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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맑은 바람 2021. 1. 29. 23:08

전혜린  에세이/민서출판/2003.9 개정 5쇄/368쪽/읽은 때 2021.1.24~1.29

전혜린(1934~1965)평안남도 순천 출생/경기여중고/서울법대/1955~1959뮌헨대 독문과 졸업 후 귀국/

서울법대ㆍ이대ㆍ성대교수

그 여자는 짧은 생애를 가득한 긴장 속에서 살기 위하여 끊임없는 욕망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누구보다도 가난했다. 그는 하나의 활화산이었다. 이 지상에 살고 간 서른 두 해. 자기의 생을 완전하게 산 여자였다. 가짜가 아닌 생이었다. 생을 열심히 진지하게 살았다. 정말로 유일한 여자였다.
--책머리에 이어령

책머리에 이어령선생과 동생 전채린의 전혜린에 대한 서술은 웬지 거부감이 들었다. 뭔가 '멋진 말'로 포장된 것 같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막상 전혜린의 글을 대하니 이리 명쾌할 수가!

(19쪽)그때 마침 가스등을 켜는 시간이어서 제복 입은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좁은 돌길 양쪽에 서 있는 고풍 그대로의 가스등을 한등 한등 긴 막대기를 사용하면서 켜가고 있었다.(이때가 1955년. 영화 <가스등>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21쪽)그들은 아마 나를 일본인으로 안 모양이었다. 그때만 해도 뮌헨에 한국인이라고는 거의 없었고 더구나 여자는 구경하려 해도 없었을 때니까 아마 그렇게 짐작한 모양이었다.
(22쪽)마음은 몹시 허전했다. 고국에까지 뛰거나 걸어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무서운 심연을 내 마음 속에 열어놓을 줄은 몰랐었다.
(26쪽)뮌헨의 가을:낮이나 밤이나 우울한 회색과 안개비와 백일몽의 연속이었다. 악몽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고 절망적인 '고국까지의 거리감'에 나는 앓고 있었다.
아무것에도 자신이 없었고 막막했고 완전히 고독했던 내가 겪은 뮌헨의 첫가을이 그런데도 가끔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웬일일까?  뮌헨이 그때의 나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인지 또는 내가 뮌헨에 대해 신선한 호기심에 넘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었지,  어딘가에  독서록을 남겼을 텐데 지금은 열어보고 싶지 않다.
글 한 줄 한 줄이 마음에 와 닿는다. 명문이라고 말하기는 그렇고 마음에 쉽게 다가오는 글)
(29쪽)어린 시절 신의주의 풍경:
바다보다 더 넓게  보였던 압록강-어떤 날 나는 부둣가에서 뗏목이 떠내려오는 것을 본 일도 있었다. 집채보다 큰 뗏목에는 수 명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 검붉게 탄 건강한 체구들이었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뗏목이 안 보이게 될 때까지 부둣가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지 전신이 뒤흔들리는 듯한 감동이 내 어린 마음을 찔렀다.
먼 데에 대한 그리움.  어디론지 멀리멀리 미지의 곳으로 가고싶은 충동은 그때부터 내 마음 속에 싹튼 것 같다. 그때부터 내 눈은 실향병의 눈,  슬픈 눈으로 된 것 같다.
어쩌면 내 천성에 유랑민족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는지 모르고 그것이 이국적 도시에서 보낸 유년기로 인해 눈뜨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내 일생을 바치고 싶었다. 자유롭게---
(32쪽)유년기의 의미:객관적으로 짧은,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지루하게 긴  우리의 생에서 그래도 진주빛 광채를 지닌 기간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리라.
어린 시절은 의외의 놀라움, 신비와 호기심, 감동에 넘친 지루하지 않은 한 페이지다. 그리고 우리는 몇 살이 되도 그 장을 펼쳐보고 싶어진다.
(나에게 유년기는? 행복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 속상한 엄마가 어린 동생을 품에 안고 골목길에서 비를 맞으며 서있었고 난 그 옆에서 오들오들 떨던 일, 늘 한강에 빠져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엄마여서 수업 중 복도에 낯선 사람이 기웃거리면 울엄마 죽었다는 소식을 알리러 온 사람인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던 일---)
(42)죽기 나흘 전에 장 아제베도에게 쓴 편지: 나는  왜 이렇게 너를 좋아할까? 비길 수없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겠어.
장 아제베도!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 줘!  정말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그런데 가끔가끔 그 줄이 끊어지려고 히는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나는 미치고 말아.  내 속에 있는 이 악마를 나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있어. 악마를 쫓아줄 사람은 너야. 나를 살게 해 줘.
