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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

맑은 바람 2021. 4. 15. 00:42

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초상화:사람들은 그 그림이 모델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에는 그녀가 그 그림을 닮을 거니까요.라고 피카소가 말했다.

 

거트루드 스타인 지음/윤은호 옮김
도서출판 율/427쪽/초판 1쇄 2017.9/읽은 때 2021.4.6~4.15

이름도 금시초문인 '거트루드 스타인'--얼마 전 <노인과 바다>를 읽고 헤밍웨이 소개 부분에서 처음 들은 이름, 거트루드-그녀는 헤밍웨이 파리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한 인물로 소개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인물인 듯하다.
2014년 9월 <예술가의 지도>라는 책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그녀는 막상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 그녀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동거인(?) 앨리스 토클라스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 흥미롭다. 실제로 나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 못지않게 배우자나 자식에 대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앨리스 토클라스(1877~1967)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온 폴란드 유대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유년 시절에는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다양한 교양교육을 받았다./190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서 거트루드 스타인과 1946년까지 보스턴식 결혼(독신인 두 여성이 결혼한 남녀와 다름없이 한 집에서 정신적인 의지를 하며 사는 형태)으로 살았다/그녀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작품 속 뮤즈이자 비평가, 비서, 모든 내밀함을 다 들어주는 대화상대자이며 요리사이자 출판 발행인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곁에서 지지하며 지켜본 증인이었다.

**(421)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
미국에 이민 온 독일계 유대인/ 펜실베이니아 앨러게니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근교인 뇌유쉬르센에 있는 미국병원에서 72세에 죽음/그녀는 시인, 작가, 극작가, 번역가 및 예술품 수집가로 불리며 또한 매우 중요한 미국의 여성주의자이다. 20세기 초반 야수파와 입체주의 화가들을 누구보다 앞서 높이 인정하며 격려한 점과, 청년작가들에게는 '잃어버린 세대'라고 신랄한 비평을 서슴지 않으면서 엄격한 습작훈련을 요구했던 그녀야말로 유럽의 문단과 화단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대모였다고 말할 수 있다./작품으로는 처녀작 '세 인생' 외에 ,'미국인의 형성'이 있다.

제1장 나의 파리 도착 이전

(13-14)나는 평생 딱 세 번만 천재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내 귀에는 종소리가 들렸고 내가 결코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세 명의 천재는 즉,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였다. 이렇게 하여 나의 활기찬 새 인생이 시작되었다.

(거트루드는 자신을 천재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제2장 나의 파리 도착
(31)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초상화:사람들은 그 그림이 모델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에는 그녀가 그 그림을 닮을 거니까요.라고 피카소가 말했다.
(52)*모리스 프랑세와 알리스의 결혼/드랭의 등장/드랭과 알리스의 열애/알리스 이혼/드랭과 알리스의 행복한 결혼생활
*스페인 여인 제르멘 피초트와 화가 피초트는 부부
--막스 자코브:(1876~1944)프랑스시인 소설가, 화가  피카소의 절친 중 하나. 아우슈비츠로 이송을 앞두고 수용소에서 죽음
(19세기 초의 파리 예술계 사람들이 대거 등장, 어수선해서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한 사람의 전기라기보다는  한 시대의 파리 예술계의 모자이크  같다. )

제 3장 파리의 거트루드 스타인(1903~1907)
(69)거트루드 남매가 볼라르 화상에게서 고갱, 세잔 등의 작품을 구입/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도 사들였다./피카소의 작품으로는 '빨간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소녀'를 구입했다(1905년작, 150프랑)
(89)레이몬 덩컨:

이사도라 덩컨의 오빠/현대무용가/거트루드의 플뢰뤼스가 27번지에  작업실을 얻음
(91)앙리 피에르 로쉐:(1879~1959)

