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박완서

맑은 바람 2021. 10. 10. 21:40

--박완서 장편소설(소설로 그린 자화상--성년의 나날들/배경:1951.1.4후퇴~1953년)

박완서지음/웅진출판/1995년11월 초판1쇄/1996년7월 초판9쇄/323쪽/읽은 때 20211006~1010

작가의 말
(5)내가 마음에 두고 사랑한 공원은 공원이라는 이름도 붙지 않은 작은동산이었다./소복한 동산이 철 따라 옷 갈아입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웠고, 숲 밟고 싶을 때 숲을 헤치고 올라가 보는 것도 나만이 아는 낙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 동산이 불도저에 의해 뭉개지는 걸 보았다./알아 보니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체육시설이 들어섰다고 한다/얼마 후 거기가 동산이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더 무섭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 간다. 나도 요샌 거기 정말 그런 동산이 있었을까,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 산이 사라진 지 불과 반 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7)'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이 태평성세를 향하여 안타깝게 환기시키려다가도 변화의 속도가 하도 눈부시고 망각의 힘은 막강하여, 정말로 그런 모진 세월이 있었을까, 문득문득 내 기억력이 의심스러워지면서 ,이런 일의 부질없음에 마음이 저려오곤 했던 것도 쓰는 동안에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이다.

1. 꿈꿨네, 다시는 꿈꾸지 않기를
(36)약비나게: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진저리가 날만큼 싫증나다
징건하다:먹은 것이 잘 소화되지 않아 더부룩하다
(38-39)오빠는 나에게 천성의 생각하는 갈대였다. 그런 그가 지금 살찐 돼지가 되려고 열심히 자신과 식구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말이 많아지면서 표정도 과묵하던 때의 준수한 모습은 간데없이, 소심하고 비루해지고 있었다.
허구한 날 오빠는 다시는 꿈꾸지 않기를 꿈꾸고, 엄마는 오냐 오냐 맞장구를 쳐대며 즐거워했지만 엄마의 태도도 서른 살 먹은 아들의 포부를 듣는 태도라기보다는 세 살 먹은 어린애의 재롱을 보는 태도에 가까웠다.
*여투다:아껴서 쓰고 그 나머지를 모아 두다
(부상당한 오빠로 인해, 모두가 피난간 서울(서대문구현저동/영천동 인근)에 남아 올케와 내가 '보급투쟁'(빈집털이)을 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야기)

2. 임진강만은 넘지 마
(49)도둑질에 죄의식이 없어지고부터 후환을 근심하는 것까지 배부른 수작으로 여겨졌다. 오로지 배고픈 것만이 진실이고 그밖의 것은 모조리 엄살이요 가짜라고 여겨질 정도로 나는 악에 받쳐 있었다.

3. 미친 백목련
(86)타의에 의한 북으로의 피난길에서:모조리 불탄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집에서 무료한 낮시간을 보내다가 그 마을에 감도는 고요에 홀려서 그 고운 잿더미 사이를 거닐 때였다. 장독대 옆에 서 있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서 꽃망울이 부푸는 것을 보았다. 목련나무였다. 아직은 단단한 겉껍질이 부드러워보일 정도의 변화였지만 이 나무가 봄기운만 느꼈다 하면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미친 듯한 개화를 보지 않아도 본 듯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 얘가 미쳤나 봐, 하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실은 나무를 의인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무가 된 거였다. 내가나무가 되어 긴긴 겨울잠에서 눈 뜨면서 바라본, 너무나 참혹한 인간이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한 경악의 소리였다.
(94)파주 구렁재 호랑 할멈집에서 조카의 병을 치료하다/교하면으로 떠나라는 호랑 할멈의 충고에 따라 길을 떠남
(98)교하면:교하는 두 줄기의 큰 강이 만나는 데여서 강으로 흘러드는 크고 작은 시냇물들이 넓은 들을 적셔주는 비옥한 고장이었다.
(105)교하면이 피난 고장이라는 건 구렁재 마님의 말씀대로였다. 전투도 폭격도 소탕전도 고소 고발도 없이 하룻밤 새 감쪽같이 세상이 바뀌었다.
(108)우리도 드디어 교하를 떠났다. 해도 길어졌거니와 산천도 북으로 향할 때와는 딴판으로 싱싱하게 물이 올라 도처에서 아우성치듯이 봄을 토해 내고 있었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기도 했지만 어찌나 신나게 걸었는지 해 안에 서울에 들어설 수가 있었다.
(112)돈암동집으로의 귀환:우리집에라고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지 않게 동네의 적막은 깊고 완강하고 배타적이었다. 신안탕만 끼고 돌고 나면, 뒷걸음질을 친다 해도 우리집이 보이게 돼 있었다. 다 온 거였다. 신안탕 뒷골목에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의 기나긴 여독의 끝이 무엇인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음이 안타깝고 모욕스러워 간이 졸아붙는 것 같았다.(성북경찰서와 성북천, 성당, 돈암시장은 내가 매일 저녁 산책시간에 만나는 공간들이다. 낮에 찬찬히 박완서가 살던 집터를 찾아가 봐야겠다)