**장 아제베도는 앙드레 모리악의 <테레즈 데케루>에  나오는 인물
(48쪽)슈바빙:뮌헨 북구의 한 구/원래는 뮌헨의 핵심/슈바빙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자유, 청춘, 모험, 천재, 예술, 사랑, 기지---등이 합쳐진 맛/그들의 테마는 예술이다/위보다는 두뇌가, 환상이 우선하는 곳/이러한 분위기는 대부분이 학생, 화가, 배우, 음악가, 기자,시인 인 슈바빙 주민들에게서 나올 뿐만 아니라 슈바빙을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원인인 수많은 싼 음식점과 댄스홀에서도 풍기고 있다./그곳엔 모든 것으로부터의 '정신의 자유'가 숨쉬고 있다./비독일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이곳에서 자유의 전통을 누린 작가들:릴케, 토마스 만, 울프, 루 살로메, 루드비히토마 등
(63쪽)뮌헨이 맥주의 도시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 수백 년 되는 큰 양조장이 많이 모여 있어서 질적으로 맥주가 우수하다는 이유에서보다도 맥주를 어떤 나그네에게나 맛있게 만드는 뮌헨 사람들의 정다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뮌헨은 어디까지나 시골의 맛을 지니고 있다. 흙냄새가 이스팔트에 밀려 없어지지를 않았고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뮌헨 사람의 따스함과 정다움은 도시의 때에 닦여 없어지지를 않는다.
(전혜린의 글을 읽고는 어찌 뭔헨과 슈바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코로나가 끝나면(?)아무래도 유럽철도 여행을 하며 그녀가 그토록 예찬한 슈바빙을 꼭 가봐야겠다.)
(65쪽)왜 하필 독일?
'우연이지요'라고 대답한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나의 유학의 동기는 막연했고 또 우연의 별의 지배 밑에 놓여 있었던 것 같기만 하다.
(66쪽)언제나 내 입에는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어떤 시인의 싯구절이 떠나지 않았고 갑자기 지평선이 무한대로까지 넓어진 느낌이 났었다.
(71쪽)내게로 온 뮌헨대학의 전통:반 나치의 희생자 후버 총장과 숄남매는, 독재에 대한 반항의식과 학문의 자유, 정신적 자유를 지키려는 뮌헨대학의 전통이 되었다.
(74쪽)뮌헨 대학생의 세계:온갖 물질의 결핍과 가난과 노동, 식사 부족, 수면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 오만한 젊음, 순수한 정신, 촌음을 아끼고  인식에 바쳐지는 정열과 성의, 조금도 외계나 속물과 타협하려고 들지 않는 자기 유지의 노력, 정말로 이러한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팽팽한 세계인 것 같았다.
(106쪽)스물 둘(1955)에 가서 5년간 살아보니:내가 소녀 때부터 공상해 온 나라와는 전연 아무 관련도 없는 나라였다/청소년의 옷차림인 블루진, 밥 먹기보다 좋아하는 재즈, 광적인 가두의 춤, 생각하기 싫어하고 소비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돈을 벌 생각만은 어려서부터 철저히 지니고 있는 아주 비감상적인 현실파가 그들이었다(미국물을 그들은 이미 마셔버렸다)/특수한 재능이나 이상을 지닌 학생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들의  광적일 정도의 공부에의 정열, 온갖 낭비에 대한 극단적인 인색함, 환상적일 정도의 빈곤과 물질생활의 결핍을 침착히 견디고 있는 스토아적 사고방식/그 수많은 희생과 정열과 재능의 불꽃에서 결국 몇 년 만에 하나씩 대학자가 나오게 되며 또 안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108쪽)또 한 번 갈 수 있다면 곧 내가 거닐던 레오폴드 가로 달려가서 와삭와삭 소리를 내는 낙엽을 밟고 학생들과 같이 군밤을 먹으면서 사원같이  높고 어두운 도서관, 또 몇 백 년 내려오는 헌 책방의 싸늘하고 어두운 방, 그리고 북해에서 잡은 진기한 생선이 어항에서 춤추고 있는 시장에 달려가 보련다.
(젊어서 읽을 땐 이런 글들이 그리도 신비스럽기까지 하더니~ 그녀가 더 오래 살아 묵은지 같은 글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155쪽)30세!  무서운 나이!  끔찍한 시간의 축적이다. 어리석음과 광년의 금자탑이다. 여자로서 겪을 수 있는 한의 기쁨의 절정과 괴로움의 극치를 나는 모두 맛보았다. 일순도 김나간 사이다 같이 무미한 순간이라곤 없었다. 팽팽했고 터질 듯 꽉 차 있었다. 괴로움에, 기쁨에 그리고 언제나 나는 꿈꾸고 있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꿈없이는 살 수 없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현실만이 전부라면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무엇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155쪽)30대에 만난 행복: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책이 맘에 들 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생각해 보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햇빛이 금빛으로 사치스럽게 그러나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다는 일,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괴로워하는 일 죽는 일도 다 인생에 의해서 자비롭게 특대를 받고 있는 우선권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무엇일 것 같다. 괴로워할 시간도 자살할 자유도 없는 사람은 햇빛과 한 송이 꽃에 충족한 환희를 맛보고 살아나간다.
하루하루가 마치 보너스처럼 고맙게 느껴진다. 또 하루 무사히 살아넘겼구나 하고 잠들기 전에 생각할 때 몹시 감사하고 싶은 -우주에, 신에-마음이 우러난다. 그리고 나는 행복을  느낀다.

