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꼭 읽어야 할 박완서의 문학상 수상작
박완서/도서출판 푸르매/2006.6 1판1쇄/2007.5 1판7쇄/271쪽/읽은 때 20210905~0909
박완서(1931~2011.1.22)향년 80세/경기도 개풍/숙명여고/6.25로 서울대국문과 중퇴/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 당선, 작품활동 시작
(대한민국엔 문학상이 20여 개나 된다. 작가는 이 가운데 굵직굵직한 상 10여 개를 휩쓸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녀를 '거목'으로 보지 않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는 아줌마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녀의 너무나도 편안한, '국민아줌마'같은 인상 때문일까? 한번 깊이 천착해 볼 일이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작)
돌팔이 산부인과 여의사/철물점 주인이자 병원 건물주 황씨 아저씨/피난지에서 겁탈 당하고 돌아와 아들을 낳은 황씨 딸/황씨의 외손자는 업둥이로 둔갑을 해서 만득이라는 이름을 얻고, 딸은 재취로 들어가고 만득이도 어디서 만삭의 여자를 데리고 들어온다. 어느 한 사람도 정상(?)으로 살지 못했던 전쟁 직후의 사람들살이--
(굳이 양지를 바라보지 않고 그늘만 보며 툴툴거리는 황영감은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군상의 하나다. )
(53)(임신 중절과 창녀들의 성병치료로 30년 동안 거금을 모으고 이제 병원 폐업을 이틀 앞둔 돌팔이 산부인과 의사는 생각한다.)
홀로 사는 여자보다는 더불어 사는 여자가 아름답다고. 더불어 살되 아들딸 가리지 말고 둘만 낳는답시고 소파를 열두 번도 넘어 했으되 그래도 아들 딸이 서넛은 되는 여자가 훨씬 더 아름답다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서방이 수없이 있으면서도 평생에 연애 한 번 해 보기가 소원인 창녀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도망간 창녀가 죽자 사자 연애하던 남자를 따라갔대서 찾지 않기로 마음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포주라고. 마치 고정관념을 허물어 거꾸로 쌓듯이 그렇게 생각했다.
(한 소녀에게서 적출한 아이를 살려서 길러보겠다는 그녀의 뒤늦은 헛된 욕망은 물거품이 되고 --)
<엄마의 말뚝2>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74-75)나는 그 섬뜩함 자체를 사랑했다. 그 섬뜩함은 일순 무의미한 진구렁의 퇴적에 불과한 나의 일상, 내가 주인인 나의 살림의 해묵은 먼지를 깜짝 놀라도록 아름답고 생기있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비록 일순의 착각에 불과한 것이더라도 권태가 행복처럼 먼지가 금가루처럼 빛나는 게 어찌 즐겁지 않으랴. 뜻밖의 삶의 축복이었다.
(79)평소 나에게 있어서 자유란 나뭇가지 끝에 걸린 별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딸 수 있을 것 같아 나무를 기어올라가 봤댔자 허사였다. 올라갈수록 별은 멀고 돌아갈 수 있는 땅 역시 멀어져서 얻어가질 수 있는 것은 위기의식밖에 없었다.
평소의 그런 감정이 술주정 비슷한 품위없는 방법으로나마 자유를 향유코자 했음직하다. 앵두술은 달콤하고 영롱하고 아름다웠고 주정은 향기롭고 순도 높아서 나를 온종일 유쾌하고 황홀하게 했다.
(128)오빠의 살은 연기가 되고 뼈는 한 줌의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는 앞장서서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우린 묵묵히 뒤따랐다. 강화도에서 내린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멀리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 섰다. 그리고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해 그 한 줌의 먼지를 훨훨 날렸다./어머니의 모습엔 운명에 순종하고 한을 지긋이 품고 삭이는 약하고 다소곳한 여자 티는 조금도 없었다. 방금 출전하려는 용사처럼 씩씩하고 도전적이었다.
(120)현저동: 서대문구 현저동/지금 독립문 자리/영천시장이 가까움
(굳이 낯선 단어를 끌어들이지 않고 주변에 널려있는 친숙한 언어와 일상에서 아줌마들이 주고받는 말들로 이루어져 자칫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집요하게 고발하려는 전쟁의 참화 뒤에 고통 받고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 앞에 할 말을 잃는다.
그녀의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나 보다.)
<꿈꾸는 인큐베이터>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134)동생네 아이 봐 주기:온종일 뼛골 빠지게 애를 봐 주고 나서도 좋은 소리 듣기를 고대하긴 어려웠다. 맡겼던 보물단지를 찾아가기 전에 혹시라도 없어진 거나 달라진 게 없나 점검하듯이 아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안아보고, 냄새까지 맡아보고 나서 하루 동안에 홀쭉하고 꾀죄죄해졌다는 소리나 하기 십상이었다.
