무려 200척에 달했으나 그리스는 단지 40척을 잃었을 뿐이었다.
(헤로도토스의 숫자에 관해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실망스럽지만 양쪽 다 과장된 숫자로 보는 게 타당)
패전의 기미가 짙어지자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에 남기를 자청한 마르도니우스와 30만 군사를 남겨둔  채 사르디스로 귀환했다. 45일의 귀환 도중 역병이 돌아 대부분 병사했다.
한편 그리스는 누가 일등공신이냐를 놓고 투표한 결과 아테네인 데미스토클레스가 뽑혔다. 그는 마라톤 전투 이후 페르시아가 재차 침공할 거라고 예측하며 준비했던 사람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그리스는 무역, 예술, 문화에 큰 발전을 가져오면서 최고의 황금기를 맞는다.

 

(402쪽)알렉산더 가문이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사연:
7대 조상에 삼형제가 있었는데 레바이아에서 왕궁의 가축을 키우다가 왕은 그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징조를보고 내쫓으려 했는데 형제들이 품삯을 요구하자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을 가져가라 했다. 형제들이 어리둥절하는 중에
막내인 페르디카스는 칼을 꺼내어 빛을 잘라 품에 넣는 시늉을 했다. 그의 직계가 알렉산더였다.

에레트리아 키타이론산에서의 전투:페르시아 기마부대장 마시스티오스가 최후를 맞음

(417쪽)플라타이아이평원의 전투:페르시아군의 完敗
패배 원인--기병대장 마르도니우스가 창에 맞아 죽고 무장이 덜된 복장의 많은 군사들이 중무장한 스파르타 군인에 적수가 되지 못함.
(428-429)헤로도토스의 애국심?
428쪽에서는 페르시아기병의 공격으로 그리스병사 600명이 사망했다고 썼는데 429쪽에서는 그리스연합군 측의 전사자가 스파르타가 31명, 테게아  16명, 아테네는 52명에 불과했다고  했다.

(430)아테네 제국 건설
BC 479년~27년간  지속된 그리스연맹

 

 

(최근에 읽은 책 중 찰스 디킨스의 <영국사산책>과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전쟁사>가 거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을 주어 읽고 베끼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도 코로나19의 덕인가?)

 

2020.8.30 읽고 베끼기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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