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유목에서 정주 문명국가로 변신한 위구르 제국(745~840)
28.위구르족의 기원은?(132쪽)
흉노족의 먼 후예로 튀르크계 고차부족연맹의 한 부족
29.위구르의 다른 이름은?
원흘, 어흘, 회흘, 회골, 희희, 웨이우얼(133쪽)
30.위구르의 역사(134쪽)
1)몽골초원, 돌궐에 복속됨
2)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카간국 설립(647이후~)/건설자는 쿠틀룩 빌게 퀼 카간이다.(747년 사망)/쿠틀룩이 죽자 그 아들 바얀 초르는 정복사업을 펼쳐 튀르크계 부족을 하나로 묶으며 졔국을 안정시킴.
3) 840년 멸망, 중앙아시아, 중국으로 이동
4) 몽골의 지배시기에 몽골인의 교사, 몽골인의 두뇌 역할을 함
31.바얀초르 재위 시 대사건은?(136쪽)
1)탈라스 전투(751.7~8)실크로드의 패권을 둘러싼 압바스왕조의 연합군과 당나라연합군의 대결/탈라스 강 유역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당의 패배/압바스왕조의 승리-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 시작/위구르는 이 틈에 타림분지 차지--유목생활에서 벗어나 정착생활 시작
2)안록산의 난(757)중국 역사상 최대의 난/안록산의 모친은 돌궐족/안록산은 대군 20만을 이끌고 낙양과 장안을 함락시킴/8년간 당나라를 폐허로 만듦/풍전등화의 당은 위구르에 원조를 청하며. 위구르가 요구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받아들였다./장안과 낙양에서 4만의 군사로 안록산을 격퇴/759년 바얀초르 사망/762년 당현종 사망/763년 안록산의 난 평정/위구르는 정기적으로 말떼를 보내 비단과 바꿔 가서 중국의 국고가 바닥날 지경이었다.
(힘 있는 자=무력이 센 자들의 행위를 보면, 날강도, 도둑놈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전장에서 과연 정의는 있기나 한 건가?)
32.견마무역이란? (139쪽)
중국과 주변 민족 간의 대표적인 교역품은 비단과 말이었다 /영토확장의 수단은 말을 탄 기병대였으므로
33.타르칸 뵈귀는 어떤 인물인가?(143쪽)
바얀 초르의 작은아들/낙양에서 안록산의 반란군 진압/많은 재물을 챙기고 도시를 불태움/20일간 불은 꺼지지 않았다./인구 5300만이었던 당나라 인구가 1700만으로 줄어듦/마니교를 국교로 정함/정착화 가속/무자비한 약탈과 파괴를 감행하는 뵈귀 카간에 대해 숙부가 조언을 하나 듣지 않자, 숙부 톤바가 타르칸은 뵈귀와 그의 측근 2000명을 살해한다.
34.소그드 상인이란?(146쪽)
소그드인:고대 이란족 계열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 인들을 부르는 말/위구르 제국의 재정을 좌지우지함
35.위구르의 멸망 과정은?(149쪽)
824~832 사이, 정쟁으로 칸이 살해되고 내부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839년 겨울, 혹독한 추위, 전염병, 농산물 생산저하 등의 경제적 타격을 입으며 위구르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840년, 키르기즈는 대규모의 군사를 이끌고 위구르를 침공, 카라발가순을 정복, 마지막 카간을 살해함으로써 100년 제국의 문은 닫히고 만다.
