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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위대한 초현실주의자

맑은 바람 2021. 9. 19. 08:50

장루이 가유맹 지음/강주헌 역/159쪽/시공사/2006.3 초판1쇄/2009.7 초판9쇄/읽은 때 2021.0917~0919

제1장  카탈루냐에서의 어린 시절(카탈루냐 주도는 바르셀로나)
달리(1904~1989)향년 85세/본명은 살바도르 펠리페 하신토/카탈루냐 바르셀로나의 농촌마을 피게레스에서 성장함(피레네 산맥 자락)/화를 잘 내고 변덕스러우나 예쁘게 생긴 외모 덕분에 사랑을 받음/여름별장 카다케스 항구의 풍경에 매료됨/고등학교 재학 중에 시립데생학교 야간부에 다님/
"나는 천재가 될 것이다. 세상이 나를 숭배할 것이다"-16세의 달리가 수첩에 기록한 말

16세에 피게라스 데생학교에 입학한 살바도르 달리1920

18세 때, 작품전시장에서 앙드레 브르통을 만남

**앙드레 브르통(1896~1966): 프랑스 시인, 초현실주의 주창자

제2장  달리, 로르카, 부뉴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루이스 부뉴엘을 만남/이들을 통해 미학적 눈을 키움/마드리드에서 공부함/회화 조각 판화를 위한 특별학교에 다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 스페인 시인, 극작가/스페인 내란이 발생한 직후 민족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함

**루이스 부뉴엘(1900~1983):아라곤 출신/번듯한 외모, 출중한 운동 실력/마드리드 사창가의 단골손님/울트라(극단주의)의 사상에 심취/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감독/이 영화에서 달리는 신학생역으로 출연

**안달루시아의 개:기숙학교 학생들이 에스파냐 남부 출신에게 붙여주었던 별명

**달리와 로르카:이들의 공통점은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 성적인 불만, 신랄한 유머감각이다/달리는 로르카를 질투했다/"내평생에 질투심으로 고뇌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때때로 우리는 단골카페에 가려고 파세오 드 라 카스텔라 거리를 함께 걸었다. 로르카가 카페에서도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것이란 생각에 나는 황급히 그의 곁을 떠나 사흘 정도 자취를 감춰 버리곤 했다./로르카는 달리를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사랑했다.
(29)달리와 피카소의 만남:로르카의 친구 소개로 파리의 라보에티 가에 있는 피카소의 화실에서 달리는 피카소를 만났다.
**달리의 자화상은 프리다 칼로의 눈썹을 닮았다

달리의 젊은 날의 자화상

**초현실주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반예술 운동인 초기 다다이즘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처럼 부정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초현실주의는 특히 회화에서 많은 공적을 이루었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다다이즘뿐만 아니라 프란시스코 고야와 마르크 샤갈 같은 화가들의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미지의 영향을 받았다. 
장 아르프,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피에르 루아, 호안 미로 등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초현실주의는 내용적 측면과 자유로운 형식을 강조함으로써 형식주의로 치우치고 있던 당시 입체파 미술의 대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을 강조하는 회화적 전통을 현대 미술에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제3장  편집증적 체험이냐, 자동기술법이냐
(45)'제2의 랭보' 달리의 이런 비타협성은 모든 것에서의 해방을 추구한 갈라 엘뤼아르의  영향이 컸다.
(46)달리의 역할 모델:미로와 그의 초현실주의 작품 '사냥꾼과 경작된 토지'/1927년 10월, 미로는 카다케스의 집을 방문한다/미로의 범신론적 에로시티즘과 몽환적 해체가 달리에게 영향을 줌
(48)'편집증적 체험'의 정의:
자동기술법은 자아가 독단적인 시선으로 파악한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이며 이를 편집증적 체험이라 함
(수수께끼를 풀려는 자세가 없다면 이 글은 곤혹스러워 읽기 힘들어진다.)

