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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알베르 카뮈

맑은 바람 2021. 9. 25. 15:16

알베르 카뮈/김화영옮김/민음사/288쪽/2011년 3월 1판1쇄/2021년 5월 2판7쇄/읽은 때 20210919~0925

**<이방인>은 엄격한 질서를 갖춘 고전으로 부조리에 관해서, 그리고 부조리에 맞서 쓰인 책이다.--장폴 사르트르

1부
1.
(27)어머니와 페레스 씨:원장은 나에게 어머니와 페레스 씨가 저녁이면 간호사를 대동하고서 마을까지 자주 산책을 하곤 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주위의 벌판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하늘 닿는 언덕까지 줄지어 늘어선 실편백나무들, 그 적갈색과 초록색의 대지, 드문드문 흩어져 있지만 그린 듯 뚜렷한 집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고장에서 저녁은 우수에 젖은 휴식과도 같았을 것이다. 오늘은 풍경을 전율케하면서 천지에 넘쳐나는 태양 때문에 이 고장은 비인간적이고 기를 꺾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29)장례행렬에 따라온 펠레스의 모습: 흥분과 힘겨움으로 인해 굵은 눈물이 그의 뺨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주름살 때문에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눈물 줄기들은 퍼졌다가 한데 모였다가 하면서 그 허물어진 얼굴 위에서 니스칠을 해놓은 듯 번들거렸다.(세밀한 묘사가 놀랍다)
2. 3.
(41)레몽 생테스:같은 층에 사는 이웃/창고감독/비호감인물/키가 상당히 작고 어깨가 딱 벌어지고 코는 마치 권투선수의 코 같다. 옷차림은 언제나 반듯하다./그의 초대를 받고 식사 후 그가 원하는 편지 한 장 써주고 친구로 받아들여진다.
(45)마지막 전차들이 지나가며, 이제는 아득하게 들리는 변두리의 소음들을 실어가고 있었다.
4.
(49)토요일, 마리와의 데이트:알제에서 몇 킬로 떨어진 해변/4시의 태양은 과히 뜨겁지 않았으나 물은 따뜻했고 길게 퍼진 작은 물결이 나른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5.6.
(64)벌써 태양으로 가득한 대낮의 빛이 마치 내 따귀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마리는 기뻐서 깡충거리며 몇 번이나 날씨가 좋다는 말을 했다.
(77-78)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고 그날처럼 특히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들이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그 뜨거움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칼을 뽑더니 태양 빛 속에서 나를 향해 쳐들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었고, 번쩍하는 긴 칼날 같은 것이 되어 내 이마를 쑤셨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고여 있던 땀이 단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서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으로 눈꺼풀을 뒤덮었다. 내 두 눈은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캄캄해졌다. 나는 다만 이마 위에서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그리고 내 앞의 칼에서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어렴풋이 느낄뿐이었다. 그 불타는 칼은 내 속눈썹을 쥐어뜯고 고통스러운 두 눈을 후벼팠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가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하늘 전체가 갈라지면서 불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나의 전 존재가 팽팽하게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꽉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날카롭고도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어 털었다. 나는 내가 대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어느 바닷가의 그 특별한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들은 깊이 들어가 박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

2부
1.
(83)그(변호사)는 내가 그날(어머니 장례식날)마음이 아팠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알려 주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나는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게 건 적게 건 바랐던 적이 있는 법이다. 나는 그에게, 내가 원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 받는 일이 많은 천성이라고 설명해 줬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졸렸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거였다.
(88)별로 귀 기울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늘 그러듯이, 나는 그의 말을 시인하는 체했다. 놀랍게도 그는 의기양양해서 "그것 봐, 그것 보라고. 너도 믿잖아? 그리고 하느님께 너를 맡기려 하잖아?"하고 말했다. 물론 나는 다시 한번 더 아니라고 말했다. 그(신부)는 다시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89)이윽고 예심판사가 약간 슬픈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처럼 영혼이 메마른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가 중얼거렸다.
"내 앞으로 찾아온 범죄자들은 이 고상을 보고는 하나같이 다 눈물을 흘렸어요"
---그는 여전히 좀 피곤한 표정으로 진정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느냐고만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 본 뒤,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입으로만 잘못했다, 후회한다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감형을 염두에 두는 인물들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고 인간적인가?)
2.
(96-97)만약 누가 나를 마른 나무둥치 속에 들어가 살게 만들어 내가 머리 위의 꽃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해도, 차츰 그 생활에 익숙해졌으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면 나는 새들이 지나가거나 구름들이 서로 만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엄마는 자주 그 말을 되뇌곤 했다. 사람은 결국 무엇에든 익숙해지는 법이라고 말이다.
(죄수로서의 주인공 '나'는 성욕, 담배, 소일거리, 잠을 극복했다, 엄마 말처럼--

