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김경미 옮김/시공주니어/412쪽/초판1쇄2002년2월/초판9쇄2003년5월/읽은 때 20210321~ 0327
루시 모드 몽고메리(1874~1942)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 출생/소설가/15세에 시를 발표/기자와 교사를 지냄/빨간 머리 앤은 자전적 소설(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자람)
책은 책을 낳고--
한호림의 <진짜 캐나다이야기> 중에 <빨간 머리 앤>이야기가 나온다.
으레 유럽의 어느 나라 작가가 쓴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캐나다 사람이 쓴 거란다. 캐나다이야기에 잔뜩 부풀어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알라딘중고에서 단돈 5200원에 산 책-그것도 적립포인트를 사용해서 기냥 들고 왔다. 세상에 모든 물가가 다락같이 올라 지갑을 열기가 무서운 시절에 이 책의 가격이라니~
5200원이면 한끼 밥값으로도 택도 없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4100원이니 그와 맞바꿀만한~?
책은 또 어찌 이리 기품이 있나.
꼭 가죽장정을 한 것 같은 차분하고 고상한 진녹색의 표지다.
내용은 안 봐도 만족도 90%다.
이 글의 저자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고 감동을 받아 이 소설을 쓴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찰스 디킨스(1812~1870) 올리버 트위스트
--꿈꾸는 소녀 이야기--
앤의 비밀:불행한 현실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행복한 상상을 한다.
그러면 기분도 밝아지고 정말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극적 사고방식>, <무지개의 원리> 같은 책을 읽었어도 행복한 상상, 쉽지 않다.
왜 틈만 생기면 걱정거리, 원망거리가 파고드는지~오래된 악습이지 싶다.
1900년초만 하더라도 고아원 아이들은 일손을 돕는 존재로 개인 집으로 입양이 되었던 모양--우리나라도 생활이 어려운 집 아이를 데려다 식모로 부리고 돈 좀 있는 집으로 팔다시피 보낸 부모들도 있지 않았던가?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해외로 입양간 아이들의 삶이 그와 같지 않았을까?
앤은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요정같이 끊임없이 재잘댄다.
제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을 -그걸 듣고 있노라면 나도 앤의 친구가 되어 같이 호흡하고 공감하게 된다.
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앤과 우리집의 6살짜리 큰손녀를 오버랩시키게 된다.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므로~
(125)저 애는 말예요, 인색하지 않아 참 다행이예요. 전 아이들이 인색하게 구는 걸 가장 싫어하잖아요. 나 참, 저 애가 온 지 겨우 3주밖에 안 됐는데 꼭 항상 여기 있었던 것만 같아요. 이 집에 저 애가 없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애를 데리고 있자던 오라버니 말을 듣기 잘했다 싶어요. 저 애가 점점 좋아져요.-마릴라
(초록지붕의 주인인 매슈와 마릴라는 남매지간으로 둘다 나이든 독신이다. 이곳에 종달새같은 앤이 찾아들었으니 얼마나 활기가 넘치겠는가?)
(144)저 애는 어떤 점은 이해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지금까지 잘 자라주었다고 믿어요. 또 한가지 확실한 건 저 애가 있는 집은 절대 지루할 리가 없다는 거예요.
(158)아이들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얼마나 가당찮고 혐오스러운가! 말끝마다 교육적이고 도덕적인 걸 염두에 두는 마릴라 아주머니, 푼수없이 솔직해서 아이들 가슴에 못을 박는 린드 부인, 만만한 아이들에게만 질문을 퍼부어대는 주일학교 로저슨 선생님, 특히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보다 괴로운 추억으로 떠오르는 학교 선생님들--앤의 필립스 선생님은 그 중 하나였다. 그 어른들의 모습에 내가 있다.
(169)감미로운 가을 햇빛도 그곳을 떠나기 싫은 듯 따사롭게 머물러 있었다.
(207)아이들이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고 또 토론클럽이라는 것이 있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각자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여 성장기를 추억으로 채울 수 있으니, 우리의 교육현실 속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딱하고 안타깝다.
앤이 '모든 순간을 사랑하고 즐기는 자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고, 고아의 신분이라는 그녀의 처지는 결코 행불행을 죄우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면 늘 긍정적인 '상상'에 몸과 마음을 맡겨 스스로의 행복을 건져올렸기 때문이다.
(208)해가 지는 모습은 너무나 장엄했다. 세인트 로렌스만의 눈덮인 언덕과 검푸른 바닷물은 진주와 사파이어로 만든 커다란 술잔에 포도주와 맥주가 찰찰 넘쳐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나무 요정들의 유쾌한 도란거림인듯 딸랑거리는 썰매방울 소리와 아련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쳐 왔다.
(241)차분하게 받아들이려면 앤은 천성을 바꾸어야 하리라. 온통 '영혼이고 불이고 이슬' 같은 앤에게는 삶의 기쁨과 고통이 세 배는 더 진하게 느껴졌다. 마릴라는 가능한 한 앤이 평온하고 한결같은 성질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자기 임무라고 생각했지만 한줄기 얕은 시냇물 위에서 춤추는 햇빛을 훈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앤한테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55-256)앤은 새로 오신 선생님이 진실하고 유익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스테이시 선생님은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이들의 가장 좋은 장점을 찾아내주는 훌륭한 재주를 가진 밝고 동정심 많은 젊은 아가씨였다.(적어도 써니의 20대에는 그런 이상을 품고 실현하며 살았으리라 생각된다)
앤은 스테이시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꽃처럼 활짝 피어났고 집에 돌아가서는 호의적인 매쉬와 비판적인 마릴라에게 학교생활과 목표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했다.