프랑스의 화가, 미술수집가, 비평가, 작가 /후에 영화로 만들어진 <두 영국 여인과 대륙> 등이 있다/거트루드네 집에 드나듦/로쉐는 참 좋은 사람이지만 한낱 번역자에 지나지 않는다--피카소/
(92-99)피카소:(1881~1973)
로쉐를 통해 피카소를 소개받고 피카소는 거트루드의 초상화를 그린다(1905)/거트루드는 초상화를 위해 90번의 모델을 섰다./거의 매일 오후에 거트루드는 피카소의 모델을 서기 위하여 몽마르트르로 갔으며 걸어서 파리 중심부를 지나 플뢰뤼스 가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하여 그녀에게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 습관이 생겨났는데 그때는 혼자서, 지금은 개를 데리고 파리를 오랫동안 산책하는 것이었다. 토요일 저녁마다 그녀와 식사를 하기 위해서 피카소 커플은 플뢰뤼스 가에 왔고 식사를 했으며 그리고 토요일밤 모임이 있었다./플뢰뤼스 가에 단골 손님이 된 피카소
(100)거트루드의 문장들은 정확함과 엄격함, 관점에서의 다양함의 의도적 부재, 잠재의식에 이용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그녀는 묘하게도 바흐의 푸가에 비견될 수 있는 균형에 도달한 것이다.--마르셀 브리옹(프랑스 소설가, 수필가, 예술평론가)
(102)겨울이 지나갔다. <세 인생>은 탈고가 되었다. 거트루드는 올케에게 와서 그것을 읽어봐 달라고 간청했다. 그녀는 그렇게 했고 그 작품에 깊은 감동을 하였다. 그 사실에 거트루드는 한없이 기뻤고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가 쓴 글을 읽고 관심을 보일 줄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 당시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이 쓴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묻지 않았지만 읽고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예외였다. 읽기만 한다면 결국은 좋아하게 될 터라고 지금 그녀는 말한다.
(109)그 해 여름에 거트루드는 위대한 작품인 <미국인의 형성>을 쓰기 시작했다.
(111)작은 투우사처럼  무리를 이끌었던 피카소:건장한 네 명의 척탄병(드랭, 브라크, 기욤 아폴리네르, 살몽)을 대동한 나폴레옹(피카소) 같다--거트루드의 말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천재적 인물/1차대전 때 머리에 부상을 입은 데다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종전 직전에 죽었다
(116)마리 로랑생:(1883~1956)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독일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함/에릭 사티와 교제/
(122)마티스와 피카소:

거트루드 덕분에 서로 친구가 됨/마티스는 자신의 작품들을 모든 살롱도톤과 모든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다. 그의 화파 추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반대로 피카소는 평생 그 어떤 살롱전에도 출품한 적이 없었다. 그 시절 그의 그림들은 실제로 플뢰리스 가에서만 볼 수 있었다./마티스는 앵발리드 대로에 대저택을 빌려 이사한 후에 '마티스 미술수업'을 시작했다

 

제4장 내가 파리에 도착하기 전의 거트루드 스타인
(138)이 시기에 그녀의 탐독습관이 생겨난 것이다. 그녀는 인쇄된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마치 해치워버릴 듯이 읽어나갔다. 집안에는 몇 권의 소설과 여행 서적들이 있었으며 그녀의 어머니가 정성껏 묶어둔 워즈워드의 작품 한 권과 스콧과 또 다른 시인들, 번연의 천로역정, 주석이 달린 셰익스피어전집과 번즈, 의회보고서, 백과사전 등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모두 여러 번씩 읽었다.
(139)그녀는 지금도 전처럼 늘 책'을 읽는다. 그녀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전부 다 읽었고, 지금도 책을 읽고 있을 때 방해를 받으면 몹시 싫어하며, 또 한 권의 책을 아무리 여러 번 읽었어도 사람들이 끝머리를 미리 말해 주거나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비웃는 걸 참지 못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책이란 언제나 현실적이었다.
(152)그녀는 존 홉킨스 의과대학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끝내 졸업하지 못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 한가운데 플뢰리스 가가 있다. 그  중심에 거트루드 스타인이 있었다.
그녀는 많은 그림들을 사들였고 그들 신진 화가들과 가까워졌다.)