(자살하기 1년 전, 지극히 소시민적인 생활에 만족하는 모습, 그러나 그녀의 실체는 아니었던 모양)
(171쪽)음악은 내 친구:
음악은 알고 듣는 것보다는 모르고 들어서 좋아져야 정말 좋은 음악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즐거운 때나 좀 기분이 우울한 때나 항시 음악을 듣는다. 고전음악이든 현대음악이든 재즈든 간에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또한 알지 못할 무엇에게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근래에 와서 재즈음악이 좋아진 것도 역시 나의 감정변화의 표시라고 보며 너무 고답적이고 알쏭달쏭한 것보다는 긴장감이 없이 마음을 탁 놓고 들을 수 있다는 데서 얻은 내 생활의 한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174쪽)맛은 추억을 가장 많이 내포한다:
뮌헨 중앙시장에서 장봐 온, 고기를 잔뜩 넣은 풋고추 졸임/맥주제 때 사먹은, 꼬챙이에 끼운 청어구이/노점에서 굶주린 배를 채워 주었던, 겨자바른 소시지/헝가리 굴라쉬와 백포도주/피메산 치즈가루를 듬뿍 얹은 스파게티/브뤼셀 뒷골목에서  사 먹었던 고동/주막에서 크림커피와 함께 먹었던 브뤼셀 빵/암스테르담 부둣가에서 먹었던 초절임 날재어/이도지나 요리점의 열두첩(?)반상/뮌헨 레오폴드 가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집의 가지 각색의 아이스크림들/이탈리아커피점의 에스프레소 커피/무섭게 독하고 진하고 쓴 터키 커피--
(178쪽)내가 만약 다시 구라파에 간다면:
나는  우선 커피를 마시겠다. 여기서는 먹을 수 없는 생크림을 잔뜩 넣어서.

