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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장 그르니에

맑은 바람 2021. 9. 15. 13:44

그르니에 선집1
그르니에/김화영/민음사/181쪽/1판1쇄 1997.8/2판4쇄 2021.5/읽은 때 20210912~0915

장 그르니에:(1898~1971)향년73세/ 파리에서 태어나 브르타뉴에서 성장, 파리고등사범과 솔본느대학에서 수학/1922년 철학교수 자격증을 얻음/1930년 알제고등학교 재직 중에 졸업반 학생 카뮈를 만난다./1933년 에세이집 '섬' 출판/말년에 소르본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침/<카뮈를 추억하며>1968/<일상적인 삶>1968/<알베르 카뮈와의 서한집>1981 등이 있다./프랑스 국가문학대상 수상

--알베르 카뮈의 서문--
(7-8)'섬'은 우리에게 환멸의 비밀을 가르쳐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문화라는 것을 발견했다./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왕국으로 여기고 있던 감각적인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와 병행하여 우리의 젊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었다./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체험한 감격과 긍정의 순간들은 '섬'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에 영감의 원천이 되었거니와  그르니에는 그것들의 영원한 흥취와 동시에 덧없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다./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감탄하다가 죽는다. 마침내 이르게 되는 항구는 어디일까? 바로 이것이 이 책 전편을 꿰뚫고 지나가는 질문이다./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그와 비슷한 계시를 제공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공의 매혹
(27)예닐곱 살쯤이었다고 여겨진다. 어느 한 그루의 보리수 그늘 아래 가만히 누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눈길을 던지고 있다가 나는 문득 그 하늘이 기우뚱하더니 허공 속으로 송두리째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내가 처음 느낀  무의 인상이었다. 그 인상은 어떤 풍부하고 충만한 생존의 인상에 바로 잇따라 느끼게 된 것이었기에 더욱 생생하다.
(28)우리의 삶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 내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것이 차례차례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는 터이니까 말이다./나는 그냥 살아간다기보다는 왜 사는가에 의문을 품도록 마련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오히려 '변두리로 밀려나' 살아가도록 마련된 것이다.
(33)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공의 자리에 즉시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고양이 물루
(36)짐승들의 세계는 온갖 침묵들과 도약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철학자는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카뮈가 자신의 은인이자 스승의 글에 대해 아무리 찬사를 늘어놓더라도--)
(57)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들에 대해서 하고싶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그런 것은 사실 우리자신에게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때에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보편적인 생각들만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이라야 이른바 그들의 '지성'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나 슬프게 하는 것 쪽을 더 중시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 이유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
(61)이처럼 부질없는 문제에 대해 박식해진다는 것이 나로서는 싫지 않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뎌 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의 대상을 정해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

(장 그르니에는 나의 삶의 태도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것이다. 매일 아기 돌보기하는 짬짬이 책 속의 글을 카피하고 또 읽고 블로그에 올리고 하는, 남들에게는 별 관심을 끌지도 못하는 일에 매달려 사는 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65)불구가 된 믈루:그에게는 차라리 죽는 쪽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고양이 자신을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 여기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사랑하는 한 존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견디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개나 고양이 등의 짐승을 길러본 사람이라면 100% 공감할 것이다)
(71)죽으러 가는 물루:발걸음을 뗄 때마다 꿈틀거리는 고양이 때문에 균형이 이리저리로 쏠리는 바구니 속에서는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대체 인간은 무슨 특권을 가졌기에 짐승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74)이제 마침내 물루는 제가 좋아했던 정원에, 제 집으로 여기며 지냈던 정원에 묻혔으니, 쉬렌 근처의 섬에 매장되는 파리의 고양이들보다 더 행복하고, 무엇보다 가슴이 조여들도록 답답한 공동묘지에 묻히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며, 아피아 가도를 따라 자기네 정원 영지에 묻히는 부유한 로마사람들만큼이나 행복하다.