제5장  1907~1914년 사이
(159)나는 매주 토요일 저녁에 플뢰리스 가에  갔으며 대부분 같이 지냈다. 나는 거트루드의 <세 인생> 원고 교정을 도왔으며 <미국인의 형성>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페르낭드는 내가 얘기를 나누었던, 천재의 첫 번째 여인이었다.
(163)거트루드 스타인이 아시시에 간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성프란체스코와 그의 아름다운 도시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시시의 언덕 위로 염소 한 마리 대신에  작은 돼지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노파들 때문이었다. 새까맣고 작은 돼지는 빨간 리본을 달고 있었다.--거트루드는 늘 돼지들을 좋아했고 그런 이유로 피카소는 그녀에게, 돼지들 가운데서 총애받는 탕아의 멋진 데생을 그려주곤 했다.
(184)앙리 루소:(1844~1910)
세관원 루소로 불린다./독학으로 그림을 배웠으나 평생 궁핍에 시달림/초현실주의 화가들에 영향을 줌/바이올린 연주를 즐김/희곡 여러 편을 씀
(211)밀드러드 올드리치(여):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는 오십대 초반이었고 건장하고 활동적이며 흰 머리와 깨끗한 옷과 장갑 차림으로 마치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모든 일에 충실하고 섬세함/얘기를 재미있게 함(이 두 가지만으로도 인생은 풍요로울 것 같다)/거트루드를 무척 좋아했고 엄청나게 관심을 가졌다.
(막상 전기의 주인공 앨리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건만, 굳이 '앨리스 자서전'이라 하고 거트루드 자신의 이야기만 소상히 쓴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숱한 예술가들이 명멸하며 사라진다. 화려한 장식으로 덮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듯한 느낌)
(237)내가 본 세 명의 위대한 무용수는 아르젠티나, 이사도라 덩컨 그리고 니진스키였다.

제6장 전쟁(1차 대전)
(251)세 번째  만난 화이트헤드 박사:

런던대학/저서<수학의  원리>(러셀과 공저)/세상에서 가장 유순하면서 가장 겸허하게 자비로운 존재였고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았으며  그 어떤 누구라도 명석한 사람이면 놀랄만큼 존중해 주었다.
(거트루드가 교제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당시 상류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제나 그때나 책이 아니었더라면 다가서기 어려운 부류들~)
(256)에블린 화이트헤드는 전시 봉사를 위한 준비와 누구라도 도와주기 위해 무척이나 바빴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제 자식 군면제에 혈안이 되고 먼저 재산 빼돌려 놓고 비행기 타는 어느 나라의 족속들과 비교된다. 생활수준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정신세계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소위 고등교육 받았다는 사람들도 아파트 이야기가 나오면 입으로는 실용성이나 아름다움을 논하면서도 머리로는 얼마짜린가를 계산한다.

너나 내나 누구랄 것 없이 돈의 노예가 된 우리 자신이 속물스럽고 환멸을 느낀다.)

 

(287)에릭사티:(1866~1925)

노르망디 출신 음악가/그의 연주를 듣고 거트루드는 에릭사티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마리 로랑생, 브라크도 노르망디 출신
(291)피카소와 장 콕토:

우아하고 호리호리한 청년 장은 피카소와 함께 거트루드에게  왔다/피카소는 장 콕토가 각본을 쓰고 사티가 음악을 담당한  러시아  발레 작품을 위한 무대설치를 하게 된 것에 몹시도 흥분해 있었다.
(294-295)거트루드 스타인의 능력(?):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도록 만드는, 거트루드의 이런 능력은 우리 구호단의 자동차를 모는 다른 운전자들한테는 신기하게만 여겨졌다./거트루드가 말하기를  다른 여인들은 자기들을 도와주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자기는 스스로 문제점을 잘 파악하지 못하지만, 무척이나 유머가 많고 민주적이어서 그 누구도 편견없이 동등하게 대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바를 모두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또한, 중요한 점은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거랍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사람들은 도와주려고 애를 쓸 거예요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92)프랑스 부상병들을 위한 미국 구호단 대표로 활동:
거트루드와 앨리스는 차를 한 대 구해 미국구호단에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들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인증훈장'을 받았다.
(315)'프랑스부상병들을 위한 미국 구호단'은 신생아들을 위한 덧신, 아기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털양말과 속옷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이불 한 벌씩을 나누어 주었다. 신생아들을 위한 덧신 뭉텅이가 사실은, 얼마 전에 막둥이를 출산한 윌슨 부인이 우리에게 보내주자는 제의를 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신생아용 덧신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으나 알자스를 위해서는 충분치가 않았다.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태어나는 아가들~평온한 이 땅에서도 이제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점차 듣기 어려워지는 걸 생각하면 그 시절이 사람사는 것 같았겠다)