제4장  위대한 자위행위자에서 나르시스의 신화까지
(괴물 화가 베이컨에 이어 달리의 그림도 읽어내기 어려울뿐더러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그림에 감탄하고 경도될까, 궁금해진다)
**편집증:인격장애(의심, 불신,부정적, 적대적, 비타협적--)

제5장  세계와 세계의 장식:오브제에서 건축까지
(91)인습의 파괴자 달리는 브르통과 초현실주의자들에게서만 사랑받은 것이 아니다. 사교계 사람들도 달리에게  깊은 찬사를 보냈다. 달리는 샤를 드 노아유, 쥘리앵 그린, 에밀리오 테리 등 12명으로 구성된 '조디아크'의 든든한 후원을 받았다. 이후 영국인 수집가 에드워드 제임스의 후원을 받아 도발적 오브제와 아르누보 건축에 대한 취향을 여지없이 드러냈고 축제와 패션 및 장식예술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102-103)영화제작에도 참여했다:
<안달루시아의 개>, <데스니노>
(104)달리가 가져온 가구디자인의 변화:입술 모양의 소파/코 모양의 벽난로/머리카락 커튼/눈과 같은 창틀/남근 모양의 우산/척추 모양의 스탠드--
(105)무대 디자인에까지 진출한 달리: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공연된 '바카날'의 무대장치
(107)뉴욕 세계박람회의 휴식공간:달리는 <비너스의 꿈>이라는 이름을 붙임

비너스의 꿈1939(세계박람회의 휴식공간 내 초현실주의 관)여자 거인의 추켜올린 치마 아래에 물고기모양을 한 매표소가 있다

(108)그들은 비너스의 얼굴을 물고기로 대신하려는 달리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달리는 '고유한 광기에 충실하려는 인간의 권리와 상상력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게 된다.

제6장  아비다 달러, 질서로의 복귀
(111)1942년에 달리는 정신분석학과 형태학의 결합을 공표하며,'살바도르 달리의 감춰진 생애'에서 고전주의적 형태와 가톨릭으로의 전향을 선언했다. 초현실주의적 이미지가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는 했지만 갈라의 눈빛 아래에서 초자연적그림으로 되살아났다.
(114)갈라만은 아비다 달러('돈에환장한 인간'이란 뜻으로 브르통이 달리에게 붙여준 별명)의 승리감에 도취한 타락에  저항했다. 그 덕분인지 그녀의 초상 '갈라리나 '는 라파엘로만큼의 품격이 느껴진다.
1929년 여름에 갈라를 만나면서 달리의 삶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갈라리나1941, 당당하고 명석한 모습
달리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하며 뉴욕현대미술관의 자랑거리인 <기억의 집념>1931
자신의 순결한 뿔로 자위행위를 하는 처녀1954
그랜드피아노와 썪은 당나귀1929/좌절된 욕망을 상징
카다케스의 포알해변의, '얼굴을 코로 기댄 듯한 바위'는 달리신화의 주된 이미지 중 하나인 위대한 자위행위자를 탄생시켰다
<애처러운 장난>
카탈루냐의 명사들과 지식인들을 탄생시킨 가문의 한 사람, 달리의 아버지
살아있는 가구디자인의 하나, 바다가재 전화기
달리의 가장 큰 그림 중의 하나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꿈>콜럼버스가 이뤄낸 업적을 그리스도와 성모의 승리로 해석함
표지그림 <건축적 관점에서 본 밀레의 안젤루스>

 

 

 

 

 

 

 

 

 

 

 

 

 

 

 

 

 

 

 

 

 

 

 

--위대한 초현실주의자
시공사/장루이 가유맹 지음/강주헌 역/159쪽/2006.3초판1쇄/2009.7초판9쇄/읽은 때 2021.0917~0919

제1장  카탈루냐에서의 어린 시절
카탈루냐 주도는 바르셀로나
달리(1904~1989)향년85세/본명은 살바도르 펠리페 하신토/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의 농촌마을 피게레스에서 성장함(피레네 산맥 자락)/화를 잘 내고 변덕스러우나 예쁘게 생긴 외모 덕분에 사랑을 받음/여름별장 카다케스 항구의 풍경에 매료됨/고등학교 재학 중에 시립데생학교 야간부에 다님/'
"나는 천재가 될 것이다. 세상이 나를 숭배할 것이다"-16세의 달리가수첩에 기록한 말
18세 때, 작품전시장에서 앙드레 브르통을 만남