(291)검은 머리에 대한 호감:그 염색약은 어떤 머리라도 아름다운 검은 머리로 만들 수 있고 물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어요.(금발이나 블론드가 아닌 흑발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다니! 우리가 지닌 검은 머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292)(염색을 잘못해서 초록머리가 된 앤이 절망 속에서도 시를 읊조리는 모습이라니! 앤이야말로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묘약을 지닌 아이임에 틀림없다.)
(294)누굴 용서해 줄 때는 고결한 기분이 들잖아요. 그렇죠? 앞으로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제 모든 힘을 다 쏟을 거예요. 절대 예뻐지려고 노력하지는 않겠어요. 물론 착한 게 훨씬 낮죠. 그렇다는 건 알지만 가끔씩 아는 것을 믿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전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기준으로, 좋은 영화는 보는 내내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하고 가끔은 눈물도 나게 하는 그런 것이다.
좋은 소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앤은 우리 모두에게 환희를 느끼게 한다. 가끔씩 툭툭 던지는 매슈의 말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313)다이애나의 조세핀 할머니 댁을 방문한 앤의 소감:
벨벳 양탄자, 실크커튼! 다이애나, 난 이런 걸 꿈꿨어. 근데 전혀 편안하지가 않아. 그런 기분 알겠니? 여긴 갖가지 물건들이 너무나 많고 전부 다 근사해서 더 이상 상상할 게 없어. 이럴 땐 가난하다는 게 위로가 돼. 상상할 거리가 훨씬 많으니까 말야.
(315)약속하신 대로 배리 할머니는 우릴 손님방에 재워 주셨어요. 무척 아름다운 방이었어요. 하지만 손님방에서 자는 게 제가 늘 상상하던 것 같지는 않았어요. 큰다는 건 그래서 나빠요(앤은 14살, 초록지붕집으로 온 지 3년이 흘렀다)
어렸을 때 그렇게 하고싶던 일도 막상 하게 되면 생각했던 것만큼 신나지 않거든요.
(331)앤에게는 하루하루가 일 년이라는 목걸이를 만드는 황금구슬처럼 미끄러져 지나갔다. 앤은 매사가 흥미로웠고 열심히 했으며 행복을 느꼈다.
(335)난 다이애나 배리나 루비 길리스처럼 생기 있고 혈색 좋은 아이들이 좋아요. 루비 길리스는 정말 예쁘더군요. 근데 왜 그런지 나도 모르지만 앤이 그애들과 같이 서 있으면 앤이 그애들보다 예쁘지 않은데도 다른 아이들은 지나치게 꾸민 듯하고 평범해 보여요.그래서 앤이 수선화라고 부르는 하얀 6월 백합들이 꼭 커다란 붉은 작약옆에 피어 있는 것 같다니까요.--린드 부인의 말
(382)앤은 창턱에 팔꿈치를 괴고부드러운 빰을 깍지 낀 두 손 위에 얹은 채 꿈꾸는 듯한 눈으로 멍하니 도시의 지붕과 뾰족탑을 지나 해가 지는 장엄하고 둥근 하늘을 바라보면서, 젊음의 낙천성으로 만든 황금실로 미래의가능성에 대한 꿈을 엮고 있었다. 해마다 약속의 장미가 불후의 화관으로 엮어져 가는 다가올 세월 속에 장미빛으로 숨어있는 그 미래의 가능성들은 모두 앤의 것이었다.
(410)마지막 문장:
퀸스에서 돌아온 다음날 밤 그 창가에 앉아있던 이후로 앤의 시야는 좁아졌다. 하지만 앤은 자기발 앞에 놓인 길이 좁다고 해도 그 길을 따라 잔잔한 행복의 꽃이 필 것이란 걸 알았다. 성실한 노력과 값진 포부와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다는 기쁨은 앤의 것이 될 테고 그 어떤 것도 앤의 천부적인 상상력과 꿈 속의 이상세계를 앗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다!
"하느님은 천국에 계시고 세상은 공평하도다."
앤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매슈는 그의 재산 전부가 들어 있는 은행 파산 소식의 충격으로 갑자기 죽고, 마릴라는 시력에 문제가 생겨 머지않아 실명할 처지에 초록지붕집을 처분할 생각이다.
대학교 전액장학금까지 약속된 앤이지만 이 상황에 앤은 결심한다. 이곳 에이번 리에 남아 학교선생님을 하면서 마릴라와 초록지붕집을 지키겠다고.
이때 5년 동안 한 번도 맘(앤에 대한 관심과 우정)을 바꾸지 않고 있던 길버트가 앤을 위해 에이번리 학교를 양보해 줌으로써 둘은 진심으로 화해한다.
아, 참으로 아름다운 결말이다, 멋지다, 길버트와 앤!)
'책 ·영화 ·강연 이야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0) | 2021.04.06 |
---|---|
노인과 바다 (0) | 2021.03.30 |
중국, 당당한 실리의 나라 (0) | 2021.03.21 |
공방전ㆍ국순전ㆍ국선생전 외 (0) | 2021.03.14 |
한호림의 진짜 캐나다 이야기 (0) | 2021.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