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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베발굴기 1~15

맑은 바람 2020. 9. 7. 21:58

-아시리아 옛수도 니네베의 모든 것

아놀드 C 브랙만  지음/안경숙 옮김
대원사/1990.9초판 발행/2017년4 초판 2쇄발행/422쪽

지인의 책을 빌려다보고 돌려주려 했더니 누구에게 갔는지 행방이 묘연해서 새로 사서라도 줘야지 했는데 절판이 되서 구할 수 없었다. 지인에게 넘 미안해서 두루 알아보았으나 이내 얻지  못하다가 이번에 <페르시아전쟁사>를 읽으면서 그 책이 혹시 다시 나왔을까 하고 알라딘에 검색해 보았더니,  반갑게도 얼마 전에, 좋은 이미지의 대원사에서 2쇄가 나왔다.  부지런히 읽고 돌려줘야지~

이 책은 분량도 만만치 않은데 화보가 단 한 개도 없다. 보여줄만한 자료들도 많을 텐데 말이다. 화보가 실린 책은 좀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그림이 없으니 팍팍한 느낌이다.
재미있는 내용으로 그 아쉬움을 덜어줄래나?
전에 읽었을 땐 무척 재미있었던 것 같았다.  줄거리는 단 한 줄도 기억나지 않는데 말이다.

아시리아: 4000여 년 전 세계 최초로 오리엔트를 통일한 나라. 그러나  BC 612년  제국의 멸망과 함께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던 니네베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BC 7C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독립쟁취를 선두로 식민국가들이 동맹을 맺어 아시리아에 저항하였다. 이에 사르다나팔루스 왕은 야만족 스키타이인과 조약을 맺었으나 그들은 니네베에 도착하자마자  왕을 배반했다.

--저자후기와 역자후기를 먼저 읽는다--
저자는 레이어드의 니네베 발굴 활동에서 그야말로 '고고학의 아버지'임을 역설하고 싶어한다. 트로이 발견자 쉴리만을 대신해서~
이 책은 저자가 무척 매력을 느끼는 레이어드경에 관한 전기다. 그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특히나~
(411)이 책의 모든 대화와 인용문은 저자가 임의로 꾸며 쓴 게 아님을 밝힌다.
(416)구약의 근원: 아시리아학과 이집트학이 구약성서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것을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사이를 노예와 포로로서 오락가락하는 동안에 양민족의 고도로 발달한 신화라든가 종교로부터 구약성서 속에 나타나 있는 존엄한 신의 개념을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 개념은 그후 신약성서, 나아가서는 코란에게로 전수되었을 터이고---

(418)엘바왕국의 도읍지:시리아의 알레포 근처.
이집트와 아시리아에 버금가는 왕국.

(8)헨리 레이어드(1817~1894)향년 77세, 영국인, 아시리아 발굴의 선구자
25년간의 결혼생활 중에서 단 한번의 부부싸움도 하지 않은 사람!
레이어드는 에니드를 처음 만나 무릎 위에 안아 올렸던  장소이기도 한  캔포드에 묻혔다.
(11)구약성서의 창세기를 보면 아시리아는 홍수 이후에 세워진 최초의 강대한 제국이다. 건국자인 님로드는 노아의 증손자로서 '주앞에 강한 사냥꾼'  또는 '땅 위에 강한자'로 묘사되어 있다.
님로드는 그의 왕국을 시나르 땅 즉 메소포타미아 삼각주에 건립하였다.
(13)아시리아는 그리스인들이 명명한 것인데  그들의 최고의 신 앗수르에서 따온 것임
(13)그들의 문명은 밑둥부터 빌려온 것이었다.그것은 델타지역의 수메리아와 바빌로니아로부터 얻어온 것이다.신들과 법률과 언어까지도.
로마인들이 아직 역사 속에 나타나기 전에 아치와 터널과 수로를 건설했고 그들의 도서관은 수학과 천문학과 점성술에 관한 책들로 가득차 있었다.
(17)그런데 갑자기 그 제국은 처음 나타날 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기울어지더니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20)온세상이 기뻐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보다 더기뻐한 민족들은 없었다.

