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지음/박이엽 옮김/창작과비평사/초판1쇄1992.4/개정판1쇄 2002.2.5/읽은 때 2021.2.3~2.6
**서경식(1951~ )일본 교또 출생/와세다대 불문학과 졸업/쁘리모 레비로의 여행(마르코폴로상 수상)/현재 토쿄 케이자이대학 교수
*박이엽(1936~2002)방송작가
--지은이 서경식은 분명 한국인(재일 조선인 2세)이건만 옮긴이가 따로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여의도 50+'에서 손관승선생의 강의 중에 이 책이 소개된 적이 있다.
뭔가 남다른 사연이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는 언질을 받고 잊고 지내다 문득 이 책 제목이 떠올랐다.
알라딘으로 구입하려 책표지를 보았더니 서가에서 본 듯하여 찾아보니 밑줄까지 쳐 있었다.
언제 읽었는지는 물론 기억에 없고 독서기록장에도 없다.
새 책을 읽는 기분으로 다시 펼쳐든다.
미술전공자도 아닌데 11편의 그림을 가지고 책 한 권을 썼다는 게 경이롭다.
그는 각각의 그림을 거울삼아 자신의 삶을 천착해 내고 있다. 가족들로 인한 극심한 고통 가운데, 그야말로 바람이나 쏘이다 오겠다고 나선 길(1983.10~)이 책 한 권을 탄생시킨 셈이다.
모든 삶의 진정한 얼굴은 고통과 고난의 용광로를 거쳐야만 나온다던가.
목차
1.캄비세스왕의 재판
2.수태고지
3.데셰앙스
4.거친 하늘과 밭
5.게르니까
6.모래에 묻히는 개
7. 화가 누이의 초상
8.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9.젊은 부르델의 자화상
10.부인상
11.죽은 연인들
1;캄비세스왕의 재판/헤랄드 다비드 작/17C/벨기에 브뤼주 흐루닝헤 미술관
작가의 부친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었다
2;수태고지/프라 안젤리꼬/이탈리아 피렌체 싼마르코 수도원
(30-31)마리아나 가브리엘이나 모두 부끄러운 듯 살짝 볼을 붉히며 생명의 환희를 나타내고 있다.
이 간결성, 삼가듯 조촐한 아름다움이 프라 안젤리꼬의 수태고지를 다른 많은 수태고지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3;데셰앙스('실추 또는 失寵' 이라는 뜻)/쑤띤(가난한 유대인)/프랑스 아비뇽 까르베 미술관
(49)쑤띤은 1943년 장질환으로 빠리에서 객사한다.
작가는 고향을 등진 자, 조국을 잃은 자의 절통한 심정에 공감한다.
(54)쑤띤의 초상--19세기 테러리스트 같은, 좀처럼 눈물 따위를 찔끔거릴 것 같지 않은.
4;거친 하늘과 밭/고흐 작/프랑스 오베르 쒸르 우아즈(고흐의 무덤이 있다)
(68)테오에게:내 생활은 뿌리가 뽑히고 내 걸음거리도 휘청휘청한다. 나는 내가 너희들의 저주스러운 짐짝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염려하게 되었다.
(69)창조자 ㆍ구도자 ㆍ혁명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 그 채찍의 아픔을 참고 견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짐짝'인 것이다
(작가는, 10년째 국내에서 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하는 두 형을 '짐짝'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5;게르니까/삐까소/스페인 마드리드 쁘라도 미술관/세로350cm, 가로780cm
(87)이 그림의 회색을 기조로 한 단색에 가까운 화면에는 그린 사람의 정신의 거대함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 앞에 서면 오싹오싹 육박해오는 일종의 장엄한 느낌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
1937년 4월 26일 나찌스 독일의 공군은 프랑꼬파를 지원하기 위하여 바스크지방의 소도시 게르니까에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여 시민 수백 명을 학살했다.(희생자가 2000명을 넘는다는 설도 있다)
--삐까소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작 중인 '게르니까'라 이름붙이게 될 작품과 최근의 나의 전작품에서 스페인을 공포와 죽음의 바다에 잠기게 한 군사력에 대한 나의 공포감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89)삐까소는, 마드리드를 점령한 나뽈레옹군의 시민학살을 고발한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쁘린시뻬 삐오 언덕의 총살'의 구도를 빌려, '조선에서의 학살(1951)'을 그렸다.(빠리 삐까소미술관 소장)
굴욕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고, 살육을 당해온 우리 민족은 과연 우리들 자신의 '게르니까'를 산출해 냈는가.