4. 때로는 쭉정이도 분노한다.
(113)돈암동 집에서:숙부 가족이 피난을 내려오는 바람에 12명이 한 집안에서 산다.
(126)그 무렵 우리 열두 식구의 생존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싱거 미싱과 지겟작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우리 여섯 식구는 숙부와 숙모의 벌이에 기생하는 처지가 되었다.
(128-129)성북경찰서에서 숙부와 나를 조사하러 나옴:(쭉정이의 분노)
그래 우리 집안은 빨갱이다. 우리 둘째 작은아버지도 빨갱이로 몰려 사형까지 당했다. 국민들을 인민군 치하에다 팽개쳐 두고 즈네들만 도망갔다와 가지고 인민군 밥해 준 것도 죄라고 사형시키는 이딴 나라에서 나도 살고 싶지 않아. 죽여라,죽여. 작은아버지는 인민군에게 소주를 과먹였으니 죽어 싸지. 재강 얻어 먹고 취해서 죽은 딸년의 술냄새가 땅속에서 아직 가시지 않았을라. 우리는 이렇게 지지리도 못난 족속이다. 이래 죽이고 저래 죽이고 여기서 빼가고 저기서 빼가고, 양쪽에서 쓸 만한 인재는 체질하고 키질해서 죽이지 않으면 데려가고 지금 서울엔 쭉정이밖에 더 남았냐? 그래도 뭐가 부족해 또 체질이냐? 그까짓 쭉정이들 한꺼번에 불싸질러 버리고 말지--
(하~ 나도 같이 소리 지르고 싶다)
(130)전화위복:취조하러 나온 형사가 나를 향토방위대 사무직에 취직시켜줌/신분증이 나오면서 정식으로 향토방위대 대원이 됨/점심 저녁을 직장에서 해결하면서부터 집안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됨
(135)행복한 시간:양옥집(향토방위대 직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다는 것은 평화로울 때도 감히 상상을 못해 본 꿈 같은 사치요 평화였다.
(145)다시 피난길(남쪽으로):(오빠는 한사코 죽은 전처의 고향집으로 가겠다 하여 가족과 '나'는 둘로 갈라짐)--겨울에도 우리 식구는 둘로 나뉘었지만 그때는 나뉨을 통해 더욱 견고한 결속감을 맛보았었다. 희생에 따르는 만족감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혼자서 떨어져 나왔다는 외로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 이기의 결과라는 게 두려웠다. 이번에 찢긴 상처는 생전 피흘리는 지독한 형벌을 못 면할 것 같았다.
*범강장달이-몸집이 크고 흉악하게 생긴 사람을 일컫는 말
(152)*구메구메-남모르게 틈틈이

5. 한여름의 죽음
*국으로-자기가 생긴 그대로
*사복개천-욕설이나 상말을 마구하는 입이 더러운 사람
*부란-썩어 문드러짐
(오빠는 총상 후유증으로 죽었다.)
(181)"쉬어서 버리면 안 되지."
엄마가 헛소리처럼 말하면서 팥죽을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둘러앉아, 사랑하는 가족이 숨 끊어진 지 하루도 되기 전에 단지 썩을 것을 염려하여 내다버린 인간들답게, 팥죽을 단지 쉴까봐 아귀아귀 먹기 시작했다.