(물루를 안락사 시키고 자기집 마당에 묻으면서 작가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위안을 얻는다)

케르겔렌 군도
(옛적에는 '황폐의 섬', 나중에는 '남극 프랑스'로 불리던 인도양 남쪽  프랑스령 군도)
(77)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별것 아닌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여행자가 누리는 익명의 자유~모든 여행자들의 로망!)
(84)어떤 열렬한 사랑은 그 주위에 굳건한 요새의 성벽들을 쌓아두려 한다. 그 순간 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밀을 예찬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
(86-87)이런 비밀스러운  삶이 반드시 부자연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 삶은 우리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파스칼은 이것을 하지 않았다. 파스칼은 이것을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같은 식으로 떠들어대는 문학비평가와 대화를 하느니 트럼프놀이를 하고 있는 미장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파스칼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87)허풍의 힘: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숱하게 많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허풍이다. 허풍은 상술의 요체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관계를 지배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의 생활에는 허풍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카뮈가 존경하는 프랑스의 기라성같은 인물의 이미지가 있는 장 그르니에--그는 명불허전이라 말해야 할까, 유명무실한 인물이라 해야 할까?)

행운의 섬들
(102)극도의 희열이란 어떤 사람들에겐 비극적인 것과 구별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희열은 비극성의 절정인 것이다. 어떤 정열의 소용돌이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영혼 속에는 엄청난 침묵이 찾아든다. 감옥 속에 갇힌 쥘리앵 소렐의 침묵이 그렇다. 그것은 또한 엠마오 순례자들의 침묵이다. 그것은 성신강림제의 위대한 아침의 침묵이다. 그 침묵을 완전히 표현할 줄 알았던 사람은 렘브란트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03)자연이 주는 감동:나폴리에 살고 있을 때 나는 아침마다 만을 굽어보는 플로리디아나 장원을 찾아가서 시계가 정오를 칠 때까지 담배를 피우면서 이리저리 거닐곤했다. 그 한가로운 무위의 시간들은 파리에서의 열에 들뜬 듯한 시간들보다 더 내 가슴을 가득하게 해주었다. 이같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 풍경 속에서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일하는 데에만 골몰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만물의 중심에 있는데 이 땅덩어리의 한끝을 조금 움직여 보아 무엇하겠는가?

(이 대목에서 카뮈는 무어라 말했을까 궁금하다. 부르주아 근성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없을까?/뒤에 나오는 글 '이스터섬'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소설가의 글에 대해 "제 먹을 것은 충분히 있는 사람이구먼."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
(107)

바다 위에 떠가는 꽃들아,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보이는 꽃들아, 해초들아,

시체들아, 잠든 갈매기들아,

배의 이물에 갈라지는 그대들아, 아, 내 행운의 섬들아!

아침의 예기치 않은 놀라움들아, 저녁의 희망들아--

나는 또 그대들을 이따금씩 다시 보게 되려는가?

오직 그대들만이 나를 나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대들 속에서만 나는 나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티없는 거울아,

빛없는 하늘아,

대상없는 사랑아---.

이스터섬
**남태평양 동북부에 있는 칠레의 섬/본토에서 3500km 거리/원주민들은 '라파누이'라 부름/800여 개의 거대한 석상 유적이 있다
(123)죽음의 다양성:끝은 항상 똑같지만 거기에 이르는 우여곡절은 러시아산맥의 비탈들만큼이나 다양하다.
(124)섬에 대한 작가의 주석: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섬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뿐인' 인간들.