(아이를 돌봐주는 조부모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공없는 소리를 듣게 마련/하루 종일 아이 뒤쫓아다니며 사이사이 설겆이, 빨래, 청소까지 하면서 하루가 어떻게 저물었는지도 모르는데, 지어미는 들이닥치자마자 아이의 젖은 엉덩이를 만져보고
"많이 쌌네, 기저귀 갈자"
하는 말로 봐준 사람의 하루를 무로 돌리기 일쑤다.)
(138)시간에도 가속이 붙는 걸까. 스쳐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 빨리 옛날이 된다.
(박완서의 글은 그냥 수다떠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긴장감을 주며 뒷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해진다.
작가의 매력일까?)
(172)차들의 소음 저 밑바닥을 강바람 소리가 계면조의 퉁소소리처럼 구슬프게 깔려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깊이 모를 나락으로 투신하듯이 곧장 그 소리를 향해 침잠한다.
(182-184)인큐베이터 속에서 내 아기가 꼼실대고 있었다. 손가락만한 아가였다. '너는 엄지 아가씨로구나 가엾어라.불면 날아가게 생겼네.' 인큐베이터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누가 훔쳐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꾸만 졸음이 와서 허벅지를 꼬집었다./태아는 소파수술로 제거하기에 적당한 날짜가 지나 좀 어려운 수술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나는 하염없는 마음으로 내가 인큐베이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수락했다./시어머니가 달여 바친 보약의 효험이었던지 다음 임신이 빨리 되고 다시 양수검사를 받았다. 또 딸이더라도 소파수술을 거부해서 그들에게 나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뜨겁고 야무진 각오로 그 지겨운 검사에 다시 임했던 건데 아들이라고 했다. 낳기도 전에 축하를 받고 위함을 받았다.
(185)친정 어머니는 남편이란 머리에 인 임과 같은 것이라는 소리를 자주 했었다. 나는 내가 본 어머니 아버지의 부부관계로 미루어 그 소리를 남편은 아내를 어떡하든 찍어누르고 머리 위에 군림하려는 존재라는 뜻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런 뜻도 있겠지만 거기 덧붙여 그 찍어누르는 존재에 의해서만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는 여자 팔자를 빗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어머니다운 발상이었다.
**임:머리 위에 인 물건
(남존여비사상(?)이 골수에 박힌 어머니와 그 사상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딸의 이야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전화기를 통해 완전히 일방적으로, 청산유수로 지껄이는 아랫동서. 설정이 재미 있다. 역시, 어느날 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 아들 얘기)
수다의 클라이맥스--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207-208)전에는 형체가 있어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그후엔 아니었어요. 눈에 안 보이는 걸 온종일 쫓을 적도 있어요./장미꽃과 향기/장미꽃은 저기 있는데 향기는 온 방 안에 있다/물건은 분명히 하난데 두 가지 방법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문제에 며칠 동안 몰입할 수가 있었죠.
소꼬리와 탄 냄새/숯댕이는 즉시 없앴지만 고약한 냄새는 달포도 넘어가더라구요
(209)걔가, 생때같은 내 아들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어요
(작가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아들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심정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있다.)
(210)은하계를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지구를 망망한 바닷가의 모래알 만도 못하게 극소화 시키는 효과는 그만이예요. 그 모래알에 붙어 사는 인간의 운명이나 수명 따위도 덩달아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죠.
(214-215)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친구의 아들을 문병하러 갔을 때:
저는 별안간 그 친구가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인물이나 출세나 건강이나 그런 것 말고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구요./형님, 날카로운 삼지창 같은 게 가슴 한가운데를 깊이 훑어내리는 것 같았어요. 너무 아프고 쓰라려 울음이 복받치더군요./저는 드디어 울음이 복받치는 대로 저를 내맡겼죠 대성통곡, 방성대곡보다 더 큰 울음이었으니까요./전 그 울음을 통해 기를 쓰고 꾸민 자신으로부터 비로소 놓여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어요./이제부터 울고싶을 때 울면서 살 거예요.
<환각의 나비>
(제1회 한무숙 문학상 수상작)
(218)그 집:느낌이 있는 집/그 느낌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 이끌리기도 하고 그 집 앞을 돌아가기도 했다./그 집은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 집이었지만 약수터 가는 길목이기도 했고, 전철역으로 통하는 지름길 가이기도 했다./행정구역상서울의 위성도시인 Y시/원주민 동네라 일컬어지는 곳/논밭이 마을이 된 건 30년도 채 안 됨/원주민 동네가 Y시의 섬이라면 그 집은 원주민 동네의 섬이었다.