6. 겨울 나무
가족 간의 미움의 끝은 어디일까?
(183)한방을 쓰기 전에는 식구들에게 더는 애정은커녕 관심도 가질 것 같지 않은 게 홀가분하면 했지, 미워한다고까지는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한시도 혼자 있지 못하고 주야로 같이 지내게 되니 눈길 한번 마주치는 것도 괴로웠고, 견딜 수 없는 혐오감으로 문득 토악질이 치밀 적도 있었다./제대로 예를 안 갖춘 장례의 후유증은 이렇듯 우리 식구 안에서 부란의 부란을 거듭했다.
(210)미군px에 취직이 됨:가족들은 떠받들고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허사장의 우대와 티나 언니의 환대 속에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됨/한국인 직원들이 경쟁적으로 미제 물건을 빼돌리기에 혈안이 되고 있는 모습을 알게 됨/과분한 월급을 받아와 가족들을 기쁘게 함
(242)돈이 넘치는 데도 행복하지 않은 가족: 늦은 시간이었다. 천변가의 차가운 바람이 품으로 파고들었고 거목으로 자란 수양버들의 채찍처럼 메마른 가지들이 허공을 비질하고 있는 모습이 울고 싶도록 처량해 보였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을까? 엄마는 건강하여 손자들을 잘 돌보고. 올케는 사나흘에 한번씩 주머니마다 돈을 하나 가득 벌어오고 아이들은 살찌고 기름이 흐르고, 나는 한 달에 사십만 원이나 되는 수입이 보장돼 있고, 집안에는 구메구메 양키 물건이고, 오빠가 살아 있어도, 전쟁이 안 났어도 이보다 더 잘살기를 바라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은 점점 추비하고 남루해지는 걸까. 도둑질해서 먹고 살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온 식구가 양키한테 붙어 먹고 사는 거야말로 남루와 비참의 극한이구나 싶었다.

