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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이야기1

맑은 바람 2020. 12. 4. 23:08

이희철 지음/282쪽/리수/2017.6 1판1쇄/읽은 때 2020.11.26~12.4

**이 글의 저자 이희철은 터키국립가지대학교 국제관계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현재 중동공과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다.

특이한 학력과 경력 때문에 저자에 대해 좀더 알고싶었으나 정보 제로 상태~

--흉노  돌궐 위구르 셀주크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주요목차--
제1부  초원의 최강 흉노 제국(BC209~216)
제2부  동서를  연결한 초원제국, 돌궐 제국(552~744)
제3부  유목에서 정주  문명국가로 변신한  위구르 제국(745~840)
제4부  이슬람 전사의 제국, 셀주크 제국(1040~1308)
제5부  문화다양성 세계 최강, 오스만 제국(1299~1923)

**문답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1. 튀르크인들의 최초의 거주지는?(26쪽)
중앙아시아에서 몽골 대초원으로/알타이산맥 북서쪽, 천산산맥 북쪽, 아랄 해 주변, 카스피아해 동부/
BC 20세기경부터 아시아, 유럽, 북부아프리카 등지로 이동
2.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는?

아파나세보 문화(BC3000~BC1700)사냥, 목축, 금속문화---안드로노보 문화
(BC1700~BC1200)청동기문화-카라수크 문화(BC1200~BC700)철기문화
바이칼과 몽골을 거쳐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침
3.중국인들이 최초로 만난 강적은?

흉노(중국 북부지방을 침략, 약탈)(27쪽)
4.유목민족 최초로 국가를 건설한 이들은

흉노 제국(BC4C~BC3C) 기마술, 궁술, 철제무기로 몽골대초원을 누빔
5.흉노의 뜻은?

힘있는 자, 강한 자
(기냥 재미로 읽기에는 부적절한, 너무 전문적(?)이어서 딱딱하고 지루하다. 그러나 필사하며 끝까지 읽어냈다. 끝까지 지루했으면 읽어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초반에 사귀기 힘든 친구였을뿐이다)
6.흉노의 전술은?

달리는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활을 다루는 기사술이 핵심을 이룬다.  흉노족의 탁월한 기마술과 말 위에서 쏘는 화살(鳴鏑:우는 화살)의 위력은 무서운 공격력과 파괴력을 가졌다.(33쪽)
"군대를 일으킬 때에는 별과 달을 관측한다. 달이 차오르면 공격하고 기울면 퇴각한다.--적을 발견하면 사냥감을 찾는 새 떼가 모여드는 것처럼 행동한다."--사마천의 史記 중에
7.흉노의 최고권력자의 호칭은?

선우
8.흉노제국의 건국자는?

두만 선우의 아들 묵돌(재위 BC209~BC174) 동생 태자를 왕위에 오르게 하려는 아버지 두만을 명적으로 살해함./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용맹성, 결단력 뛰어남/이때 조직된 군사체계가 오스만제국 때까지 그대로 전해 내려옴(37쪽)
8.평성 백등산 전투란?

묵돌과 한고조 유방의 격돌/ 40만 묵돌의 정예기병은 32만대군의 한나라군사를 7일간 포위했다가 왕비의 중재로 유방의 군사를 풀어줌/한나라 역사에서 치욕적인 사건 (44쪽)
9.흉노와 한나라의 외교정책은?

유방은 흉노와 싸울 의사를 접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는, 불리한 화친조약음 맺음
10.한무제와 흉노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나?

걸출한 전략가 황제인 한무제는 흉노의 심장부에 들어가 격전을 벌이고 하늘을 찌르는 흉노의 세력을 꺾어놓았고 흉노 우위의 화친정책(70여 년간)을 깼다.(53쪽)
(배가 파도의 리듬을 타기 전에는 기우뚱거리고 뒤집힐 듯도 하여 도로 나갈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 바다 안쪽으로 어느정도 들어오면 커다란 파도에 안겨 평화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 독서도 이와 같다.)
11.장건의 역할은?