(앗시리아는 노아의 증손자가 세웠다는주장을 하면서도?)

그 전쟁의 목격자였던 예언자 나홈은 구약성서 속에서 장면장면을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었으니---니네베가 수장되었도다--니네베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21)사르다나팔루스의 몸을 태우는 장작더미로부터 검은 기둥이 하늘로 치솟자 백향목 대들보로 지탱되어 있던 천장들이 무너져 내려앉았고 구운 벽돌과 굽지 않은 벽돌은 지어진 궁궐과 사원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뜨거운 사막의 모래폭풍이 메소포타미아를 가로질러 곱디고운 모래와 먼지구름을 몰고 불어왔다. 페허는 이들로 덮였고 거대한 인공둔덕으로 탈바꿈하였다. 바람과 함께 날아온 씨앗들이 봄비를 맞고 움이 터서 이 둔덕을 초록색 양탄자로 덮어주었다.
**사르다나팔루스:아시리아제국의 마지막 왕. 궁안에 화톳불을 피워 처첩들과 환관들과 함께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었다.

 

(24)유럽인들의 마음 속에서 니네베가 사라진 적은 없다. 신구약성서 속에서 니네베는 20번씩이나 언급되어져 있고 구약성서에서는 132번이나 아시리아왕국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24)메소포타미아에 들렀다온 유럽여행자들은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점토판들을 들고 왔는데  이것들이 훗날 아시리아 문자임이 밝혀진다.
(27)1825년 대영박물관에 설형문자판들이 전시되면서 레이어드는 단독여행을 떠난다.(8세 때)
레이어드의 조상은 프랑스 사람으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후 캔터베리에 안주한다.
(30)레이어드의 할아버지는 조지3세의 전속사제로 그 아들들을 남에게 맡겨 기르다가 세일론의 문관으로 보내 부를 거머쥘 기회를 준다. 그러나 천식으로 고생하던 아들 헨리 피터 존은 그곳을 떠나 어릴적 이웃소녀 마리안느에게 청혼하여 결혼하고 레이어드를 낳는다. 플로렌스(이탈리아 피렌체)로 이사온 후 천식에서 벗어난 아버지는 레이어드를 데리고  박물관과 화랑들을 교실삼아 방문했다.
(33)레이어드는 책들로 가득찬 집안에서 여행과 영웅적인 모험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었다.
특히 페트라를 발굴한 부르크하르트의 이야기를 읽은 어린 레이어드는 페트라를 직접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으며 자신도 ' 잊혀진' 도시를 독자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에 잠기곤했다.
그러나 그가 좋아하던 책은 <천일야화>였다.--그는 천일야화를 통해 모험정신만을 기른 것이 아니라 어딘가 낭만적인 기질도 몸에 익힌 것 같다.
플로렌스에서 성장한 덕분에 열두 살 때는 능숙한 미술감식가인 동시에  비평가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午餐에 피렌체의 화가들과 고고학자들을 초대해 아들의 식견을 높였다.
그런대 1829년  12세 때 그는, 변호사로 있는  외삼촌 어스틴의 .요구에 의해 영국으로 갔다.
그러나 명색이 양자인 레이어드를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고 수습사원의 길을 걷게 한다.
법률 자체가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은 레이어드는 한동안 방황 끝에 친삼촌의 도움으로 세일론으로 가게 된다.
(56)동행은 삼촌을 통해 알게 된  28살의 신중하고 과묵한 미트포드--그들은  육로로 유럽대륙을 횡단,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반도까지 가서 아담의 다리를 건너 세일론으로 가기로 했다.
(레이어드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마치 내가 짐을 싸고 출발하는 기분이다.
몰타를 향해, 뉴질랜드를 향해, 캐나다 버스 횡단을 준비할 때의 설레임이 되살아난다)

 

(63)스물두 살인 그는 지금 인생에 있어 최초로 혼자서 두 발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가  변호사자격증을 획득하였다는 사실은 뭔가 묵시적이라 하겠다. 레이어드는 일자리 이상의 것을 찾고 있었다. 그 옛날  아시리아의 왕들처럼 그 역시 햇빛 비치는 찬란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난 것이다.