7. 문밖의 남자들
(250)초상화부로 일자리가 바뀌었다:허사장은 나를 책임자라고 했는데 화가들은 나를 점원 이상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데가 잘 되고 못 되는 건 그림 솜씨에 달렸지 점원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속으로 간판장이들이 꼴값하고 있다고 가소롭게 여겼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일주일이 너머 걸렸고,  그동안은 내 생애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동안이 되었다.
(256-257)초상화부 매상이 정상을 회복하자, 나는 나 때문에 그들이 먹고 산다는 교만한 마음과 엉터리 영어를 온종일 지껄여야 하는 스트레스를 주체 못해 툭하면 그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방자하게 대했다./하인 부르듯이 함부로 대했다./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책상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눈을 착 내리깔고 그림과 사진을 대조하고 있는 내 모습은 뒷짐 진 손에 회초리만 안 가졌다 뿐 영락없이 열등생 시험 감독 들어간 선생님 꼴이었다./
그러고 났다고 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본래의 좋은 점, 관용,신뢰,겸허,연민, 동경 따위를 더 이상 담아둘 데가 없을 정도로 발랑 까져버린 자신을 느끼고 소스라치듯이 참담해지곤 했다.
(261)서울대학생 티를 벗고 파마를 하다:모양을 낸다는 건 곧 양키들을 겨냥한 적극적인 자기 상품화에 다름 아니라는 피 엑스의 특수성 때문에도 그러했지만, 초상화부 매상의 꾸준한 신장세 때문에도 나는 마음대로 세도를 부렸다.
(262-263)박수근 화백을 알게 되다:어느 날 박씨라는 체격이 듬직한 화가가 화집을 하나 끼고 나왔다./나는 박씨가 두툼한 화집을 끼고 나오는 걸 보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꼴값하고 있네. 화집만 끼고 다니면 간판쟁이가 화가가 되나/뜻밖에도 박씨는 나를 생각하고 그 화집을 가지고 나온 거였다./일제 때 선전에 입선한 작품을 모은 화집이었다./그는 미리 특정의 페이지를 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면서 자기 그림이라고 했다. 농가 여자들이 마주 보고 절구질을 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밑에 들어있는 작가이름을 보고 처음으로 나는 그가 박수근이라는 걸 알았다./진짜 화가가 우리 초상화부에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사건이요 충격이었다. 우선 그동안 내가 너무 버르장머리없이 군 게 미안했다./너만 잘난게 아냐, 여기 잘난 사람 또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그후 나는 다시는 지진아 지도히는 국민학교 여선생같은 짓거리를 안 하게 됐다.
(264--266)내 눈에 비친 박수근:
평군치의 한국인 얼굴에다 목소리는 낮았고 남을 웃기는 재담도 할 줄 몰랐고, 신랄한 독설가는 더군다나 아니었다./그가 간판장이들과 달라야 한다는 건 나의 희망사항일뿐 그는 간판장이들보다 더 간판장이다웠다./예술적 고뇌 대신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노동의 충족감이었고, 우울한 정열 대신 단순 노동의 평화였다./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순하고 덤덤한 데 있었고 그런 것은 나타나기보다는 숨어있는 특색이었다./초상화부 화가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가난했고 하고 다니는 꼴도 한물감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궁상맞아 보였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의젓함이 있었다. 다들 늘 돈,돈.돈, 했고 한푼에 치를 떨었고, 자기 그림이 빠꾸당하면 불같이 화를 내느라 딴그림까지 망쳐 놓기 일쑤였다. 박수근의 가난엔 그런 조바심이 없었다./그는 내가 몽상한 천재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가 만약 천재였다면 사는 일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술보다는 사는 일을 우선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뿐이었다./자칭 돈벌 구멍하나는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눈을 타고났다는 허사장도 그를 알아보진 못했다. 그 생각만 하면 언제나 웃음이 난다. 그건 박수근이 남겨준 유일한 농담이다.
(화가 박수근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보아 이는 '실명소설'이라 해야 맞을 것 같다)
(267)나를 미망에서 깨어나게 해준 사람:박수근에 대한 친근감과  동류 의식은 내가 우월감과 열등감의 콤플렉스에서 놓여나는 데 힘이 되었다./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싸잡아 능멸하던 고약한 버릇에서,  개별적으로 볼 수 있는 관심과 아량을 조금씩 회복해 갔다.
(267-268)텅빈 매장에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럴 때는 밑도 끝도 없이 불쑥 자애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사는 일의 악착같음 때문에 거의 잊고 지낸 '자애'라는 게 따뜻한 물에 언 몸을 담갔을 때처럼 쾌적하게 스미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가 주급을 받은 날은 차를 사기도 했다./티나 김한테 들은 바로는 그에겐 많은 식구가 딸려 있다고 했다./그하고 가족 얘기를 한 적은 없었다. 나는 그의 아내가 아이만 쑥쑥 잘 낳을 뿐 못생기고 바가지를 잘 긁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의 과묵에 대한 내 최소한의 복수심이었다.
(274)지섭이:지섭이 왔다는 소리에 나는 내 안에서 생기와 기쁨이 무수한 입자처럼 들고 일어나는 걸 느꼈다.
"지섭아, 언제 왔어?"
지섭의 표정에서 단박 우울이 걷히고 활짝 웃음이 번졌다. 잘생긴 얼굴에 서늘한 이가 드러나면 더 보기 좋은 얼굴이 됐다. 그의 얼굴에 우울이 해질녘의 차양 넓은 모자 그늘처럼 비끼면 나는 불현듯 그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만져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지섭은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만져 보고 느껴 보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 남자였다.
(277)처음 방문한 지섭이네는 훗날 '나목'을 쓸 때 고가의 모델로 삼고 싶을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278)국군에 나가 부상병이 되어 돌아온 막내아들 지섭이와 그 엄마:막내를 생각해서 홀로 남은 어머니는 막내를 만나기는 했지만 늘 구박만 받았다. 구박이 아니라 애정 표현인지도 모르지만, 왜 아버지하고 형 따라가지 않고 나같은 자식한테 뭘 바라고 남았냐고 모진 소리를 해도 노인은 노염도 안 타고 오히려 구수하게 받았다.
"바라긴, 우리 지섭이 대문 열어주려고 남아 있었다. 어쩔래? 넌 어려서부터 딴 사람이 대문 열어 주면 재수 없다고 심통부리곤  했잖여."
"엄마, 난 엄마 부양하고 책임질 능력 없단 말야. 엄마가 나한테 붙는 건 약속이 틀려. 난 막내잖아. 효도할 자신 없단 말야."
"인석아, 살아 돌아와 대문 흔든 게 효도지 더 어떻게 효도를 하냐."
(280)명동거리:그곳은 뒷골목의 어둠까지도 감미롭게 살아 숨쉬는,연인들의 거리였다. 우리는 명동을 위해서 연인들처럼 굴다가 어느 틈에 연인이 돼 있었다.