한무제의 명을 받들고 동맹국을 찾아 서역으로 떠났지만 실패하고, 11년 이상을 떠돌면서 얻어온 정보가 한나라가 흉노를 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를 착공인(미지의 세계에 터널을 뚫은 인물)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후 중국과 유럽은 비단길을 통해 무역이 이루어졌다.(58쪽)
12.흉노에 크게 타격을 준 한나라 장수들은?

위청, 곽거병, 이광/이들은 흉노의 주거지인 기련산과 언지산을 빼앗음/"우리가 기련산을 잃어 가축을 먹일 수가 없고, 우리가 언지산을 잃어 여인의 얼굴을 물들일 수가 없구나."--흉노인의 민요(62쪽)
13.흉노족에게 보낸 한무제의 서신내용은?

BC 100년/선우가 한 왕조와 전쟁을 하겠다면 한나라의 천자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변경까지 출병하여 기다릴 것이다. 선우가 만약  전쟁을  원치 않는다면 응당 한 왕조에 신하로 복속해야 할 것이다. 어찌 멀고 먼 곳까지 도망쳐 막북(사막의 북쪽이라는 뜻으로, 고비 사막 이북인 현재의 외몽골 지방을 이르는 말) 추운 곳에 숨어 있는가?(64)
14.흉노와 대적한 한나라 명장들은?
-흉노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19년만에  귀환한 소무,
-이릉과  이광리는 흉노에 맞서 싸우다 흉노에 투항
***사마천은 이릉을 두둔하다 궁형에 처해짐
15.흉노와 한무제 간의 싸움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나?(65쪽)
50여 년 간/유라시아 역사상 보기드문 전쟁
16.흉노역사가 약세로 돌아선 사건은?

호한야 선우가 중국 수도 장안 방문,  한의 신하가 될 것을 다짐, 한의 지원을 얻어냄/160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음/한무제 사후 36년  후
17.흉노제국이 사라진 때는?(72쪽)
남흉노는 중국 복속 아래 216년까지 명맥을 유지하지만, 북흉노는 몽골계 선비족과 연합한 후한에 의해 155년에 패망한다.
18.훈족의 등장시기는?(74쪽)

370년대  즈음, 북흉노의 일부가 돈강 서쪽 언덕에 강력한 폭풍처럼 등장했다./376년 다뉴브강 인근 마을 습격, 고틱왕국을 쓰러뜨림./피난민은 서쪽으로 이동, 서로마가 붕괴됨/훈족은 카스피 해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동유럽에 훈제국을 세움.(5세기, 100년간(~469))/동로마는 훈제국에 조공을 바치며 평화 유지/전성기의 인물은 아틸라(~453)/아틸라 사망 16년 후, 제국에 복속되어 있던 민족들의 반란과 동로마의 공격으로  멸망
19.훈족과 한민족의 공통점(81)
유사한  언어 체계/몽골반점/복합궁 (나무토막을 이어서 만든 활. 길이가 짧고 좁은 것이 특징)  /편두/청동솥 등

20.돌궐(괵튀르크=천자)제국 건설의 때는?(85쪽)
552년, 튀르크계 부민은 유라시아 초원에 흩어져 있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제국을 건설했다./부민은 553년 사망/큰아들은 계승한지 일 년 만에 죽고  둘째아들 무칸 카간이 뒤를 이어 강성한 국가를 만든다.
**551년, 고구려는 돌궐의 침입을 받음
21.돌궐  북주 북제의 삼각관계는?(93쪽)
초원의 최강대국 돌궐은 북주와 북제를 적당히 조절해가며 그들에게서 비단 등의 공물을 받았다.
북제는 조공 때문에 국고가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튀르크인 이야기가 점입가경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강자(돌궐)의 약자(북주,북제)에 대한 간악함에 생각이 미치니 가증스럽기조차 하다.)
22.돌궐과 수나라, 고구려의 관계는?