제7장 전쟁 이후(1919~1932년 사이)
(326)실비아 비치와의 만남:

늘 책에 굶주렸던 거트루드는 실비아가 운영하는 영어도서  대여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334)에즈라파운드도 거트루드의 집을 방문했으며 그의 덕에 TS엘리엇을 알게 되었다.
(350)거트루드의 작품관:

거트루드는 작품 속에서 현실의 내면이나 외면의 묘사 속의 정확함을 위한 지적 열정에 지배되었다. 그녀는 이 집중력 덕분에 단순함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시나 산문에 있어서 감정의 조합을 배제하는 게 가능했다. 그녀는 아름다움이라든가 음악, 장식은 감정의 결과일 뿐이어서 그것이 절대로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되며 시나 산문을 만들어내는 소재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고 했다. 시나 산문은 현실의 내면이나 외면의 정확한 재생산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거트루드에게 있어서 필요성은 지적이고, 정확성을 위한 순수한 정열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종종 그의 작품들은 수학자들에 비유되며 어느 프랑스 비평가는 그녀를 음악가 바흐에 비유하기도했다.
(352-359)헤밍웨이의 출현:

23세의 잘생긴 청년/그는 이상하고도 분위기 좋은 구역에 있는 아파트와 좋은 하녀와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는데는 아주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그와 거투르드는 함께 끝도 없이 수다를 떨면서 산책하는 습관이 생겼다./거트루드는 헤밍웨이 에게 신문사 일을 그만두고 글쓰는 일에 전념하라고 했다./헤밍웨이는 얼마 뒤 그렇게 했다/초고 교정은 먼지를 떨어내는 것과 흡사해서 대충 읽었을 때는 알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가르쳐 준다. 그 초고들을 교정하면서 헤밍웨이는 많은 것을 배웠으며 자기가 얻은 그 모든 것에 감탄했다./헤밍웨이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361)피츠제럴드:

거트루드는, '낙원의 이쪽','위대한 개츠비'야말로 진정으로 새로운 세대의 대중들을 위해 태어난 작품이라 말했다.
(386)거트루드의 강연:

그녀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서 문학강연을 했고 옥스퍼드 강연 후에 한  청중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었던 날 이후 가장 큰 지적인 감동을 받았다"
(400)베르나르 파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지성은 피카소, 거투르드 스타인, 앙드레 지드다"
(403)거트루드와 특별히 우정이 도타웠던 4인:베르나르 파이, 피카소, 마티스, 후안 그리스
(410)거트루드는 출판인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서전 쓰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앨리스를 독려했으나 앨리스야말로 하는 일이 많아 도저히 불가능함을 알고 거트루드가 앨리스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얘기를 쓴 것이다.
"거트루드 스타인과 함께한 나의 인생 25년"

(기대했던 헤밍웨이에 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파리 예술가 살롱의 여주인 거트루드의 이야기일 뿐이다.

중간중간에 책장을 덮고 싶을 만큼 내용이 지리멸렬한 때도 있었지만 마침내 427쪽에 달하는 분량을 다 읽어냈다.

그러나 거트루드의 작품에 또 손을 댈 것 같지는 않다.

책의 말미 역자의 말에, 거트루드의 '심술과 好不好'에 의해 객관적 기록이 소홀한 면이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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