제2장  달리, 로르카, 부뉴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루이스  부뉴엘을 만남/이들을 통해 미학적 눈을 키움/마드리드에서 공부함/회화 조각 판화를 위한 특별학교에 다님/
**루이스 부뉴엘:아라곤 출신/번듯한 외모, 출중한 운동 실력/마드리드 사창가의 단골손님/울트라(극단주의)의 사상에 심취
**달리와 시인 로르카:이들의 공통점은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 성적인 불만, 신랄한 유머감각이다/달리는 로르카를 질투했다/"내평생에질투심으로 고뇌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때때로 우리는 단골카페에가려고 파세오 드 라 카스텔라 거리를 함께 걸었다. 로르카가 카페에서도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것이란 생각에 나는 황급히 그의 곁을 떠나 사흘정도 자취를 감춰 버리곤했다./로르카는 달리를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사랑했다.
(29)달리와 피카소의 만남:로르카의 친구 소개로 파리의 라보에티 가에 있는 피카소의 화실에서 달리는 피카소를 만났다.
**달리의 자화상은 프리다칼로의눈썹을 닮았다
**초현실주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반예술 운동인 초기 다다이즘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처럼 부정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초현실주의는 특히 회화에서 많은 공적을 이루었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다다이즘뿐만 아니라 프란시스코 고야와 마르크 샤갈 같은 화가들의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미지의 영향을 받았다. 
장 아르프,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피에르 루아, 호안 미로 등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초현실주의는 내용적 측면과 자유로운 형식을 강조함으로써 형식주의로 치우치고 있던 당시 입체파 미술의 대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을 강조하는 회화적 전통을 현대 미술에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안달루시아의 개:기숙학교 학생들이 에스파냐 남부 출신에게 붙여주었던 별명

제3장  편집증적 체험이냐, 자동기술법이냐
(45)'제2의 랭보' 달리의 이런 비타협성은 모든 것에서의 해방을 추구한 갈라 엘뤼아르의  영향이 컸다.
(46)달리의 역할 모델:미로와 그의 초현실주의 작품 '사냥꾼과 경작된 토지'/1927년 10월, 미로는 카다케스의 집을 방문한다/미로의 범신론적 에로시티즘과 몽환적 해체가 달리에게 영향을 줌
(48)'편집증적 체험'의 정의:
자동기술법은 자아가 독단적인 시선으로 파악한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이며 이를 편집증적 체험이라 함
(수수께끼를 풀려는 자세가 없다면 이 글은 곤혹스러워 읽기 힘들어진다.)

제4장  위대한 자위행위자에서나르시스의 신화까지
(괴물 화가 베이컨에 이어 달리의 그림도 읽어내기 어려울뿐더러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그림에 감탄하고 경도될까, 궁금해진다)
**편집증:인격장애(의심, 불신,부정적, 적대적, 비타협적--)

제5장  세계와 세계의 장식:오브제에서 건축까지
(91)인습의 파괴자 달리는 브르통과 초현실주의자들에게서만 사랑받은 것이 아니다. 사교계 사람들도 달리에게  깊은 찬사를 보냈다.달리는 샤를 드 노아유, 쥘리앵 그린, 에밀리오 테리 등 12명으로 구성된 '조디아크'의 든든한 후원을 받았다. 이후 영국인 수집가 에드워드 제임스의 후원을 받아 도발적 오브제와 아르누보 건축에 대한 취향을 여지없이 드러냈고 축제와 패션 및 장식예술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브르통:프랑스 시인, 평론가, 의학도였으나 초현실주의 주창자/꿈과 현실, 이성과 광기, 객관성과 주관성 등의 구별을 없애는 것이 목표
(102-103)영화제작에도 참여했다:
'안달루시아의 개', '데스니노'
(104)달리가 가져온 가구디자인의 변화:입술모양의 소파/코 모양의 벽난로/머리카락 커튼/눈과 같은 창틀/남근 모양의 우산/척추 모양의 스탠드--
(105)무대 디자인에까지 진출한 달리: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공연된 '바카날'의 무대장치
(107)뉴욕 세계박람회의 휴식공간
:달리는 '비너스의 꿈'이라는 이름을 붙임
(108)그들은 비너스의 얼굴을 물고기로 대신하려는 달리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달리는 '고유한 광기에 충실하려는 인간의 권리와 상상력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게 된다.

제6장  아비다 달러, 질서로의 복귀
(111)1942년에 달리는 정신분석학과 형태학의 결합을 공표하며,'살바도르 달리의 감춰진 생애'에서 고전주의적 형태와 가톨릭으로의 전향을 선언했다. 초현실주의적 이미지가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는 했지만 갈라의 눈빛 아래에서 초자연적그림으로 되살아났다.
(114)갈라만은 아비다 달러('돈에환장한 인간'이란 뜻으로 브르통이 달리에게 붙여준 별명)의 승리감에 도취한 타락에  저항했다. 그 덕분인지 그녀의 초상 '갈라리나 '는 라파엘로만큼의 품격이 느껴진다..''
1929년 여름에 갈라를 만나면서 달리의 삶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