 

(64)그들이 여행을 시작한 때는 1839년 여름, 세일론까지 9000마일(14,484km)의 거리다.
교통수단은 증기선, 합승마차, 우편마차, 사륜마차, 말  정도다.
(65)크로아티아--우리가 본 대부분의 여인네들은 검은 눈과 검은 머리를 한 크고 잘생긴 미인들이었다.
--달마티아--몬테네그로--알바니아(이슬람세계/오스만제국 통치하)--콘스탄티노플--
(69)레이어드는 이곳에서 말라리아 걸려, 이후 지속적인 고통을 받았다.
(70)무디아니아 항에서--우리는 지금부터 어느 유럽인도 밟고 지나간 적이 없는 지역을 뚫고 가야만 한다. 이제 믿을 것이라곤 우리가 지닌 장비뿐이다.
게다가 그때 중동 전역에는 폭동이 들끓고 있을 때였다.
---그는 매 30분마다  혹은 매 1.5마일마다 새로운 정보를 기입하여, 왕립지리학회를 위한 여행일지를 기록해 나갔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실감나는 이 여행기의 재료를 아놀드 브랙만은 어디서 구했을까? 아마 레이어드와 미트포드의 여행기가 주 재료였으리라.)
(74)레이어드의 목적지는 세일론이었지만 그는 터키의 폐허 이곳저곳의 유적들에 빠져 목적지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미트포드가 육로를 이용하기 원한 것도 레이어드에게는 운명같은 기회였다.

 

(74)그곳에서의 나날들에 대한 레이어드의 기록:
불필요한 사치로 부담스러울 것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말참견이라든가 편견 따위로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고생도 많이 했고 때론 강도를 만나기도 했으나 나는 행복하고 기쁜 날들을 보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나 자신 독립해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즐겼다.

(피곤한 인간관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홀가분한가, 더구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고 있음에랴!)
(74)타르수스:오늘날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및 이집트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는 광범위한 지역.
그곳 주민들은 거대한 잡동사니더미를 사르다나팔루스 왕이 스스로를 불태운 자리라 했다.
(75)알레포에서 레이어드는 다시 학질에 걸려 죽었다 살아났다. 둘은 이곳에서  헤어져 베이루트에서 크리스마스에 만나기로 한다. 레이어드는 우회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77)두 사람은 베이루트를 곧바로 떠나 성지순례를 한다는 열망에 부풀어 발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성지방문은 환멸로 얼룩졌다.--예루살렘에 가보니 종교적인 광신자들과 협잡꾼들로 들끓고 있었다. 성소를 서로 관리하겠다고 싸움질을 하고 난리를 꾸며대는 각종 파벌들을 보자 레이어드의 기독교적 감수성은 몹시 손상되었다. 주요 갈등은 로마 카톨릭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크림전쟁의 도화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잠시 기대셨다고 하는 벽의 움푹 팬 곳--그러나 그곳은 불과 600여년 전에 세워진 가짜!
(79)둘은 다시 갈라서 미트포드는 알레포로, 레이어드는 페트라로 간다. 헤브론에서 사막의 배(낙타)를 타고 페트라로 간다.
(81)페트라의 폐허는 지구상의 다른 어느 고대도시의 폐허와 다르다
(81)암몬 :요르단의 수도 암만.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로마시대 건축물의 잔해가 남아있다.
레이어드는 이곳을 떠나  티베리아스 가는 길목에서 베두인 강도들을 만나 낙타까지 빼앗기고 거렁뱅이 신세가 되었으나 유대인 의사를 만나 돈까지 건네받는다.
가난한 유태인의 고결한 관용은 레이어드를 크게 감동시켰다.
길을 떠난  그는 무장탈영  일당에게 가진 것 모두를 빼앗겼으나  노새와 공책과 옷가지는 남겨주었다.
다마스커스에 이르러 그는 대영제국 영사관을 찾아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원기를 회복했다.

