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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이야기 3

맑은 바람 2020. 12. 4. 23:04

제 5부 문화 다양성 세계 최강, 오스만 제국(1299~1923)

 

49.오스만 제국을 세운 부족은?  (218쪽)
오구즈족:튀르크계 부족 중 제일 인구가 많음/카이으파의 수장  오스만 베이는 1299년 아나톨리아 셀주크로부터 독립을 선언, 오스만국가를 탄생시킴
50.수도 이전(220쪽)
처음엔 콘스탄티노플을 지척에 둔  부르사를 수도로(1326) 정했다가, 발칸반도 진출을 위해 에디르네로(1362) 수도를 옮김
51.몽골의 후예 티무르와의 전쟁 (220쪽)

1402년 앙카라근처 추부크 평원에서 티무르 군대에 대패, 술탄이 생포됨/바예지드 술탄 1403년 사망, 티무르 1405년 사망
52.역량있는 술탄들(225쪽)
**제 5대 술탄 메흐메드1세-24차례 원정에 나섰고 40여 군데  부상을 입을 만큼 용맹한 투사
**제 6대 무라드2세-문무를 겸함/발칸반도쪽 오스만 영토로 진입한 십자군에  맞서 바르나에서 예니체리 군단과 함께 대승을 거둠,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승리,1448년 2차 코소보 전투에서도 승리, 유럽국가들의 기를 꺾음.
53. 천년수도 콘스탄티노플 정복(226쪽)

오스만은 영토확장의 전략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해상교역을 위해서도 무역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해야 했다.  더구나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 "코스탄티니예는 반드시 정복될 것이다. 그 도시를 정복하는 사령관과 군사들은 얼마나 훌륭한가"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할 대의명분도 충분히 있었다.
/술탄 메흐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포위작전(1453.4.6)-항복권유-불응-대포발사-배 70척이 산을 넘어 골든 혼에 안착-전함에서 공격을-전투개시 54일만에  3중구조의 비잔티움 성벽이 와해되면서 콘스탄티노플 함락-이슬람세계는 환호하고 유럽은 공포에 빠졌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면 아마 배가 산을 넘어 골든 혼으로 가는 장면이 클라이맥스였으리라)
54.새로 태어난 콘스탄티노플(229쪽)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개명/이스탄불을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공포/메흐메드 2세는 '정복자'의 칭호(파티흐)를 얻음/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를 촉발함
55.톱카프 궁전과  오스만 제국의 시작(229쪽)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 혼이 내려다보이는 경사면에 톱카프 궁전 건설(1459-1475)/이후 380년 간 통치의 중심지 역할을 함
56.메흐메드 2세의 국정활동(230쪽)

계속되는 정복사업(200여 개의 도시 정복)과  내부 정비/오스만 제국 최초로 법률제정/형제살해법 제정/술탄과 대신들과의 접촉을 최소화시킴/허례허식  없앰/백성들의 이주정책 활발/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공정한 세금/병력자원 모집 제도 구체화/아나톨리아 동부 원정 중 주치의에게 독살됨(1481)
57.마흐메드 2세의 큰손자 셀림 1세의 활동(234쪽)

9대 술탄으로 9년간 재위/용감하고 빠르고 끈질기며 잔인함/찰드란 평원에서 이란의 사파비 왕조의 군대를 격파하고 타브리즈를 얻음/리다니예 전투에서 맘루크 군대를 격파하고 카이로에 입성, 맘루크 술탄을 처형하여 왕조를 무너뜨림/셀림 1세는 유럽원정 중 탄저열로 사망(1520)*탄저열:소나 양의 전염병인데 사람에게도 전염되어 패혈증을 일으킴
58.제국의 장엄한 술탄 쉴레이만 1세(236쪽)

