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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베 발굴기 16-30

맑은 바람 2020. 9. 14. 17:23

(140쪽)레이어드의 스파이활동:영국대사 스트래트포드 경의 지시로, 터키 통치에 대한 저항운동의 움직임에 관해 정치적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일을 계기로  레이어드는 대사의 수행원, 신문기자 활동을 이어가며 언론인으로서의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한 일은 모험을 좋아하고 어딘가 낭만적인 기질을 타고난 내게는 안성맞춤'이라고 레이어드는 말했다.
(165)메소포타미아지역(모술) 발굴을 앞두고, 캐닝과 레이어드의 계약조건:
1845.10.15  레이어드는 스트래트포드  경에게 자신의 활동 사항을 수시로 알려줘야 하며, 터키당국자들에게는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걸 잊지 말고 그들의 호감을 살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 절대로 놓치지 말 것이며 ---고대유물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산천을 즐기며 아시아인들의 생활 풍습에 호기심을 지니고 있는 여행자라는 명색을 유지할 것이며--
레이어드와 캐닝은 발굴 작업이 두 달 내에 모두 끝나리라고 생각하였다.--그러나 그는 2개월이 아니라 7년이 넘도록 아시리아의 구릉들 사이에서 땅파기를 계속하게 된다.
(172)님루드(니네베?)에서 성공을 거둔 날: 박부조 조각상 발굴
'나는 우아하고 풍부한 장식 무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인간과 말들의 사지라든가 근육에 대한 충실하고도 기술적인 묘사, 인물들 하나하나에 나타나 있는 예술적인 지식  및 뛰어난 구도 등은 우리를 아연케 만든다.'
(174)천일야화에 나오는 동화의 도시 바그다드 (레이어드에게는 꿈의 도시였다)

(176)레이어드와 롤린슨의 만남:
아시리아 고고학의 창시자 레이어드와 장래 아시리아 문자를 해독하게 될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인 아시리아 언어학자인 롤린슨--
(181)빅토리아시대의 예술관을 바꾸게 하는 사건:
딩시의 사람들은 그리스의 조각이 가장 완전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수천 년 전(2500년 전 유물)은 아닐지 몰라도 그리스의 페리클레스(BC495~BC429, 그리스민주주의와 아테네제국을 완성시킨 이)시대를  앞서는 예술 작품으로서, 그리스 작품에 결코 뒤지지 않는 조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게 아닌가(1846.4)
(194)님루드의 원래 이름이 아직 밝혀진 건 아니지만 레이어드가 자신의 위치를 발견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했다.
"저는 폐허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이제 다른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지내요. 당분간 저의 희망과 두려움과 기쁨은 온통 이 폐허 속에 어우러져 있답니다."
(203)산악부족 예지디인에 대한 레이어드의 평가: 아주 훌륭한 종족이라고 생각
"이 불쌍한 산악민들만큼  제게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들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216)그의 발굴방식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식의 그의 발굴방법은 후에 안락의자에 앉아 연구만 하는 고고학자들의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하였다.
(1949년 영국탐사대는 레이어드가 버린 흙더미 속에서 30점의 님루드 상아들을 발견하였다.)
(217)발굴의 절정기:발굴을 시작한 이래 첫 6주일간 님루드는 많은 예술품들을 토해내었다.
그는 3개의 왕궁과 28개의 방과 홀, 13쌍의 거대한 날개 달린 인두 황소상과 사자상들, 양각으로 뒤덮인 벽돌, 그 유명한 블랙 오벨리스크  및 그밖에도 수많은 화병들과 무기, 점토판 등  박물관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아시리아 유물들을 발굴해 내었다.
(220)투구들이 발견되었으나 신선한 공기에 닿자마자 부서졌다. 이렇듯 손실을 눈앞에 보면서도 속수무책인 레이어드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역사가 재생되기 무섭게 사라져 버리고 말기 때문이었다.
(240)아시리아왕국의 첫 도읍지:앗수르
(247)박물관의 지시에 따라  님루드에서의 발굴을 중단하고 거상들과 양각들을 땅속에 파묻었다.
강력한 태양광선과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뿐 아니라 이방인들과 우상이라면 무조건 때려부수는 광신적인 모슬렘교도들과 베두인 약탈자들의 곤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신의 오두막과 요새도 헐어버렸다. 구덩이들까지 모두 메워지자, 구릉은 이따금  무심한 바람만  스쳐지나가는 무인지경의 벌거숭이 가파른 둔덕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이제 아시리아 궁전의 폐허는 다시 풀들로 무성해질 것이다. 그때 누군가 이곳을 방문하면, 그는 내가 꿈에 본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려니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레이어드는 쓰고 있다.
(248)모술로 이르는 길 중간쯤에 있는 언덕 위에 오르면 님루드의 마을과  폐허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지막하게 웅크리고 있는 구릉들의 길고 거무스레한 능선이 레이어드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그는 말고삐를 잠시 늦추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모습을 가슴속 깊이 새겨두었다.
(251)님루드와 칼라  샤르가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레이어드는 퀸지크의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하였다. 그는 알지 못하였지만, 사실 그는 다름아닌 바로 니네베를 발견한 것이다.  퀸지크의 폐허는 세나케립의  궁터였다.  열왕기와  역대기와 이사야서에 나오는 바로 그 산혜립 말이다.
(254)모든 인부들이 한가지 부탁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레이어드 밑에서 일했다는 테스케레, 즉 증명서를 써달라는 것이다.
이 증명서는 억압을 일삼는 관청에 대한 호신용으로 쓰여질 뿐만 아니라, 먼 훗날 손자손녀들에게 님루드에서 캐낸 기적에 관해 들려줄 때 추억이 담긴 기념물이 되어 줄 거라고 했다. 레이어드는 영광스럽기도 하였지만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음 며칠동안 손목이 뻣뻣해지도록 증명서를 써주었다.
(255)마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작별을 고하겠다고  상당히 먼곳까지 레이어드와 함께 말을 달렸다. 그의 인부들은 걸어서 따라왔다. 성문에 지켜 서있던 그들의 아내와 딸들은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들은 그의 말에 매달리고 그의 손에 키스를 하는가 하면 그가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말을 재촉하자 소리내어 울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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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드는 신실한 기독교도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미신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니네베에서의 그의 행운은 그를 헛갈리게  하였다. 아시리아  왕국의  수도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메소포타미아의 평원 밑에 묻혀 있으면서 구원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나란 말인가?"
그는 후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할 때  나는 가끔  이러한 의문을  떠올리곤  하였다--이 유물들을  발견한 시기는 너무도 적절하여 미신을 잘 믿는 사람 같으면 이 발견이 단순한 우연 이상의 어떠한 뭐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회의주의가 전염병같이 번져가던 시대에, 성서 속에 나오는 아시리아 왕국의 권력과 영화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물들을 찾아내었다.
(나는 레이어드의 이야기를 읽는 중에 최근에 방영된 <아라비아의 로롄스>의 주인공의 이미지가 자꾸 오버랩되면서, 그 둘이 어딘가 공통점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외모는 정반대지만 그들은 원주민과의 친화력이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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