그러나 밤에 읽기는 섬뜩한 책, 가까이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이 떠올라 읽고 싶지 않아지는 책,

'나'는 정말 냉피동물일까? 인간의 속을 들여다보면 다 그런 걸까? )
3.
(116)증인의 이야기:마송이 나서서, 나는 정직한 사람이며 '그뿐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했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살라미노도 내가 자기 개에게 퍽 잘 해줬다는 점을 상기시켰고, 또 어머니와 나에 관한 질문에서는 내가 엄마와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 때문에 엄마를 양로원에 맡긴 거라고 대답했으나역시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살라미노는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이해해 주셔야 해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해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116-2)마지막 증인:레몽은 나에게 슬쩍 어떤 신호를 해 보이더니 다짜고짜로 나는 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평가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117)검사는 끝으로 레몽에게 생활수단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창고감독'이라고 레몽이 대답하자 차장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증인이 포주노릇을 업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공범자요 친구였다. 이것은 가장 저질의 치정사건으로, 피고인이 도덕적으로 기형적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위중하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돌아서며 선언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가장 수치스러운 방탕 행위에 골몰했던 바로 그 사람이 하찮은 이유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치정 사건을 정리하기 위하여 살인을 한 것입니다."
(이런 걸 운명이라 하나? 레몽은 의도적으로 '나'에게 권총을 건네준 게 아닐 테고 '나'는 왜 하필 그 시각에 샘으로 가서 그런 악연을 만들었을까?)
(118)여름 저녁의 냄새와 빛:
이미 고즈넉하게 가라앉은 대기 속에서 들려오는 신문팔이들의 외치는 소리, 작은 공원 안의 마지막 새소리, 샌드위치 장수들의 호객하는 소리, 작은 공원 안의 마지막 새소리, 샌드위치 장수들의 호객하는 소리, 시내 고지대의 굽은 길에서 울리는 전차의 마찰음, 그리고 항구 위로 어둠이 기울기 전 하늘의 저 술렁이는 소리, 그러한 모든 것이 나에게는 소경이 되어 더듬어 가는행로를 재구성해 주고 있었다.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잘 알고 있었던 그 행로를 말이다.
4.
(120-121)이게 바로 부조리인가?
비록 피고인석에 앉아 있을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딘가 좀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대로의 걱정거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나도 한마디 참견을 하고 싶었다.그러면 변호사는 "가만있어요,그편이 당신 사건에 더 유리해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를 빼놓은 채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나의 참여 없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일 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알고 보면 그런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제도 속의 군인, 직장인, 옛날 혼인 방식, 가부장적 남편의 아내와 그 가족들--)
때때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대체 누가 피고인가요? 피고인이 된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내게도 할 말이 있어요." 그러나 깊이 생각을 해 보면, 내겐 할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었다.
(검사의 논고는 실제와는 맞지 않는 '제멋대로 쓴 소설'이니 객관적으로 보면 얼마나 부조리한 현실인가)
(122)나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내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갖춘 장점이 어떻게 그를 죄인으로 모는 명백한 기소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점이었다.
(124)여러분, 바로 이 법정은 내일 가장 흉악한 범죄, 아버지를 살해한 범죄를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그 범행이 불러일으키는 혐오감은, 나의 무감각함 앞에서 자신이 느끼는 혐오감에 비하면 차라리 한 수 아래라고 했다.--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인간은, 자기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간사회를 등지는 것, 어쨌든 전자는 후자의 행위를 준비하며, 말하자면 그러한 행위를 예고하고 또 정당화한다는 것이었다.
(125)검사의 말:본 검사는 이 사람의 목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짧지 않은 재임 기간 중 저는 여러 번 사형을 구형했지만, 그 괴로운 의무가 오늘처럼, 절박한 지상 명령을 따른다는 의식에 의해, 그리고 흉악무도함밖에 찾아낼 수 없는 한 인간의 얼굴을 앞에 두고 느끼는 혐오감에 의해 보상받고, 채워지고, 빛을 받는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125-2)나의 최후 변론(?):아랍인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나는 빠르게, 좀 뒤죽박죽이 된 말로,그리고 우스꽝스런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법정 안에서 웃음이 터졌다.
(130)사형선고: 또 다시 벨이 울리고 피고인석 문이 열렸을 때 나에게로 밀려온 것은 장내의 정적이었다.---나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왜냐 하면 재판장이 나에게 이상한 형식을 갖추어,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5.
(137)엄마는, 사람이 전적으로 불행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자주 말했다. 감옥에서, 하늘이 빛으로 물들고 새로운 하루의 빛이 감방으로 새어들 때면, 나는 엄마의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서른 살에 죽느냐 예순 살에 죽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어차피 죽는 바에야 어떻게 죽든, 언제 죽든 그런 건 당연히 문제가 아니다.
(147-148)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마지막 구절들:
그(부속사제)가 나가고 나자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 냄새, 소금 냄새가 내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신기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151)<이방인>을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는 어느 독자의 편지에 대한 답장 중에서--
<이방인>은 사실주의도 아니고 환상적 장르도 아닙니다. 나로서는 오히려 육화된 신화, 그것도 삶의 살과 열기 속에 깊이 뿌리내린 신화라고 봅니다.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 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주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시대의 모든 암들입니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 존재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이러한 측면에서 해석해 본다면 거기서 어떤 정직성의 모럴을, 그리고 이 세상을 사는 기쁨에 대한 해학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찬양을 발견할 것입니다.
(작품의 이해를 돕는 해석의 말을 작가 말고 누가 이렇게 선명하게 밝힐 수 있겠는가!)