(터키드라마 '위대한 세기'는 이 인물을 주인공으로 했다. 오스만 제국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게 이 드라마가 계기가 됐다.)
오스만 제국 역대 36대 술탄 중 46년간 재위로 최장수 술탄(1520-1566)/선대 술탄들이 공포한 법령을 한데 모아 정리해서 하나의 통일된  법령제정/이후 300년간 이 법대로 시행/헝가리 원정 중 사망(1566)/그의 부친(셀림1세)이 남겨준 영토의 2배로 영토를 넓힘/오스만 제국의 위상을 정점에 올려놓은 '세기의 제왕'
59.로도스섬(238쪽)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성 요한기사단이 거주(1309~1522)/곡식을 실은  배나 성지 순례 가는 이집트인 약탈/1522년 오스만 제국에 넘어감/로도스 기사단은 스페인령인 몰타로 근거지를 옮김

(해적두목이 국가 지도자의 부름을 받고 해군제독이 되는 시대이니, 기독교신자인 기사단들이 종교가 다른 이슬람사람들의 물건을 빼앗는 일이야~~), (그리운 몰타!)
60.헝가리 원정(239쪽)
1차--1526.8.29 모하치 전투/단 2시간 만에 오스만 제국 군대 완승/헝가리 전역 제국에 병합/부다와 페스트 점령
3차--1532.4.25 쉴레이만과 이브라힘 파샤가 함께 원정에 나섬/헝가리를 우호적인 가신국가로 삼음
61.오스만제국의 해상활동의 주역(243쪽)

하이레딘 바르바로싸(흐즈르)(1478~1546)/술탄 쉴레이만은 지중해의 악명높은 해적 두목을 해군제독에 임명함/지중해 해상권 확보에 크게 기여함/1538.9.28 그리스 프레베자 해상전투에서 신성동맹 연합군함대를 물리침

(정복전쟁 자체가 아이들의 땅따먹기 놀이와 같은 것이고 거기서 살아남느냐 죽느냐도 운명에 맡겨야 하는 파리 목숨들이니--해적을 하루아침에 해군제독을 만들든~~)
62.공동체의 모델, 밀레트 제도(245쪽)

밀레트=자치공동체=종교집단/오스만 제국은 정복을 통해 편입된 다양한 민족에게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자치성을 보장해 주었다/대표적인  집단은 무슬림, 그리스정교도, 아르메니아 그리스교도, 유대교이다.
63. 쉴레이만1세의 아들 셀림2세(246쪽)

쉴레이만 술탄의 사후 셀림2세가 11대 술탄의 자리에 오름/휘렘의 아들/원정에 나가지 않음/1571년, 그리스 서부 해안 레판토에서 유럽연합함대와 싸워 오스만이 대패함/오스만 제국 몰락의 길을 걸음
64.형제살해법에서 새장 카페스로(248쪽)

13대 술탄 메흐메드 3세는 19명의 남자형제를 살해하고 수많은 여자형제들도 죽였다./14대 술탄 아흐메드1세는 형제를 죽이는 대신 궁전내 하렘에 죽을 때까지 가두었다/하렘의 내실은 '새장'이라는 뜻의 '카페스'로 불림/200년 쇠퇴기--11대 셀림 2세~27대 압뒬하미드 1세/하렘의 궁녀들이 정권을 좌지우지함
65.여성들의 섭정시대(249쪽)
대표적인 '발리데 술탄'('술탄의 어머니'를 지칭하는말)--휘렘 술탄, 누르바누 술탄, 쾨셈  술탄/휘렘 술탄은 쉴레이만 1세의 부인이자 셀림 2세의 어머니로, 오스만 제국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한 여성/마히데브란의 아들 무스타파를 계략으로 죽이게 하고, 무스타파를 지지하던 이브라임 파샤도 처형하도록 함.
(**터키드라마  '위대한 세기'의 주인공)
66.오스만 제국이 쇠퇴하게 된 요인은?(251쪽)
1)데브쉬르메 출신의 예니체리의 부패와 관료제의 문란/역대 36명의 술탄 중 절반이 예니체리에 의해 폐위됨
2)예니체리의 방화/개혁 실패
***30대 술탄 마흐무드2세에 의해 1826년에  폐지됨
3)사파비 왕조와의 긴 싸움(1722~1746):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
4) 오스트리아와 13년간 불화, 수시로 접전(258쪽)
5)러시아는 오스만 제국과 가장 많이 전쟁을 한 나라/1774년 오스만 제국은 역사상  가장 타격이 큰 퀴췩 카이나르자 조약을 체결, 크림공국이 독립하고 흑해의 전략적 요충지인 케르치와 아조프를 러시아에 넘겨 주는 등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을 수락했다.
67.튤립시대란?(260쪽)