(221)오자:영주의 집-->영주의 입
(235)과천--둔촌동 영주--의왕터널 건너 아들네 집/딸 영주와 살다가 아들 영탁이네 집에 가서 석 달도 못 버티고 다시 둔촌동으로 온 어머니/아들을 기다리다 끝내 가출까지
(241)그 집:'천개사 포교원'이란 간판이 내걸리고 연등이 달렸다./연등이 많이 달린 걸 보자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절에 신도가 꽤 많구나 싶어 동네 사람들은 기뻤다.
남이 잘되는 걸 별로 좋아해본 적이 없는 마을 사람답지 않았다./원래 그 집은 점집이었고 처녀점쟁이가 부처님을 모시고 점을 보았다./지금은 간판만 바뀌었을뿐 그 처녀가 비구니 스님이 된 것이다.
(242)원주민 동네 사람 중 태반은 하는 일이 뜻대로 안 돼 무꾸리들을 잘 다녔고 그게 유일한 취미인 사람까지 있었지만 그 집에 가서 점을 쳤다는 이는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고향에서 인정을 못 받기는 비단 예수님만이 아닌 모양이다. 파일날도 동네 아이들만이 그 집 앞으로 몰려가 안을 기웃댔다. 바람에도 가벼운 것이 먼저 날리듯이 축제 분위기에도 아이들만 덩달아 들떴을 뿐 그 동네 어른들은 끄떡도 안했다.
**무꾸리하다:점치다.
(244~246)치미는 욕심이란 늘 삼가는 마음보다 우세하기 마련이다.
(246)마금네의 사연:마금네는 그야말로 토박이 중의 토박이/마금이는 처녀점쟁이였던 자연스님/그 집은 6.25 때 온가족이 몰살 당한 흉가/그 집에 도사가 들어와 살고 마금이는 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보상으로 그 집과 텃밭을 차지한다/처녀 점쟁이의 수입은 놀고 지내는 가족들을 먹여 살릴 만했다./그러나 마금이는 그 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
(249)그녀가 막연히 벗어나고 싶은 건 이 고장이 아니라, 여지껏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그녀가 그 나이까지 만난 사람들은 식구건 남이건 하나같이 무슨 수를 써서든지 남의 재물이나 지위를 빼앗고 싶다는 생각밖에 머리에 든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걸 일찌감치 간파한 거야말로 그녀가 점을 칠 수 있는 주요한 밑천이었다.
(249-2)딸이 한 번도 뭘 맛있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는 마금네는 뭘 먹도록 해 줄 생각보다는 두면 썪혀 버릴 거, 하면서 뭐든지 가져가려고만 했다.
(250-251)낯선 노파의 방문:마금이의 절집에 나타난 노파/뒤란에 씨를 뿌린 것도 그녀가 아니어서 어떻게 해 먹는 푸성귀인지도 모르고 손에 잡히는 대로 한움큼 뽑아다가 다듬으려는데 노파가 한 사람 스르르 들어왔다. 한눈에 점을 치러온 사람은 아니었다. 계절에 맞지 않은 옷에 비해 환한 얼굴이 까닭없이 눈부셨다./노인은 스스럼없이 아욱국을 끓어냈다./그 모든 행동이 묵은 살림하듯 막힘없이 능수능란했다. 스님은 그 이상한 할머니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도무지 짚이는 게 없었다. 대번에 뭐가 딱 와야지 오래 생각을 굴려서 알아낸 건 맞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조금도 낭패스럽지가 않고 기쁨이 스멀스멀 등을 기는 것처럼 즐거웠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남한테 위함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현실감 없이 황홀했다.
(258)집 나간 어머니의 모습:부처님 앞, 연등 아래 널찍한 마루에서 회색 승복을 입은 두 여자가 도란도란 도란거리면서 더덕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화해로운 분위기가 아지랑이처럼 두 여인의 둘레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몸집에 비해 큰 승복 때문에 그런지 어머니의 조그만 몸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큰 나비처럼 보였다.
아니아니 헐렁한 승복 때문만이 아니었다.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 그 가벼움. 그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이 책에 실린 5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것은 '환각의 나비'다. 편집자도 그래서 이 작품명을 표지제목으로 삼았나? 누가 그 노인을 치매 환자로 보겠는가, 하기사 질곡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얻은 모습이 치매환자라지 않는가!)
***그외에 수상작들: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작(1990)
이산(김광섭)문학상(1991) 미망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너무도 쓸쓸한 당신
황순원문학상(2001)그리움을 위하여
호암상 예술부문(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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