36.위구르 유민들이 세운 왕국들은?(151쪽)
1)간쑤 왕국(870~1036) 라마교/요기르(황색 위구르라는 뜻)/탕구트 왕국에 흡수됨/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인 유그르족2)카라호자 왕국(856~866~1209)이디쿠트 왕국이라고도 불림/위구르 문화의 중심/후에 몽골의 지배를 받음3)카라카니드 왕국(840~1212)카라한이라고도 불림/이슬람으로 개종
37.위구르 분리 독립의 역사는?(152쪽)
천산산맥 이남의 위구르지역을 청이 강제 흡수/위구르인의 강력한 저항으로 청은 철수 결정/이 지역을 '신장'으로 명명/위구르족은 타림분지 남쪽 카쉬가르에 '동투르키스탄 이슬람공화국'을 세움(4개월 만에 문 닫음)/후에 다시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웠는뎨 이것이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이다/가장 많은 위구르족이 산다/튀르크계 언어 사용/이곳의 위구르족은 중국으로서는 화약고와 같은 존재
38.위구르의 문화
문자제정, 종이 제조, 외국서적번역 출판, 많은 건축물을 지음, 그림, 음악, 벽화제작제4부 이슬람 전사의 제국, 셀주크 제국(1040~1308)
39.카라 한 왕조(840~1212)
위구르계통의 나라/중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이슬람을 받아들인 튀르크계 국가/튀르크어 사전 발간(165쪽)
40.가즈나 왕조(963~1187)
북부인도 지역을 튀르크화 함/이란화된 튀르크계 국가/튀르크 용병 출신의 알프 티긴이 건국자/마흐무트의 통치시기에 가즈나 조는 최전성기를 누림/마흐무트: 학문과 예술의 보호자/튀르크계 군주 중 '술탄(=황제)'이라는 칭호를 최초로 사용함
41.대셀주크 제국의 탄생 과정은?(1040~1157)(171쪽)
셀주크: 제국의 시조인 부족장 이름/오구즈 야브구 부족국가에서 군사령관을 지내다 독립함/징세 거부로 오구즈 야브구와 접전, 압승을 거두고 셀주크국가 건설/호라산 점령--/투우룰 베이(1대 술탄)는 단다나칸 전투에서 가즈나를 괴멸시킨 후, 셀주크의 위상을 한층 드높였다./1055년 바그다드 정복
42.호라산은 어떤 곳인가?(178쪽)
'태양이 뜨는 곳'이라는 의미/이란의 동쪽/아프가니스탄의 북서쪽/지리적으로나 기후조건이 튀르크인의 정착지로 가장 좋은 곳
43.셀주크와 비잔티움의 군사력 대결은?(183쪽)
1048년 9월 터키동부 파신레르 평원에서의 대결전/비잔티움 군대를 꺾고 반과 드라브존 접수
44.말라즈기르트 전투(1071.8.26.)2대 술탄 알프아르슬란이 4만의 군대로써 7만의 비잔틴 군대를 꺾어 아나톨리아 반도의 진입이 한발 더 가까워짐/술탄은 서 카라한 원정에 나섰다가 살해됨
45.술탄 멜리크샤 시대(186쪽)
재위(1972~1092)/전성기/카라한과의 불가침조약, 가즈나와의 평화조약으로 셀주크 우위의 지위 유지/북부 알레포, 우르파,안타키야를 두루 지배함/사우디아라비아의 헤자즈, 예멘의 항구도시 아덴을 손에 넣음/이어 아나톨리아, 트란스옥시아나, 이란,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아라비아반도, 아프가니스탄, 북인도 등이 셀주크 영역이 되어 가장 넖은 영토를 가진 제국이 되었다.
46.재상 니자뮐뮐크
셀주크시대 이슬람세계가 배출한 최고의 재상/셀주크시대 문학고전으로 평가받는 '정치서'가 있다./셀주크제국의 정치, 사회 등을 이해하는데 아주 귀중한 사료/술탄 알프아르슬란과 멜리크샤에 걸쳐 문화의 황금기를 누리게 한 주역
47.셀주크의 마지막 술탄은?(192쪽)
센 제르/중앙아시아의 카라키타이와 영토분쟁에서 크게 짐으로써 쇠락의 길로 급속하게 내려감/센 제르는 제국 내 오구즈 족에 생포되었다 풀려난 후 1157년 사망함/이후 제국은 넷으로 분열됨/그 중 아나톨리아 셀주크제국이 가장 오래 남아 명맥을 유지했다.
48.아나톨리아 셀주크 제국(1077~1308)(195쪽)
이즈니크(니케아)를 수도로 정함/쉴레이만 샤 1세는 대제국 술탄 멜리크샤에게 '술탄' 칭호를 부여 받음/241년간 종속됨/1176년 미리오케팔론 전투에서 셀주크가 대승하여 아나톨리아가 튀르크인의 본거지라는 인식을 심어줌/4대 알라딘 케이쿠바트1세 때가 아나톨리아 셀주크의 최전성기-몽골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보수하고, 과학과 학문도 장려함--그의 아들에 의해 독살됨/1243년 술탄의 8만 병력과 몽골의 3만 병력이 쾨세다으 평원에서 접전, 몽골이 크게 이기면서 셀주크에 내정 간섭, 셀주크는 날로 무력해지는 가운데 1308년 마지막 술탄 그야세딘 메수드2세가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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