상상의 인도
--장소도 시간도 아닌
--인도와 그리스
(135)그리스는 무인도처럼 메마르고 팽팽하게 긴장된  곳이다. 도시국가들 사이, 가문들 사이, 인간들 사이의 투쟁으로 인하여 세상에서도 가장 명확하고 의미있는 감정들이 생겨났다.---인도는 물렁물렁하고 불명확하다. 처녀림처럼 사람을 홀린다. 모든 존재들을 똑같은 애무로 감싸주고 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저 점진적인 변화의 단계들로 부지불식간에 이동하게 만들며, 우주전체의 생명이 매순간 개개의 존재 속에 거울 속처럼 비치게 만드는 그토록 은근하고 계속적인 멜로디./그 풍성한 식물과 동물의 소리, 색깔, 향기가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저 전염성의 부드러움 앞에서 그저 압도될 뿐이다. 신전과 동물의 벽화와 궁전들의 그 찬란함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136)저 말랑말랑한 펼친 손들 말고 좀 굳게 쥔 주먹을 보았으면 싶다. 인도는 그같은 성년의 발육 상태를 경험한 적이 없다. 인도는 우리들 눈에는 영원한 유년같은 모습이다. 인간으로서는 어른다운 척도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간디나 네루가 이 글을 읽었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편협한 유럽인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137)타고르는 오늘날 그 문학의 대표자로 이를 테면 장미꽃 향수다.
(139-140)비인간적 나라, 인도. 이 나라에서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만한 값이 못 된다. 어떤 인간은 짓밟히고 짐승과 같은 상태로 천대받는다. 요령을 배운 다른 사람들은 신처럼 존경받는다. 폭군들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군림한다. 부당 징세는 드문 일이 아니다. 비인간적 백성. 인간성의 '밖에' 있는 백성. 사회 체제 그 자체, 카스트의 구분, 복잡한 의식들, 사회에 의하여 개인을, 종교에 의하여 인간을 짓누르는 모든 것, 우리들 그리스적이며 기독교적인 문명과는 반대되는 모든 것, 우리에게, 나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며, 나도 어쩌면 인도사람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치는 그 모든 것도 그것이 정신으로 하여금 그의 가장 귀중한 인연들로부터 해방되고 정신이 이성의 밖으로 도약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하면  마음 속에 열광적인 공감이 솟아오른다.
(인도에 대해서 이렇게 혹독하게 표현한 글은 처음이다.얼마나 객관성을 띤 글일는지?)
(150)정신의학자들이 보는 인도:나이 어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광증의 주된 증상--
관심 상실--결과는 무기력--정서적 감정의 약화--애매한 감정--내면적으로 야릇하고 괴로워  견디기 어려워지는 느낌

사라져 버린 날들
(166)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인심 좋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쪼잔한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변질시키지 않는 일이다.

보로메 섬들
**스위스 국경에서 가까운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마조레 호수에 있는 다섯 개의 섬들로 15세기 이래 그 중 가장 큰 섬들을 소유하고 있는 롬바르디아 지방의 보로메오 가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71)북쪽 지방의 어느 낯선 고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보니 내게는 삶이 무겁고 시가 없어 보였다. 시가 없다는 말은 더할 수 없이 단조롭기만 한 것에서 매순간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만드는, 저 뜻하지 않은 놀라움이 없다는 뜻이다.
(173)가장 먼 곳과 이제는 작별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것 속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테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아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 짧은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 두자. 마조레 호반의 자갈밭과 난간을 따라가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저 그것의 영광스러운 대용품들이나 찾을밖에!
그럼 무엇을?
그렇다.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보로메의 섬들이 될 것 같다.

-새 번역을 내놓으며-
(176)역자 김화영이 보충설명하는 장 그르니에:장 그르니에는 마치 견고한 통나무나 대리석을 더 이상 깎을 수 없을 때까지 깎아 내어 마지막 남은 작품의 핵심,혹은 진면목을 찾아내는 조각가처럼, 죽음과 마주앉은 수도사처럼, 절제와 정신의 헐벗음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아 생각하고 글을 쓰는 철학자다.
(178)역자가 발견한 장 그르니에의 '섬': 역자가 20대 박사과정에 있던, 엑상프로방스의 어느 가을 날/카뮈 읽기를 통해 처음 '발견'한 이 책의 신비와 감동은 바로 '케르겔렌 군도'의 첫머리에 날카로운 조각상처럼 새겨져 있었다./1970년대 후반 어느 날 이 책을 단숨에 번역해 그 원고를 들고 여러 출판사를 찾아다녔다. 모두 거절했다. 이 나라에는 아직 장 그르니에가 누구인지 들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던 시절이었다.
결국 김화영이 몸 담고 있는 <문학사상>을 통해 빛을 보았다. 바로 뒤 민음사에서 연락이 와 이어 출판하게 된다./나는 언덕 아래쪽에 있는 장 그르니에의 옛집(오트프로방스의 시미안 라 로통드 마을)앞에 서서 오래도록 보라색 라벤더가 찬란한 프로방스의 빛을 받고 있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마조레 호수 한가운데의 보로메 섬들을 떠올렸다. 언젠가 이 지루한 코로나 역병에서 해방되는 날이 오면 로카르노에서 멀지 않은 마조레 호수 가운데 뜬그 섬들을 찾아가 보고 싶다.

(남프랑스 여행은 아무래도 나의 버킷리스트에 추가해야 할 항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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