(153)1955년 1월 미국판 서문에서 카뮈: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생활의 변두리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외롭게, 관능적으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를 일종의 표류물과도 같이 간주하고 싶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뫼르소가 어떤 면에서 유희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를 자문해 본다면 그 인물에 대한 더 정확한 생각을, 어쨌든 작가의 의도와 더 일치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즉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당한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그에게 관례대로의 공식에 따라 스스로 저지른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그는, 그 점에 대해서 진정하게 뉘우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대답한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뫼르소는 표류물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그는 가난하고 가식이 없는 인간이며 한 군데도 어두운 구석을 남겨놓지 않는 태양을 사랑한다. 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뿌리가 깊은 정열이 그에게 활력을 공급한다. 절대에 대한, 진실에 대한 정열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진실이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 속에서 읽는다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157) '이방인'을 다시 읽는다:김화영
--이방인 50주년 기념 논문 (1992년 로제 키요)
<이방인>은 현재 전 세계에서 무려 101개 언어로 번역되었다./프랑스 중등학교 교과서에 실림/
(193)묘사와 설명:묘사하는 작품과 설명하는 작품을 서로 조화시킨다. 묘사에 그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다. 묘사는 그 자체만으로는 멋진 것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가져다주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계가 의도적으로 설정된 것임을 느끼게 해 주면 된다. 이렇게 되면 한계는 사라지고 작품은 울림을 갖게 된다.(글쓰기 강좌의 핵심 내용!)
<이방인>은 실제로 가장 "적게 말하는" 작품으로 "설명"을 배제한 객관적 "묘사"가 그 중요한 특징이다. 특히 소설의 1부가 그렇다. 그러면서도 2부의 후반부에 이르면 앞서의 그 묘사, 즉 "한계"가 의도적으로 설정된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장치에 의하여 "한계는 사라지고" 작품은 "내적인 광채가 제한되지 않은 채 요약되는 다이아몬드의 면"처럼 풍부한 "울림"을 갖는 것이다.
(197)집필시기:1940년 3월 초~4월 30일/'파리 수아르' 편집위원으로 파리로 불려간다/카뮈는 햇빛 찬란한 알제리의 바닷가로부터 추방당하여 음울한 대도시의 이방인이 된다./대도시. 그것은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막이다./여기서 오전엔 직장일을, 오후엔 이방인 글쓰기를 계속한다
(198)역설적이게도 알제리의 고요한 바다와 작열하는 태양이 가득한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이방인'이 된 도시 파리의 "흐리터분한 하늘, 번들거리는 지붕들, 저 끝없이 내리는 비의 정다움과 절망"의 풍경 속에서 사무치는 그리움과 더불어 집필된 것이다.
(229)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삶의찬가, 행복의 찬가다.

--작가 연보--230~288쪽
카뮈(1913~1960)
1931년 외조모 카트린 마리 생테스 사망
1932년 앙드레 드 리쇼 소설 '고통'을 읽음
1933년 12월 말로의 '인간 조건'이 공쿠르상 수상, 이 소설과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은 장차 카뮈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1937년 오랑 출신의 여성 프랑신 포르를 처음 만난다.
1940년 결혼, 프랑신은 카뮈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
1941년 오랑에 전염병 티푸스 창궐
1944.6.6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
1944.8.25 파리 해방
1945.8.6 히로시마에  첫 원폭 투하
1950.6 한국전쟁 발발
1951.2.19 앙드레 지드 사망
1954.12.6 시몬 드 보부아르의 소설 '레 망다랭'으로 콩쿠르상 수상(사르트르와 카뮈 사이의 불화에 대한 복수로 간주)
1960.1  카뮈, 교통사고로 사망, 남프랑스 루르마랭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1960.9  어머니 카트린 카뮈, 알제의 집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