(이런 식으로 필사하다가는 이 책 한 권 다 베끼게 생겼다)
(85)그들은 어떠한 곤경--이를테면 사막의 모랫바람, 폭풍우, 약탈을 일삼는 베두인족, 열병, 이질, 이와 벼룩이 들끓는 대상용 숙박소 및 그밖의 모든 것들--도 견뎌낼 수 있었으나 빅토리아정신을 지닌 영국인으로서 한 잔의 차 없이는 삶을 지탱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필수품에 차 한 박스를챙겼다.
(86)시리아에서의 여행이 끝나자 우리의 발길은 자연히 동쪽으로 향해졌고--니네베와  바빌론의 폐허를 밟지 않고서는 우리의 순례여행이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87)쿠르드족 대장과의 만남:풍성한 먹거리와 폭신한 잠자리를 제공받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88)지난날 독서를 통해 얻은 나의 인상으로는 모든 터키인들은 짐승이고 알바니아인들은 사람백정들이며 쿠르드족은 식인종의 사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터키인들은 신사이며, 쿠르드인들은 인심이 후하고 천성적으로 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멋들어지게 속았던 지난 날의 추억이 차라리 유쾌하기조차 하다고 미트포드는 쓰고 있다.
사실 지구상의 인간들은 어디 사는 누구건 오십보백보라고 생각한다.
(92)가난에 찌든 모술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전날 개설한 영사관에서  묵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레이어드와 미트포드가 니네베를 향해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이 동쪽으로 인도, 세일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던 때라 곳곳에 영사관이 있어 그들의 둥지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니, 국가의 그늘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93)초라한 모술의 수난사:

징기스칸--티무르--오토만제국--1825대기근--역병--1831홍수--유럽상품 수입으로제조업의 파산
(107)바그다드에 머무는 동안  레이어드는 페르시아의 사산왕조가 그들의 궁궐을 세웠던 곳인 크테시폰과 고대 바빌론의 옛터인 힐라의 구릉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다. 1840년 5월 16일,
나지막한 구릉들이 기다랗게 줄지어 있고 지평선으로 눈을 돌리니 비르스님로드라 불리는 님로드탑이 보였다. 성경에서는 이 탑은 달리 불리고있다. 바벨이라고.
그는 그곳에서 벽돌 여러 개를 주웠는데 이 벽돌들은 그가 수집한 최초의 설형문자들을 지니고 있었다. 이 벽돌들의 대부분이 솔로몬의 신전을 쳐부순 바빌로니아왕 네브카드네자르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111)그들의 여정 중 가장 위험하고 힘든 지역은 영연방 인도에 접해있는 마지막 장애물인 페르시아를 통과하는 것이었다.(페르시아와 영국이 극한 대립상태)
일단 인도에 들어서기만 하면 세일론은 인도반도 끝에서 한걸음만 내디디면  되는 곳
(118)페르시아의 험준한 박티야리 산악지대의 고대 폐허를 보러 떠남:그는 그곳에서도 터키, 아랍 및  그밖의 여러 곳에서 보여주었던 실력을 발휘하여 비서구인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레이어드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 자신의 행동규범으로 그들을 평가하였으며 '로마에서는 로마인과 같이 행동하라'는 옛금언을 철저히 지켰다. 박티야리족에 대한 레이어드의 평가는, 자기보다 나을 것도 없고 못날 것도 없는 그저 다른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박티야리족은 멋진 민족이었으며 의헙심이 많고 훤칠하니 크며 잘생겼는데, 여자들은 피부가 곱고 우아하고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그는 생각했다.
(119)그들과 지낸 날들은 이탈리아에서 보낸 어린시절 이래로 가장 행복했던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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