581년 수나라가 통일된 중국의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돌궐은 자리다툼으로 해이해진 상태--이 때에 부사신으로 돌궐에 머물렀던 장손성이 돌궐의 내부사정을 소상히 파악, 수황제에게 보고함으로써 수와 돌궐의 관계를 악화시켰다./돌궐의 힘이 점점 약해지자 이쉬바라 카간은 돌궐을 중국에 복속시켰다./이쉬바라가 죽고 후에 카간이 된 키민은 자진하여 수나라의 신민이 될 것을 청하고 문물제도까지 바꾸어 중국화를 꾀하였다./고구려가 돌궐과 연합하여 수나라를 치려는 계획이 드러나자 수나라는 군대를 이끌고 3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침공한다.(612-614)

이 원정 실패는 수의 멸망을 자초하여 38년 만인  618년에 멸망한다./동돌궐은 일리 카간의 정책 실패, 가뭄, 반란등으로 궤멸한다.
23.퀴르샤드 반란이란?(110쪽)

639년, 돌궐족으로 당의 근위병 출신인 퀴르샤드가 39명의 동료와 함께 당태종을 살해하려다 실패하여 모두 처형됨(자존감 높고 누구의 속박도 받지 않으려는 돌궐인의 자유의지를 볼 수 있다)
24.돌궐의 암흑시대는?(113쪽)

동돌궐과 서돌궐은 각각 당나라에 복속되었다가 동돌궐은 630년에, 서돌궐은 681년에 망한다. 이 기간은 돌궐제국이 주권을 상실하고 내부분열로 사실상 군주가 없는 시절이었다.
25.제2 돌궐 제국사는?(120쪽)
682년, 쿠틀룩 일테리쉬는 제 2돌궐제국의 건국자가 되었다. 이 때 그를 보필한 이가 뛰어난 전략가 돈유쿠크이다. 쿠틀룩이 건국 10년 후 사망하자 그의 동생 카프간 카간이 자리에 올라  당나라를 수시로 공격, 영토를 넓히고 유민을 돌려받았다. 그는 돌궐사에서도 마지막 위대한 정복자로 기억될 만큼끈질기게 중국을 공략했다. 그러나 카프간의 카리스마적 통치 때문에 부족들 중 상당수가 중국에 복속되었다. 결국 그는 돌궐의 부족장에게 머리가 잘려  당황제에게 바쳐진다. 그의 뒤를 이어 건국자의 맏아들 빌게 카간이 등극한다.
동생 퀼티긴과 톤유쿠크의 도움으로 돌궐의 혼란기를 극복하려 하나 돈유쿠크는 724년경에, 퀼티긴은 731년에, 빌게카간은 734년에 독살된다. 제2 돌궐 제국은 744년 역사의 막을 내린다.
이때가 당 현종 때였다.

26.문자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은?:(120쪽)

유라시아 유목민족 처음으로 문자 사용, 룬 문자/오르혼 문자/돌궐 문자로 불림, 제국의 중심지였던 오르혼 강주변 호쇼 차이담 분지에 돌궐문자비문이 있다./"낮에 자지 않고 붉은 피를 쏟으며 검은 땀을 흘리며 봉사하여 갑옷 입은 적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였다.일테리쉬 카간과 나의 획득이 없었다면 나라도 백성도 없었을 것이다."--톤유쿠크 비문
27.비극적인 왕권싸움은 왜 자주 일어나는가?(126쪽)
-왕위승계에 대한 명문 법규정이 없다.
-유목사회는 생산이 없는 약탈에 의존한 경제구조다./심각한 자연재해를 버텨나갈 수 있는 군주가 필요하다./지도자의 사망은 곧 나라의 멸망을 의미할 정도로, 지도자의 능력과 통치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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