내가 만약 뮌헨에 다시 간다면 물론 우선 맥주를 일 리터짜리 족기로 하나, 숨도 안 쉬고 단숨에 마시겠다. 쓰고 향기롭고 입술에 부드러운 호프의 냄새 속에서 나는 나의 잊어버린 이십대를 다시 되찾을 것이다. 
(179쪽)사치의 바벨탑:
(1960년대 여성관을 피력했으니, 2021년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고리타분, 케케묵은 여성관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시대의 여성들이 그 허영과 사치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181쪽)삶에 대한 태도: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우리의 삶을 규명하는 것일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근본적인 생,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
(그녀의 인생관, 교육관, 여성관은 비교적 객관성을  띠나 그녀가 택한 삶의 마침표는 이 모든 생각이 비현실적 사고로 다가온다)
(201쪽)독일주부의 자랑거리:용도에 맞는 가구, 꽃, 장서
(가정적으로 윤택하고, 확실한 정신적 스승인 아버지도 건재하고, 알맞은 때 독일로 건너와 남편이 되어준 남자도 있었는데--그녀는 왜 삶을 접었을까? 이 질문이 계속 따라다닌다, 아~이 못말리는 속물근성!)
(207쪽)나는 지극히 회의하고 있다:결혼생활이 흘러감에 따라 비속화로부터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지켜야 할 만한 생산적이고 객관적 가치가 있는 순수한 무엇이 내 속에 있는지를 나는 지극히 회의하고 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내가 보통대로 결혼해서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내 마음에 귀엽게 비친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뿐이다. 후회는 없다. 물론 자랑거리도 못되지만.
(224쪽)데미안:더 클 수 없는 감동으로 읽었던 책/유년기의 향수 같은 맛/누구나 한번은 미치게 만드는 책/왜 우리는 데미안을 읽고  또 읽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읽어야만 했는가/빌려간 친구의 죽음/겨울이었다. 아마 나는 일생 그 일을 내 뇌리의 어느 구석에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다.
(227쪽)인간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두 세계의 어느 편에도 안 속해 있고 다만 자기자신에만 속해 있는 데미안에게서 그는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의 암시를 막연하게나마 받고 그에게 미칠듯이 열중한다.
(240쪽)결혼의 문제:
린저는 결혼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온갖 결혼생활의 뒤에 허위와  굴욕과 비굴한 습관과 체면과 필연과 정신의 고갈 상태를 찾아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주인공인 니나를 통해서 린저는 결혼이 얼마나 '수지가 안 맞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243쪽)결혼의 전제: 영혼의 해후나 순수한 공감의 순간을 서로 가질 수 있는 사람끼리는 결코 결혼할 수 없고 결혼의 전제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린저가 말하려고 한 것 같다.
지적인 여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 비지성적인 인간들의 자연 그대로 조화되어 있는 탄력과 힘으로 구성된 아름다움과 생을 간단하게 두 손으로 직접 잡을 줄 아는 박력이라는 것을 린저는 강조하고 있다.
(248쪽)니나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그리고 니나는 글을 쓴다는 천직을 매우 중요시한다.
사람과 글을 똑같은 것이라 말하면서 니나는 "내 시가 형식에서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내 속에도 감상성과 싸구려의 경향이 있다고 틀림없이 볼 수 있는 거야. 우리는 자기가 쓴 글과 똑같은 거야."
(249쪽)행복은 어디에: "내 생각으로는 행복은 언제나 우리가 생기를 지니는 데에, 언제나 마치 광인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듯 무슨 일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있는 것 같애. 잘 생각해보면 몹시 불행할 때도 한편으로는 매우 행복했던 것 같애. 고통의 한복판에 아무리 심한 고통도 와닿지 않은 무풍지대가 있어. 그리고 그곳에는 일종의 기쁨이, 아니 승리에 넘친 긍정이 도사리고 있어."
(딸 정화의 나이 6세 때였다, 그녀가 떠난  때는.)
(271쪽)이 세상에서 정화만큼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있으므로 해서 비로소 나에게 자각되는 나의 대질 불가능성과 나의 가치를 생각할 때 한없이 정화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이 일어난다. 나는 정화를 이 세상에 나와서 느껴본 일이 없는 정도의 강한 애정을 가지고 사랑한다.
내가 원하든 안 원하든 나는 언제나 정화를 위해서 걔 곁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마음 속에서부터 영혼의 밑바닥에서부터 원하고 있는 것이다.
(273쪽)번거로운 무의미한 나날이 지속되어 간다. 아무 의미가 없는 지속의 연장이다. 어떤 잘못으로 부조화한 세계 속에 떨어진 것 같은 서먹함을 언제나 느끼면서 살고 있다. 生이라기보다 死에 속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341쪽)동생 채린에게 보낸 편지:
요새 하늘을 보아도 또 바람에 나부끼는 포플러 잎을 보아도 무언지  죽기 바로 전에 보는 것 같은 깊은 감동을 가지고 보게 된다. 만약 내가 죽거든 채린이에게 나의 기념품으로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니체 전집(밥을 굶고 모은 돈 73마르크 주었단다)을 남기겠다. 다른 책과는 달리 이것만은 머리맡의 라디오 밑 선반에 세워두고 밤낮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 책들이 제일 나를 전해 줄 것 같아서 너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영혼이 들어 있다. 나의 영혼들이.

(361쪽)스승 박인수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중:
새해에 들어오니 허망한 느낌이 납니다. 어디론지 떠나고 싶고 미칠 듯한 초조를 누를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꽉 잡고 싶다, 유지하고 싶다, 반복하여 습관화하고 싶다, 이런 고정관념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자기 자신을 어떤 곳에 집착시킬 수 있을 것인데, 어떤 곳이란 결국 이 세상에서의 어느 한 위치이겠지요. 저는 그런 포착하고 유지하고 길들이는 이런 온갖 개념에 혐오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생명이 유동하는 것, 매일매일 변하는 것, 어떤 새로운 것, 습관적인 것인데!  미칠듯한 순간, 세계와 자아가 합일되는 느낌을 주는 찰나, 충만한 가득찬 순간 등 손에 영원히 안 잡히는 것들이 나의 갈망의 대상입니다.

(그녀의 자살은 왜 그리 화제가 되었을까? 
최초의 여자유학생이어서?
서울법대를 다닌 수재여서?
한때 베일에 가려진 양 신비스럽기까지했던 그녀의 夭折--
글 여기저기에 염세적인 문구가  보여 그녀의 삶이 순탄하지 않겠구나 예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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