(지섭이 수시로 읊어주었던 시들)
*정지용의 시--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릴케의시--<마리아에게 드리는 소녀의 기도>

저에게 무슨 일이나 좀 일어나게 하옵소서/저희는 생명을 바라 이렇게 떨고 있습니다
(285)그는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자기의 존재로 상대방을 완벽하게 채우려는 타입이었다. 딴 생각을 하는 걸 참지 못했고 그럴 새도 주지 않았다. 그가 부산으로 가고 나면 볼일을 보러 갔단 생각보다는 아, 쉬러 갔구나 싶을 정도로 그는 누구를 좋아하는 일에 미련하도록 자신을 혹사했다./나도 그가 오면 반갑고 떠나면 섭섭한 정도가 점점 더 심각해졌다/그를 보내고 나니까 웅성거리는 서울역이나 광장의 사람들도, 만원 전차 속의 승객들도 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부유하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지섭이는 <그 남자네 집>의 그 남자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글이 감칠맛이 나고 연애분위기를 잘 묘사해 주어 다시 읽어도 흥미롭다)
(286)엄마의 넋두리:이년아,사내녀석 때문에 울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오래비가 죽어도 안 울던 독한 년이 겨우 지섭이 때문에 울어?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너를 금이야 옥이야 길렀단 말이냐?/엄마의 절규가 가슴을 쳤다.엄마가 보고자 한 꼴은 무엇일까. 아직도 엄마는 나에게 보통 딸 이상의 기대를 걸고 있단 말인가.  아아, 지겨운 엄마, 영원한 악몽.:
(어쩐지 나도 뜨끔한 데가 있다. 내 자식도 나를 이렇게 생각할 거란 말이지~)
(290)남편감인 남자:동화백화점 건물주쪽 사람/건물 관련 기술자/천성적으로 남을 조금도 스스롭지 않게 하는 형이었다./엄마는 그이를 "사람이 한결같더라"라고 평했다./그이가 지섭이보다 나은 점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나은 점이라기보다는 명확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그이하고 있을 때는 내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전혀 부담이 안 된다는 거였다./나는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도 열심히 수다를 떨지 않고 입다물고 있어도 부담이 안 되는 친구라야 오래 갔다./말 좋은 친구는 화제가 끊긴 동안이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가장 내밀힌 소통의 시간이 되는 친구였다.

8. 에필로그
(302)결혼을 결심함:양반 집안임을 뽐내는 사람들 앞에 자신은 대대로 중인 집안 사람으로  종로거리에서 선전을 했다고 말했다./나는 그때 결정적으로 그이에게 반하고 말았다. 일생을 같이해도 후회 안 할 것 같은 자신감까지 생겨났다
*선전--
(307)맨입으로 시집 보낸 어머니: 지체가 낮은 집으로 시집간다고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엄마/신행을 다니러 온 집에 아무도 없었다 /빈집을 지키던 사촌동생이 전하는 말-큰엄마가 온종일 통곡을 해서 꼭 초상집 같았어./울음이 복받쳤다. 처음엔 참아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못 참겠어서 할 수 없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온종일 울어도 울어도 그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온몸을 내던진 울음은 앞으로 부드럽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 의례, 자신에게 가하는 무두질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하고 나하고 만날 수만 있었다면 둘다 울지 않았을 것이다. 따로따로니까, 서로 안 보니까 울 수 있는 올음이었다. 그날 엄마가 정릉으로 빨래를 간 건 참 잘한 일이었다.(끝문장)
(어머니의 통곡:큰 도시에만 살았어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했을 텐데도, 손도 못 써보고 죽은 남편, 맏며느리의 자리를 걷어차고 아들 교육을 위해 서울로 왔건만, 6.25 때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상이군인이 된 아들은 총상 후유증으로 장가도 들기 전에 죽고, 서울대까지 들어간 딸년은 지체가 낮은(?)집으로 시집을 가 버렸으니, 머리 싸매고 누웠다가 죽지 않기를 다행이지, 어찌 땅을 치고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평론가(이남호)의 말
(310)개인사를 다룬 글이 보편성을 얻으려면?:일반적으로 이런 어려운 시대의 개인적 기록들은 자신의 고통을 과시하고 또 투정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하여 '그 많던 싱아는~'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어려운 시대와 어려운 삶을 이야기하되, 당당하고 머뭇거림없이 이야기하며 또한 아름답게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어려웠던 삶의 공간을 아름다운 이야기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323)너무나 사실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이 소설은, 그리하여 박완서 문학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수많은 6.25소설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된다.