전쟁을 멀리하고 예술을 부흥시키자는 운동/23대 술탄 아흐메드 3세와 총리대신 네브쉐히들리 다마드 이브라힘 파샤가 주도함/풍요의 상징 튤립정원을 가꿈/인쇄소 개설/소방부대 조직/도서관/동서 문학작품 번역/유럽에 외교사절 파견, 문화교류
68. 쾨프륄뤼 개혁시대:(1656~1683)(262쪽)

19대 술탄 메흐메드 4세 시대 총리대신 쾨프륄뤼는 개혁을 주도하여 국가재정 낭비와 부정지출을 막고 내정을 안정시킴/그의 아들과 그의 사위가 뒤를 이어 개혁정신을 이어나감/잠시동안 쉴레이만 1세 시대의 영광을 회복한 시기
69.그리스 독립과 이집트 문제(265쪽)

슬라브족의 반란과 독립(1878)/그리스 왕국 탄생(1829)-그리스 독립 인정(1832)/이집트 메흐메드 알리의 불복종/이스탄불 턱밑까지 군대를 보내와 위협, 오스만 제국은 속국 이집트에게 머리를 숙임
70.궐하네 칙령(1839.11.3~1876)(268쪽)

궐하네 공원에서 발표/탄지마트=개혁/오스만 제국 내의 모든 백성은 언어, 종교, 민족에 차별없이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개인의 생명과 재산권 및 재판권 보장 등의 내용
71.크림전쟁과 나이팅게일(269쪽)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의 전쟁(1853~1856)/유럽 강대국의 지원으로 오스만 제국이 승리/파리조약으로 종결/ 영국간호사 나이팅게일은 이스탄불의 야전병원에서 초인적인 활동을 함
72.새 정치세력 연합진보위원회 태동(1908~1918)(271쪽)
청년 터키인의 시대 도래/헌법의 부활로 연합진보위는 오스만 제국을 이끌어갈 정당이 되었다.
73.오스만--이탈리아  전쟁과 발칸전쟁(273쪽)

이탈리아의 트리폴리 침공/오스만의 열세 속에 1912년 12월 우쉬평화조약 체결/1912.10 발칸국가들이 동맹하여 오스만제국에 선전포고/1913.6-8 2차발칸전쟁/두 번에 걸친 발칸전쟁으로 오스만 제국은 발칸지역과 에게 해상의 대부분 도서를 상실했다.
74.1차세계대전과 제국의 종말(275쪽)

연합국은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는 세브르조약을 메흐메트 6세 술탄과 체결하였다./그러나 굴욕적인 세브르조약은 후에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독립전쟁으로  이행되지 못하였고, 국민의회 정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아  폐기되었다.
75.무스타파 케말의 터키해방전쟁(277쪽)

1919. 5. 19 시작, 케말은 오스만 조정이 임명한 자신의 군장교직을 사임하고, 국민회의를 주재,
"외세의 압력으로 오스만 국가가 해체될 경우, 튀르크 국민은 단합하여 저항할 것이며, 국가를 구하기 위해 이스탄불 정부가 능력이 안 된다면 임시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국민의 힘과 의지를 따르는 것은  국민회의의 임무"라 명시하였다./임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케말은 앙카라에서 저항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사카리야에서 그리스 군대와  접전, 케말이 크게 이기자 국민의 기대와 사기가 높아짐/1923년 10월 29일  터키공화국이 선포됨/케말은 1대 대통령으로 선출됨
(터키를 여행하는 동안, 곳곳마다 그들의 하늘에서  펄럭이던 대형 국기를 잊을 수 없다.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그들의 자긍심을 보는 것 같아 묘한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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