6;모래에 묻히는 개/고야/스페인 마드리드
(110)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개는 나라고 생각했다.
7;화가 누이의 초상/레온 보나/프랑스 바욘느(바스크지역)
(117)그림감상--보면 볼수록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 비슷한 생각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탄산수의 포말같이 솟아나는 것이다.
8;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채색 테라코타상/작자 미상/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 중세조각 코너
9;젊은 부르델의 자화상/에밀 앙뚜아느 부르델 작/프랑스 빠리 부르델 미술관
(159)20대의 나날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을 생각하니 콕콕 가슴이 아팠다
(나의 20대는 대학졸업, 취직, 연애, 결혼, 출산--그리고 20대 끝에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뇌종양---내 인생에 가장 바쁘고 행복하고 힘든 시절이었던 것 같다)
10;부인상/로베르트 캄핀(1375/1380~1444) 작으로 추정/영국 런던 네셔널 갤러리 플랑드르 회화실
빼어나게 빛나 보이는 작은 초상화--손을 대볼수가 있다면 살갗을 통해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 올 것만 같다
(15세기 당시의 서양인의 용모는 지금과 사뭇 다르다. 외까풀 눈에 흑발, 황인종 피부-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의 주인공들도 쌍거풀이 없다. 레온 보나의 '화가 누이의 초상'도 흑발이다. 세익스피어도 외꺼풀에 흑발이었다.
금발에 쌍거풀 진 푸른 눈의 서양인 이미지는 언제부터 형성된 것일까? 아마도 오스만 제국이 수백 년 동안 유럽 전역을 지배하다시피 했으니 그후 아랍인의 용모가 혼합되어 오늘의 서양인이 나온 것이 아닐까?)
11;죽은 연인들/작자 미상/1440~1470년 사이에 제작/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성당 4층에 전시
(꿈에 나올까 두렵다. '연인'의 이미지를 무참히 깨는 제목! 왜 나이 지긋한 이 둘을 '연인'이라고 표현했을까?)
(193)이 그림은 예술로 승화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때문에 이 그림 앞에 서는 일은 결코 예술 감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비길 데 없이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죽음의 이미지'와 맞서는 일인 것이다.
(내가 본 시할머니의 죽음:1980년,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시어머니는 교회에 가시고 시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계셨다.
집에는 나와 시할머니만 있었다. 설겆이를 끝내고 부엌방에 계신 할머니께 물이라도 드리려고 방문을 열었더니 할머니는 고요히 눈을 감고 계셨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얼굴에 개미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할머니를 불러보았다.
흔들어도 보았다. 손에 전해오는 촉감이 섬뜩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놀이터로 시아버지를 부르러 뛰쳐나갔다.
시할머니는 93세로 돌아가신 것이다)
15세기라는 시대에 있어서 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죽음의 사상이 무겁게 짓누르고 강렬한 인상을 지속적으로 부여한 시대는 없었다.
'memento mori'(죽음을 생각하라)의 외침이 삶의 모든 국면에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었다.(호이징가 '중세의 가을')
(190)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대성당이 내 가슴 속에 불러일으키는 것은, 로댕이 말한 '신뢰, 안심, 평화의 기분'과는 정반대의 생각이다. 대성당의 마루나 벽에는 '무수한 뼈가 묻혀 있다.' 그것은 그 자체가 장려하고 그로테스크한 석관이다. 거기에는 劫罰에 대한 두려움, 暗昧한 열광, 피투성이 살육의 기억이 미만해 있다. 이 석관의 탁한 공기가 나를 숨막히게 하고 또한 조용히 비틀거리게 한다. 그리하여 차츰 뚜렷하게 의식되어진 것이지만 이 미칠 것 같은 酩酊感에 나는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194)1348년 흑사병이 전유럽을 휩쓸어 인구의 3/4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 때에 누군가의 입에서 그 큰 재난의 뿌리가 유대인들이 우물 속에 독을 넣은 데 있다고 했다. 유대인 대학살이 마른 숲에 불길 번지듯 번져나갔다.
1349년에는 마침내 이곳 스트라스부르에서 2천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산 채로 불에 태워져 죽었다 한다.
(유대인 탄압의 역사는 길고도 오래다. 유대인 예수는 그를 십자가에 매단 동족의 비극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206)"조선남자들은 으레 아들이 좀 벌어준다 싶으면 일 안 하고 빈둥거려야 되는 줄 안다니까"
지지리도 고생스러운 시집살이를 하신 어머니의 술회였다.
(조선 남자들의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209)지나간 20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움켜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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